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얘기가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바로 텃세다. 직접 겪어보니 텃세는 마을전체가 문제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개인 인성의 문제였다. 그러니까 이웃을 어떻게 만나느냐의 문제가 가장 크다는 말이다. 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골로의 이사는 가능하면 이웃이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이 좋다. 예전 어떤 유명 철학자가 말했듯 인간관계는 계속 변하고 영원히 좋은 관계는 없다. 내가 이사 간 집은 운 나쁘게도 앞집과 뒷집이 원수지간이었다. 이사 가기 전에 그런 사이인 걸 미리 파악할 방법은 없었다. 가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이다. 한 번은 쓰레기가 많이 나와서 뒷집 아저씨(이 분은 면사무소 쓰레기차량에 탑승하시는 분이었다)가 지정장소라고 설명해 주신 장소에 내놓았는데 그 다음날 오전 7시쯤에 갑자기 앞집 아저씨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이런 xx xx같은xx야 어디 쓰레기를 남의 집 앞에 내놓고 지랄이야! 당장 안치워?!"
받자마자 막무가내로 욕을 쏟아냈다. 아침에 자다가 갑자기 욕을 먹자니 정신이 없었다. 지정 장소에 내놓은 건데 왜 그러시냐 하고 믈었지만 대답없이계속해서 욕만 이어졌다. 알고 보니 뒷집 아저씨는 일부러 앞집 아저씨 집 근처에 지속적으로 쓰레기를 내놓고 있었으며 나를 그 싸움의 소용돌이에 끌어들인 것이었다. 자신의 싸움에 남을 끌어들이는 비열함도 그렇지만 그렇다고 전화하자마자 쌍욕을 퍼붓는 사람도 이해가 가지는 않았다. 그 두 집이 원수지간이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하필이면 왜 이런 곳으로 이사를 왔을까. 정서적인 피해가 막심했다. 때때로 그들이 길가에서 멱살을 잡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이 집에 가면 저 집 욕을 저 집에 가면 이 집 욕을 들어야 했다.
시골은 도시와 거의 모든 면에서 다르다. 인구 밀도가 그런 차이를 만든다. 도로 한가운데에 갑자기 차를 세운다던지(비상등도 안켜고), 길가에 무언가를 말린다고 널어놓는다던지 하는 행동들의 근본을 생각해 보면 인구가 적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차 몇 대 지나가지 않는 도로라서 혹은 자기 밭 앞이라서 차를 그냥 세우는 것이다. 수많은 차와 사람들이 엉켜 살기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도로규범을 어기면 금세 엉망이 되어버리는 도시와는 다르다. 이런 분위기를 이해하지 못하면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받고 살게 된다. 나처럼. 나는 둔하고 느려서 그걸 깨닫는데 몇 년이 걸렸다. 도대체 내 눈에는 이해가 안 가는 것들 투성이었다.
언젠가부터 마을의 농로 일정구간에 가로등이 켜지질 않았던 적이 있다. 안 그래도 해지면 어두운데 가로등까지 안 켜지니 칠흑 같은 어둠이 따로 없었다. 그 길은 바록 농로였지만 관광객이나 주민이 차를 타고 자주 지나다니는 도로였다. 가뜩이나 좁은 길에 밤에 가로등이 꺼져있으니 지나다니던 차가 몇 번 논으로 추락하는 일이 생겼다.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었는데 길의 양쪽 끝이 수직으로 잘린 구조이기 때문에 일단 바퀴가 시멘트를 벗어나면 차가 2미터 아래 논으로 추락하고만다. 어둡디 어두운 시골의 밤을 밝히기엔 헤드라이트만으로는 광량이 충분하지 않았다. 사고가 자꾸 이어지자 마을사람들이 가로등이 꺼지는 원인을 찾았는데, 한 농부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그는 밤에 가로등이 켜있으면 쌀이 잘 여물지 않아서 자신이 가로등을 껐다고 했다. 도시에 살다 온 나는 가로등 같은 공공시설물을 그렇게 개인이 켜고 끄고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됐다. 면사무소 차원에서 농부에게 주의를 주고 사건은 마무리되었으나 가로등은 얼마 후부터 다시 또 꺼졌다. 그러나 그 아후론 아무도 다시 문제 삼지 않았다.
이렇듯 시골에서의 생활은 이상한 나라로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내가 도시에서 자라나면서 익힌 상식과 이성은 이곳에서는 무용지물이 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