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이 빛이 되기까지
글 쓰고 있는 나를 누군가 바라보고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무표정한 얼굴, 앙 다문 입, 다소 퀭한 눈꺼풀, 좀처럼 기지개를 켜지 않아 구겨져있는 어깨와 허리, 키보드 위에 가만히 멈춰있다가 갑자기 움직이고, 또 가만히 멈춰서는 열개의 손가락....
한번 앉으면 몇 시간을 내리 엉덩이도 떼지 않고 처음 앉은 모습 그대로 글을 쓴다. 겉보기엔 정적으로 보이겠지만 글쓰기를 하고 있는 내면은 늘 카오스*다. 글 쓰는 대부분의 시간, 그 카오스를 홀로 견뎌야 한다.
*카오스 : 혼돈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난생처음 에세이라는 걸 썼다. 카오스, 대혼돈 그 자체였다. 나의 혼돈을 빛으로 변화시켜 글을 쓸 수 있도록 도와준 소중한 친구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매일 걷는다. 다이어트를 위한 파워워킹이나 1만 보 채우기가 아니라 어슬렁거리는 산책에 가깝다. 지난 5월 초고를 쓸 때는 평소보다 2배는 더 걸었다. 무작정 걸었다. 밑도 끝도 없이 걸었다. 글을 쓰기 전에도 걸었고 글을 쓰고 난 후에도 걸었다. 걸으며 글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도 있었고 아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더라도, 걷는 내내 마음에 위안을 얻었다. 누가 주는 위안인지 모르겠지만, 걷고 나면 작은 여유가 생겨났다. 하루 종일 한 문장도 쓰지 않은 날도 있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글을 쓰지 않는 순간에도 나는 글을 쓰고 있었다. 머리로, 다리로, 눈으로, 마음으로....
걷기는 도피가 아니라 글감이 선명해지기까지 견디는 시간이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유난히 좋아했다. 지난 10년간은 숨 쉬듯 책을 읽었다. 내 취미 중 하나는 도서관 산책 혹은 서점 산책이다. 읽은 책을 특별히 기록하진 않았다. 혼자 필사하고 소리 내어 읽으며 그저 책 읽는 시간을 온전히 만끽했다. 책을 읽으며 감탄하고, 생각하고, 상상하고, 성찰하고, 삶에 적용하면서 살았다. 책이 없었다면 그 모든 역경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상상하기 어렵다. 책은 아낌없이 주고, 또 주고, 또 준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읽었던 책들이 모두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는 걸 발견했다. 읽은 책은 어디 가지 않는다. 읽는 삶을 살다보니 어느새 쓰는 삶을 살고 있다.
에세이를 쓸 때도 나를 가장 응원해 준 건 '책'이었다. 글쓰기 방법론에 대한 책은 읽지 않았다. 글 쓰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이 불필요하다는 건 아니다. 지금 당장 글을 써야 하는 나에게는 방법론 보다 '써도 좋다'라는 무언의 확신이 필요했다. 나에게 간절히 필요한 건 '야, 너도 쓸 수 있어. 그냥 써. 일단 써. 써도 돼.'라는 북돋움이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따뜻한 글쓰기 스승을 만났다. 그녀는 글 쓰는 내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옆에서 끊임없이 나를 안심시켜 주고 용기를 주었다.
"좋았어. 잘 쓰고 있어. 이게 맞나 싶지? 그게 맞아. 엉망인 것 같지? 정상이야. 너만 그런 게 아니야."
이번에 우연히 만난 그녀는 <작가의 시작>의 작가 바버라 애버크롬비이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작가 나탈리 골드버그도 좋아한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강인함, 엉뚱함, 무모함을 나는 좋아한다.
곪아 터지고 약 바르고 아물었다가 또 터져버리기도 했던 나의 오랜 상처를 에세이에 썼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글로 쓰는 건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에세이에 진솔하게 나의 이야기를 꺼내어 쓸 수 있었던 건 오랜 시간 혼자 하는 글쓰기를 해온 덕분이다. 모닝페이지에 나의 상처와 아픔들을 쏟아내고 치유해 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에세이를 쓰며 눈물과 콧물을 한 바가지씩 흘렸다. 내가 쓴 글을 읽으며 내가 울다니, 게다가 이미 내용을 알고 있는데도 또 읽으면 또 눈물이 나고, 또다시 읽으면 또다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에세이를 쓰면서 또 한 번 내 마음의 상처가 아물어가는 걸 느꼈다. 어쩌면 이번에는 말끔히 나은 것 같다고.... 그렇게 느꼈다.
'자신의 일기장에서는 자신의 어려운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는 심리 치료사가 되어도 괜찮다. 하지만 책을 쓰려 한다면 이것은 위험할 수 있다.', '자리에 앉아 글을 쓰기 전에 고된 심리 치료를 완전히 끝내야 한다.'
_바버라 애버크롬비, <작가의 시작>
글을 어디에서 쓰면 집중이 잘 될까 궁금했다. 어떤 날은 도서관에 가고, 다음 날은 카페 A에 가고, 또 다른 날은 카페 B에 갔다. 어느 곳에서도 집중이 잘되지 않았다. 글을 쓰기 위한 최적의 장소를 찾아 헤맸지만 결국 우리 집 식탁에서 대부분의 글을 썼다.
마감이 다가오자 글이 저절로 써졌다. 마감은 나를 쓸 수밖에 없도록 도와주었다. '도움'이라기보다는 '등 떠밀기'에 가깝지만.... '썼다'라는 표현보다는 '써내야만 했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당신의 삶과 가족, 친구들, 본업, 글쓰기, 이것들을 어떻게 조율하고 있는가? 그것은 결코 끝나지 않는 문제이다. 마감은 이 모든 것을 단순하게 만들어 준다. 마감이 있으면 무조건 매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_바버라 애버크롬비, <작가의 시작>
아, 그리고 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