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매일 글을 쓰는 이유
"너는 마지막 1초까지 꽉 채워 썼어. 수업시간 마치는 종이 칠 때까지 하던 과제를 손에서 안 놓았다니까."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기억하는 내 모습이다. 나에게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 우리는 완벽주의를 단점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지만, 완벽주의도 하나의 성향일 뿐이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강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내려고 한다. 추구하는 목표치가 높기 때문에 평균 이상의 결과를 낸다. '대충'이란 없다. 몰입력과 집중력이 좋은 편이다.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좁히려 새로운 걸 배우고 도전하는데 투자한다. 나 또한 완벽주의 성향 덕분에 어떤 분야에서든 좋은 성과를 내곤 했다.
하지만, 20대 후반에 자발적으로 퇴사한 후 나의 삶을 스스로 꾸려가는 과정에서 완벽주의는 나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완벽주의가 무언가를 시작하고 꾸준하게 지속하는 걸 방해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 부족해.'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조금만 더 배우고 시작하자.'
완벽주의자는 높은 이상을 추구하지만 현실은 늘 이상을 따라가기 어렵다. 채우고 또 채워도 부족하다는 느낌을 좀처럼 떨쳐낼 수가 없다. 어렵게 시작은 했더라도 나아가는 모든 과정에서 스스로를 검열한다.
'이건 너무 유치하지 않아?'
'이건 너무 미완성이지 않아?'
'이건 너무 즉흥적이지 않아?'
그러다가 '아직 준비가 안 됐어.'로 되돌아가고 만다. 아이러니하게도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나를 멈추어서게 한다.
나는 완벽주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완벽주의에서 해방되기로 했다. 완벽주의는 감추고 억제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완벽주의는 내가 가진 강점 중 하나이다. 하지만 완벽주의는 '시작하는 단계'에서 발휘되어서는 안 된다. 시작부터 완벽한 사람이 있을까? 충분한 연습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숙련된 후에 완벽주의의 힘을 활용한다면, 완벽주의는 나만의 특별한 잠재력을 끌어올려 줄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하며, 매일 글을 쓰기로 했다. 완벽하기보다 완수하기를 연습하기로 했다.
'매일 글쓰기'라는 목표를 지키려면 완벽하고자 하는 본능을 내려놓아야만 한다. 어떻게 매일 완벽한 글을 써낼 수 있을까? 때로는 똥글을 쓰기도 하고 때로는 그럭저럭 괜찮은 글을 쓰기도 하고 때로는 그럴싸한 글을 써내기도 한다. 중요한 건 매일 하루에 최소 한 편의 글을 쓰고 발행하기 버튼을 눌렀다는 사실 그 자체다.
1년 동안 매일 쓰기를 연습하다 보니, 이제는 습관적으로 노트북 앞에 앉는다. 그냥 쓴다. 쓰고 발행한다. 글을 발행하고 한두 번은 더 읽어보지만, 이미 쓴 글을 붙들고 있을 시간은 없다. 다음 날이 되면 그날 써야 할 글을 또 쓴다. 그리고 또 발행한다. 1년 동안 쓰고 발행하고, 쓰고 발행하는 과정을 365번 이상 반복했다.
오늘 쓴 글이 마음에 안 들어도 괜찮다. 내일 또 쓸 거니까.
'너무 대충 하는 거 아니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냥 하는 것은 대충 하는 것과는 다르다.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워홀도,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로 매월 한 곡씩 발표하는 윤종신도 <퓨처셀프>의 저자 벤저민 하디도 '완벽보다 완수'를 강조한다.
"예술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완성하라.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는 다른 사람들이 결정하게 두라. 그들이 결정하는 동안 더 많은 작품을 만들어라."
_미국 팝아트 선구자 앤디 워홀
"자기 작품을 보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똥으로 생각합니다. 창작적 배설물로요. 저는 앞으로 할 게 훨씬 중요하거든요. 발표하는 순간 잘 안 들어요. 곧바로, 곧바로 다음 거!"
_가수 윤종신
"지금 하는 일은 그 무엇도 완벽하지 않다. 현재의 내가 80%만 해도 과거의 내가 할 수 있었던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80%만 하고 세상에 내보내라. 하나둘 완수할수록 결과는 더 좋아진다."
_벤저민 하디 <퓨처 셀프>
다시 생각해 보면 '완벽'이라는 목표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존재가 있을까? 우리는 살아있는 생명체이기에 끊임없이 변화한다. 변화하며 흔들리고 찌그러지고 파괴되고 새롭게 탄생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다.
아이들은 불완전한 존재로 태어나지만, 우리는 아이들을 보며 부족하다 느끼지 않는다. 숲에 가면 온갖 불완전한 존재들이 모여 산다. 썩은 나무가 자기 스스로를 불완전하다 느낄까? 썩은 나무는 썩은 그대로 완전하다. 썩은 나무는 땅으로 돌아가 또다시 숲의 일부가 된다. 아이들과 자연처럼 우리도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 완전하다. 그러니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아가는 수밖에....
나의 글은 완벽하지 않다. 불완전하다. 불완전함을 끌어안고 매일 쓴다. 그리고 매일 변화한다. 불완전하게 흔들리며 나아가는 모든 과정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전하다.
완벽하게 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면
OOO을 시도했을 텐데....
<아티스트 웨이>의 저자 줄리아 카메론은 묻는다.
"완벽하게 잘하지 않아도 된다면 무엇을 해보고 싶은가?"
나만의 OOO을 채워보자. 오래전 나의 OOO에는 '책 쓰기, 여행 작가 되기' 등도 있었다. 나는 올해 책을 썼고, 브런치북에 발리여행기를 쓰며 여행작가의 삶을 가볍게나마 맛보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일단 글쓰기를 시작하고 매일 글을 써온 덕분이다. 줄리아 카메론은 단언한다.
"진실은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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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이미지 출처 : 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