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달리기 하는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마라토너들은 풀코스를 뛸 때 속으로 읊는 '만트라' 같은 게 있대. 예를 들면 이런 거지. 'Pain is inevitabel, Suffering is optional.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 여보도 그런 게 있어?"
"글쎄. 만트라는 모르겠고 멈추고 싶을 때마다 이렇게 생각해. '노래 한 곡 더 들을 때까지만 뛰어보자.' 그러면 또 뛰어지더라고."
"오, 글쓰기도 달리기랑 비슷해. 오히려 더 가혹하게 느껴질 때도 있어. 글쓰기는 결승선이 없는 마라톤 같거든. 나는 글쓰기를 하다가 마음이 지치면 이 문장을 떠올려. '나의 글은 내가 쓰지 않으면 탄생하지 않는 이 세상 유일한 글이다.' 뻔한 소재일지라도 내 이야기는 오직 나만 쓸 수 있는 거니까. 그럼 또 쓰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
"그럼 뛰기 싫은 날도 있었을 거 아니야. 그럴 땐 어떤 마음으로 뛰는 거야?"
"음. 1km만 뛰자. 하고 나가는 거지. 막상 1km를 뛰고 나면 '어? 1km만 더 뛸까?' 하면서 2km를 뛰게 되고, 또 그게 3km가 되고 결국 계속 뛰게 되더라고. 10km를 뛰는 날도 똑같아. 처음부터 10km를 뛰려고 했던 건 아닌데 뛰다 보면 '한 바퀴만 더 뛸까? 한 바퀴만 더?' 그러다 보면 10km가 되고 그러더라고."
"오, 나도 비슷해. 글쓰기 싫을 때는 '일단 쓰자. 딱 세 문장이라도 쓰자.' 하고 자리에 앉아. 그런데 쓰다 보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줄줄줄 글을 쓰고 있어."
"아, 그런데 왜 뛰는 거야? 달리기를 하는 목적이 있어?"
"음. 정신력을 키우려고. 달리기를 하다 보면 체력은 당연히 좋아지겠지. 그것보다도 달리기를 계속하면 시련이 닥쳤을 때 견뎌낼 수 있는 정신력이 길러진다고 하더라고."
"오호.... 멋진데? 글쓰기도 그렇지 않을까? 물론 글쓰기 실력이 늘기도 하고, 책을 낼 수도 있겠지. 그것 말고도 글쓰기를 함으로써 얻어지는 건 정말 많아. 하지만 무엇보다 '매일 꾸준히 계속하는 것, 그 자체가 가진 힘'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
달리기를 시작한 후로 남편의 체력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가 달리기를 하며 키우고 싶다는 정신력도 체력과 함께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나의 글쓰기 여정도 마찬가지다. 매일 쓰며 글이 차곡차곡 쌓이는 만큼, 내 안의 힘도 차오르고 있을 거라고, 내 삶도 깊어지고 선명해지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는 묘비명을 이렇게 새기고 싶다고 한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나의 묘비명에는 어떤 말을 새기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