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2016, tvN>
이 단어를 들으면, 어떠한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르는가? '불쌍한'이라는 단어가, 어떤 이에게는 '꼰대' 같은 부정적인 단어가 떠오를 수도 있겠다. '노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말들은, 어찌 됐든 간에 지금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도적인 세대에게는 '본인과는 다른'존재라는 인식이 생기는 것 같다. 요즘은. 고백하자면, 내가 그랬고 지금도 완전히 지워지진 않은 것 같다. 예전에는 부정적인 단어들로 도배됐음을 고백해야만 할 것 같다. 건방지게도 '죽음을 앞둔'이라는 말이라던가, '냄새'같은 단어가 먼저 떠올랐으니 말이다.
이전에 나는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영화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의 제목은 <그들도 사랑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라는 것이었는데, 그 영화를 보고 또 그 글을 쓰면서 대부분의 부정적인 단어를 지웠었다. 이를테면, "노인들도 사랑할 수 있으며 그들의 '사랑'은 우리와 하등 다를 것이 없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머릿속에서 '노인 = 꼰대'라는 인식은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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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쓰인 이후, 내 머릿속에 남겨진 부정적인 단어를 지운 드라마가 나타났다. 얼마 전에 종영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다. 이른바 '시니어벤져스'라는 유치 찬란한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만한 중견 연기자들이 대거 출연하는 데다가, 고현정-조인성의 출연으로 다시 한번 화제를 모은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남편의 바람을 묵인한 자신의 친구 '영원'과 척을 지고 살다 극적으로 화해하고 공감하며 다시 가까워지는 '난희', 틱틱대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희자'와 '정아'의 우정. 젊은 시절 첫사랑과 다시 만나 마지막 로맨스를 불태우는 '성재'와 그런 그를 향해 적극적으로 다가서려는 '충남'. 아내를 종 부리듯 하다 아내의 소중함을 깨달은, 젊은 이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이래선 안된다 저래선 안된다 전형적인 꼰대 '석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노인들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지극히 평범해 보이고, 가까운 모습들이 다르게 다가온 까닭은, "그들이 우리와 다를 바 없다."라는 메세지를 명확하게 전달해내는 노희경 작가의 글이었고, 그것을 음성으로 전해준 고현정의 나레이션이었다. 철부지도 있었고, 푼수도 있었다. 우리 주변에 흔히 보이는 친구들(Friends)의 모습처럼 말이다. 사랑에 설레어하고, 질투하는 모습들, 친구와 다투고 화해하며 공감하는 모습들. 그 모습들은 20대나 30대의 사랑과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며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 하지만 결국 죽음 앞에 두려워하는 모습들은 그들의 삶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며 인간적인 면모를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러한 모습들을 완성시킨 것은, 마지막화 마지막 장면에서 박완의 나레이션이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 어떻게 하면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것을 매일 고민하는 것은 젊은 청춘들만이 아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 삶의 희망을 붙잡고 남은 날을 살아가는 그 모습을 우리는 몰랐던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삶은 우리와 다를 바 없음을 우리는 애써 무시한 것은 아닐까?
'석균'의 꼰대질이 그저 인정받고 존경받고 싶은 마음에서 날리는 분풀이의 일갈임을 기억한다면, 또 한편으로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긍지를 가진 한 선배의 안타까운 조언임을 떠올린다면 그의 꼰대질이 쓸데없는 소리에서 끝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과 다를 바 없음을, 주변의 후배들, 동생들, 어린 친구들이 조금 더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라는 우리의 조언과 다를 바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결국 그들은 -단지 사랑만 우리와 같은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우리와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