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일기
운동을 가지 않았다. 굳이 탁구가 아니더라도 걷든지, 뛰든지, 줄넘기든, 여러 가지가 있다. 가지 않았다 보다는 가지 못하고 있다는 편이 더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나는 요즘 운동을 가지 못하고 있다. 며칠 전 박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오늘 체육관 문 엽니다. 운동 나오세요! 퇴근후 7시 쯤 도착할 것 같습니다.’ 곧 응답 메시지가 날아왔다. 고 박**(향년 53세)께서 별세하였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별세일 2022년 11월 17일 목요일, 빈소 무주보건의료원장례식장 제3분향실, 발인 11월 19일 토요일 아침, 장지 부안군 상서면 선영, 연락처 010-5038-****, 마음 전하실 곳 국민은행 008-21-076*-**, 알리는 이 박**.
멀찌기 떨어진 휴대폰을 바라보며 눈으로는 한 줄 한줄 읽어 내려가고 있었지만, 머리로는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낯선 문구들이었다. 엊그제만 해도 체육관에서 함께 웃고 떠들며 운동하던 사람이잖은가. 전화를 걸어보았다. 아침 10시가 넘어도 밖에 나오지 않아 이웃 지인이 집에 들렀다던가. 일어나지 않아 흔들어봤다던가. 죽었다더라, 형이 대신 받은 고인의 전화기 너머로 전해주시는 부보(訃報)는 매우 짧고 간결했다. 우리 동생이 죽어부렀네요. 그도 전해들은 ‘죽었다더라’는 말. 마치 남의 일처럼 말하던 형님도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무참한 그것이 이렇게 쉽고 통렬하다니.
악몽 중 높은 곳에서 –의지와 상관없이- 뛰어내리거나 절벽에서 아래로 뚜욱 떨어져 온 몸이 땅에 닿아도 전혀 아프지 않은, 딱 그런 느낌이었다. 남편과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꽃이 만발한 제단 가운데에 놓인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굵디굵은 대나무 통에 소금을 넣고 있었다. 무주에 귀농한 지 십여 년, 박 씨를 처음 만난 것은 보건진료소였다. 진료실 문을 열고 그가 들어섰다. 어디 편찮으신가요, 라는 질문에 아파서 온 것이 아니라 땅을 알아보는 중이라 하였다. 보건진료소가 도롯가에 있어서 그냥, 들어온 것이라고 했다. 그 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탁구교실에서 다시 만났다. 스포츠 가방을 메고 그가 들어섰다. 반가운 해후에 악수를 청했다. 그는 선수 출신답게 현란한 기술을 구사하는 실력가였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음을 들었다. 공장 부지를 매입하고, 인허가 받고, 건물을 지었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상품화된 죽염을 가지고 나와 회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하였다. 아무것도 없는 빈들에 공장을 세우고 새하얀 소금꽃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하는 그의 영웅담은 그의 삶을 말해주는 전기(傳記)였다. 사업의 완성을 위하여 동분서주한 것을 우리 부부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그의 부고는 더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죽음이 어찌 이번뿐이겠는가 마는, 엊그제 함께 운동하던 사람의 죽음은 참으로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지병이 깊어져 앓다가 맞이하는 각오한 죽음이 아니라 멀쩡한 사람이 주검으로 발견되는 일이라니. 마음이 물에 젖은 솜처럼 혼곤해졌다.
요즘 우리는 집단 우울에 빠져 있다. 10·29 참사가 한 원인이다. 그날 그 젊은이들은 저녁을 먹고 혹은 저녁을 먹으러 나간다고 갔을 것이다. 잠깐 놀다 오겠다고 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누운 채로 혹은 선 채로 주검이 되었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유족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아직도 체감하지 못하는 나는 멀리 서 있는 타자(他者)로서 불 보듯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척한다. 언론사에서는 발 빠른 생중계로 보도했다. 현장에서 촬영한 시청자 영상은 흐릿하게 방송되기도 하였다. 나의 상상력은 촉수를 곧추세웠다. 뾰족하게 발기된 더듬이는 활성화하였다. 단단한 긴장감으로 무장한 나는 생전 가보지도 않은 이태원 골목을 눈으로 더듬고 있었다.
아, 이 비정함. 죽음은 아득히 먼 저 어느 강 너머, 아득히 먼 저 언덕 너머의 일이 아니구나.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지면을 적시던 창조의 때, 흙으로 사람을 짓고 생기를 코에 불었다는 그때. 숨 쉴 때마다 들락거리는 흙사람 코에 불어 넣었다는 한 줌이나 될까 말까 한 그것. 우리는 후~ 불어버리면 날아가 버리는 겨보다 더 가벼운 존재가 아닐까 실감한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큰 이별과 죽음을 겪는다. 상실은 우리의 관계가 끊어지게 만들고 고통을 준다. 그러나 관계가 끊어졌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남은 사람들은 상처에 울고 일상은 거세게 소용돌이친다. 연결된 연대의 위로와 공감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애도를 나눌 수 있을까. 시간이 가장 위대한 신(神)이라면, 그분의 답을 기다릴 뿐이다.
그저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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