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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화 Jan 03. 2021

좋은 계절이 왔다 1.

전원주택에 산다.

4월에 이사를 하고 가을이 되었으니 벌써 계절을 세 번이나 지내고 있는 셈이다. 시골은 계절의 변화를 예민하게 느낄 수 있다. 산촌 마을에 지대가 높은 곳에 터를 마련하고 집을 지어 올린 덕에 조망권은 꽤 좋은 편이다. 뒤로는 솔숲이 둘러쳐 있고, 바로 눈 앞으로는 논과 밭. 그리고 드문드문 보이는 인가. 더한 장관은 멀리 보이는 저수지인데 가을이 되고 새벽의 기온이 내려가자 저수지 쪽에서 넘실거리며 움직이는 물안개를 집 안에 통창을 통해서 볼 수 있다. 통창을 내길 정말 잘했다. 시공사와 이러저러한 문제점들에 대해서 얘기도 듣고, 보완을 하며 나름 공을 들였는데 집에 통창을 내고 가릴 것 없는 트인 전망을 보기 위해 일부러 정원도 집앞이 아닌 집뒤로 냈다. 그래서 엄밀히 보면 전면 통창이 아닌 후면 통창이 되었다. 시골로 오면 가장 골치라는 작은 날벌레들도 기온이 차가워지자 약속이나 한듯 한 번에 사라졌고 방충망 없이 창을 열 수 있어 실내에 있어도 야외에 있는 듯한 개방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아무리 넓은 평수에,  넓게 뽑았다 하더라도 아파트 베란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속이 뻥 뚫린 듯한 개방감은 전원 주택에 사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선택된 사치라고 할 수 있다.

바람 소리, 흙냄새, 이제 곧 추수할 논에서 나는 누룽지 냄새, 코 끝이 싸하게 느껴지는 바람에 섞인 찬 기운. 예쁜 잔에 커피를 따뜻하게 내려서 창을 통해 보이는 시원한 풍경을 배경 삼아 sns에 업로드 하면 좋아요와 함께 부러움 가득한 댓글들. 나의 결정과 노력, 열심히 살아가는 일상을 응원받고 칭찬받는 듯한 이 기분은 전원 주택으로 이사를 하고 난 후 덤으로 얻는 일종의 보너스라고나 할까?

이사를 하니 좋으냐는 주변의 질문에 대해서는 항상 신중하게 말하는 편이다. 집을 짓겠다는 결심을 하기까지 또한 집을 지으면서 골치 아픈 여러가지들을 함께 공유했던 이들이 많았던지라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이 공존하기는 하나 대체적으로는 만족스럽다는 결론. 주거 지역이 도심에서 시골로 옮겨지는 만큼 예상되는 불편한 점들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정도는 방비를 해 놓았다고도 할 수 있고. 예를 들어 가장 두려웠던 것이 방범의 문제. 도심지의 아파트도 방범에서는 완벽하달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인적이 드물고 어두운 시골에서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으니 개인 경비를 들이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는 감내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설계 당시부터 절대로 밖에서 누군가가 기어 들어오지 못할, 내부가 밖에서 쉽게 보이지 않는, 외부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현관의 위치도 너무 오픈되지 않게 고민하면서 설계를 했다. 이사 전부터 시청과 읍사무소를 쪼아대며 가로등 설치에 대해 역설을 했다. 다만 cc tv의 설치는 좀 미뤘다. 아마도 조금만 불안하다 싶으면 그것만 들여다 볼 것이 뻔했으므로.

그렇다. 나는 내 삶을 오롯이 살고 싶어서 전원 생활을 택했다.

사람들과의 복잡한 관계가 피곤했고,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것이 힘들었고, 주변의 변화에 동참하지 않으면 어느 사이엔가 뒤쳐져있다는 느낌을 가지며 조급한 삶을 사는데 지쳐있었다. 그런 것들에서 잠시 피해있는다 한들 아주 버릴 것이 아니라면 완벽한 자유는 아닐테지만 적어도 핑계거리라도 만들어 내고 싶었달까? 조금 어눌고, 느리고, 뒤쳐졌어도 나는 시골에 살잖아 하는 핑계를 댈 수 있다는 삶의 형태가 내가 전원 생활을 선택한 이유였다.  

강아지가 산책을 충분히 할 수 있고, 야생 고양이들에게는 기꺼이 안식처가 되어주고, 비록 창공은 아닐지라도 같이 사는 앵무새들도 날고 싶은 만큼 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친구들이 놀러와 같이 음식을 먹고 와인을 마시며 떠들고 놀다 갈 수 있는 집.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잔뜩 심을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며 살수 있는 오롯한 나의 세계를 갖고 싶은 이유. 이것만 충족된다면 몸이 다소 피곤한 시골 생활이라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동으로 낸 침실의 창, 도심지보다 일찍 뜨는 것 같은 해, 가릴 것 없이 퍼지는 햇살, 기온의 차이로 지붕에 맺힌 이슬이 떨어지는 소리 등등의 이유로 기상 시간이 빨라졌고 덕분에 새벽에서 아침으로 이어지는 찰나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 저수지와 산에서 피어오르는 안개가 햇살로 엷게 사라지게 되는 8시 경에는 집 안의 창을 활짝 열고 신선한 공기를 집안 가득 들여야지. 밤새 묵은 공기가 바깥 공기와 자리 바꿈을 하는 동안 커피를 한 잔 마시고 강아지 산책 준비를 하고 동네 산책을 나가는 실로 평범하지만 낭만적인 일상.

이런 것들은 좋은 계절을 맞이하면서 살벌한 현실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산에서 구름처럼 피어나는 안개와 저수지의 물안개를 제압하듯 피어나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연기가 주범이었다. 도대체 무엇을 태우는지 모르겠지만 마주보이는 마을에서는 매일 연기가 뿜어져 나왔고, 그것은 바람을 타고 내가 사는 동네까지 기세 좋은 위용을 뽐냈다.


"오늘 미세 먼지 농도가 심한가봐 하늘이 뿌옇게 보여."


하늘을 뿌옇게 만드는 것이 미세 먼지 뿐만이 아니라는 것은 오래지 않아 알았고, 그것은 단지 눈앞을 뿌옇게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탄내를 동반한다는 것과 새벽부터 오전 11시 경까지 계속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또한 그것이 겨울이 끝날 때까지 계속 될 것이라는 것도 곧이어 알게 되었다.

밤새 묵은 공기를 바깥의 새벽 공기와 바꾸면 큰일이 난다. 바로 공기 청정기가 빨간색 불을 켜며 갑작스런 노동에 들어간다. 쾌적하려면 문을 열지 말고 공기청정기를 돌려야 한다. 여름에는 에어컨이 만들어낸 냉기를 밖으로 빼앗기지 않기 위해 창문을 열지 못했다면, 가을부터는 바깥에 오염된 공기를 내부로 들이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창문을 열면 안 된다.

같이 사는 앵무새들의 공간에 환기를 위해 설치한 열회수장치를 켰다간 떼죽음 당한 새들의 사체를 치워야 할 판이었다. 결국 도심지에서나 시골에서나 깨끗한 공기를 위해 필요한 것은 정화 능력이 좋은 공기청정기 뿐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이사한 지 몇 달이 안 돼서였다.

그제서야 집을 짓기 전 단지를 오며가며 알게 된 사람들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사실 농담처럼 시작한 말이었다. "그런데 이런데서 살면 쓰레기 처리는 어떻게 해? 일반 쓰레기, 재활용, 음식 쓰레기를 막 들고 날라야 하나? 어디로? 남의 동네 쓰레기 수거함에 선물처럼 놓고 와야 하나?"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부분이기도 했고, 미리 살고 있는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장소를 물어보려는 의도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한 이후에는 줄곧 아파트 생활을 했던지라 이런 종류의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내가 버리는 쓰레기들을 잘 정리해서 수거 장소에만 갖다 두면 나머지는 경비 아저씨들의 몫이었으니까.

뭔가 해결을 바랐던 질문은 초현실적 대답으로 돌아왔다. "뭘 그런 걸 걱정을 해. 재활용은 할 필요없이 쓰레기는 태우면 되고, 음식물은 땅에 묻으면 되지. 시골에서는 그렇게 막 따지도 살지 않아. 그냥 자연 속에서 사는거지." 재차 질문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이 초현실적인 대답이 '초현실'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지금, 21세기. 미세 먼지와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고 지구의 환경을 고민하는 현실 속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믿을 수 없지만 현재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이랬다.

실제로 우리가 이 동네로 이사를 오기 전까지 이 동네에는 쓰레기 수거 장소가 없었고, 당연히 수거해 갈 쓰레기가 나오지 않았으니 수거 차의 방문도 없었다. 처음 이사와서 한 일은 관공서에 쓰레기 관련 민원을 넣는 일이었고, 수거 날짜를 확인하고, 수거 여부에 대해 매 주 확인을 하고, 약속한 날짜에 쓰레기 수거가 되지 않으면 재차 민원을 넣어 쓰레기 수거를 재촉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이 사건으로 유별나고, 예민한 사람이 되었다.    


워낙 오래된 마을이고, 고립된 산속 동네라 동네 노인들의 생활 습관이 쉽게 바뀌겠냐만 또한 멀리 병풍처럼 펼쳐진 산 밑에 드물게 자리한 인가와 평지마다 펼쳐진 논이며 밭에서 난 농작물을 수확하고 난 뒤 기타 부산물을의 소각 역시 오랜 습관이라 어느 정도는 적응하고 감수해야 할 시골 살이의 몫인가보다 했는데 문제는 더욱 가깝게 있었다. 하긴 가깝게 있으니까 문제이지, 멀면 문제가 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어쩌면 예상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일은 전조가 있는 법이지. 다만 자기의 상식과 사고 내에서 생각하고 결정하는 인간의 편의가 잠시 보이는 것을 안 보인다고 착각했을 뿐이지 이런 대형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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