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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Ji Jan 17. 2023

노년의 피아노

그녀들이 피아노를 치는 이유

성인 피아노를 가르친다.

정확히 말하자면  50~70대가 반 이상인

클래쓰다.

간혹 3,40대가  몇 오지만

대부분   나이 지긋한 분들이다.



아이가 아닌  중년의 부인, 노년의 할머니를

가르칠 줄은 꿈도 꾸지 못한 것들이다.

오전 두 시간만 잠시 갔다 오는 일이기에

글 쓰고, 아이 보는데 지장이 없겠다 싶어 지원했다.





그러고 보니,

20대 때, 딱 한 번, 중년의 여자를 레슨 하긴 했다.

옷을 제작하는 공장 여 사장이었는데,

목표가 뚜렷했다.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치고 싶어서요."

뭐든 씹어먹겠다는 열정과 달리

이것저것 바쁨에 연습은 되지 않고, 사장님의 수술까지 겹쳐  몇 달 만에

레슨은 끝이 났다.




성인 레슨은 변동이 많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뚜렷한 목표가 없으면  아이보다

쉽게 그만둘 확률이 크다.



변동 많은 피아노지만

꾸준히 다니는 나이 지긋한 할머니들도

많다.

눈도 깜깜, 손도  굳어, 귀도 잘 안 들리는

그녀들이 왜 피아노를 배우며,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걸까.



일단 회비가 싼 이유도 있지만,

그녀들에게서  들은 공통점이 있다.

 "어릴 때, 못해봐서 오늘 아니면 못할 것 같아서요."

"치매예방을 위해서요."

"나이 들고 여기저기 수술하고 나니

내 몸이 옛날 같지 않더라, 쓸쓸하고 마음이

울적해서 배우러 왔어요"

"외로울까 봐 취미 하나 들이려고요."

등의 이유다.






중년 딸과 오는 어르신 A가 계신다.

'나이도  많아 얼마 하시겠나, '

싶었는데

딸보다 더 열심히 피아노를 치고

연습한다.

김장으로  몸살이  났는데도 와서  연습하고 간다.


굳은 손가락으로 더듬거리지만,

놀랄 만큼  곧잘 피아노를

치신다.

어릴 때, 못했던 꿈을

지금 꾸고 계신 모양이다.

A 어르신의  피아노 연습실을 지날 때면

허밍으로  피아노 멜로디를 따라 하며

더듬더듬 연습하는 소리가 들린다.

보지 않아도 그녀가 얼마나

행복한지 느낄 수 있다.







속눈썹까지 곱게 화장하고 오는 B어르신.

항상 하하하 웃는 소리에

나까지 유쾌해진다.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아

즐거운 취미를 찾기 위해

피아노를  배운다고 했다.

피아노까지 사서   

열심히 복습도 하는 열성을 보였다.

그러나  여기저기

아픈 몸은 또 다른 합병증으로

B어르신을 힘들게 했다.

시술한 뒤 몇 주 만에 보는

얼굴은 핼쑥 야위었다.

곱게 붙였던 속눈썹도 없고,

미간에 두 줄 인상만 남아 있었다.


"그렇게  젊을 때는

내 목표대로  뭔가 되는 거 같았는데,

나이 들어  건강이 이러니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네요."

의기소침해진 B어르신을

보니 안타까움이 넘쳐흘렀다.


피아노 치면서 좋은 생각 하려고

왔다며  웃는 웃음 뒤로

슬픔이 느껴졌다.

부디 작은 행복을  다시  찾으시길…






깜빡깜빡하는 C어르신은

자신의 시간대를 계속 깜빡하고

어느 날은 11시, 어느 날은

10시에 와서는

"아이고, 내가 깜빡했다"

18번이다.

레슨 할 때도

잘 치고 있다가 하나 틀리며

"이봐라, 틀렸다, 아니다, 아니다"

혼자 레슨을 다 한다.ㅋ

깜빡해도, 비가 와도

더 나이 들어 깜빡깜빡하기 전에

자신이 하고 싶은 피아노를 쳐보고

싶은 C어르신..

기억의  망각이

짙어지기  전에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그분의  간절함이  느껴진다.







부동산으로  오랜 기간 현역에

있다가  퇴직한 D어르신.

경제적,  시간적 여유도 있어

뭘 배울까, 고민하다

얼떨결에 배우게 된  피아노.

한 번도 배워본 적도 없고 피아노는

생각도 안 해봤단다.

아직도 왜 피아노를 배우러 왔는지 모르겠다며

아주  열심히  온다.

처음 배울 때는 온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는 바람에  피아노를 치고 나면

손이 아프다 하소연이더니

이제는 양손으로 제법 반주도

만들어 친다.

"성취하는 걸 좋아하는데,

사실 퇴직하니 무기력했었어요.

그런데 피아노는 내가 한 만큼

뭔가가 곡이 되니까 그 맛에

계속하게  되네요."

보람차고  생동감 있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여러 가지  목표나 이유를

가지고  피아노를 배우러 오지만

결국 피아노를

배우는 이유는

행복을 추구하기 위함이리라.




비록,

젊은이들처럼 빨리 칠 수 없고

어두운 눈으로 더듬더듬 칠지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하고  진지하다.


그들 자신이 살아있고,

할 수 있는  곡들을 치며

노년의 삶을 풍성하고 여유롭게

만들어내는 주체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보노라면,

겸손히

최선을  다해,

순간순간,

행복해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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