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이게 되네
한 1주 전부터 인스타그램에 인증글이 많이 올라오던 '본디'. 앱을 까는 걸 귀찮아해서 미루고 미루다가 술자리에서 친구들이랑 깔았는데 정말 붐이긴 붐이더라. AR 기획자인 선배와 이게 되네 하면서 왜 잘 됐을까를 잠깐 얘기했었는데, 함께 의논했던 내용과 내 생각을 덧붙여서 조금 써보려고 한다.
둘다 입모아서 한 말은, 일단 귀여우면 장땡. 본디의 캐릭터부터 보면, 남녀노소 좋아할 만한 캐릭터 디자인이다. '무난'한 캐릭터 디자인이 생각보다 꽤 어렵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너무 사실적이어도 징그럽고, 너무 예쁘장해도 연령층이 조금만 올라가면 벌써 오그라든다고 느껴질 수 있다. 동그랗고 찰흙 같은 캐릭터가 단순히 10대뿐만 아니라 많은 연령층에게 어필한 요소가 아닐까 싶다.
예시를 들어보려고 여러 메타버스 캐릭터를 가져와봤다. 삼성 갤럭시의 AR 이모지는 사진을 기반으로 만든다. 커스텀도 가능하지만 인간의 비율이 그럴듯하게 맞춰져 있어서, 오히려 약간 불쾌한 골짜기가 될 수 있다. 예쁘게 만들기도 어렵고... (죄송합니다)
제페토의 경우엔 현실성은 줄이고 캐릭터성을 최대로 부각시켰다. 커다란 눈, 갸름한 얼굴에 전형적인 '예쁜' 얼굴이다. 캐릭터를 못 생기게 만들기도 힘들다. 문제는 20대인 나도 오그라들어서 못 쓰겠다는 점...
뭐든 정반합이라고 했던가, 2020년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겹치며 대히트를 친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너무 오그라들지도 않으면서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느낌을 살렸다. 2등신으로 최대한 단순화하여 그렸으면서도 여러 커스텀이 가능하다. 우리 부모님도 좋아하실 만큼 어필할 수 있는 디자인이다.
메타버스 서비스의 기본 중 기본은 아바타이다. 메타버스의 구성 요소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가장 첫 번째로 나오는 것은 단연 아바타이다. 그만큼 아바타 디자인에 꽤 공들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순해 보이는데 예쁜 게 원래 제일 디자인하기 힘든 거다.
꾸미기 아이템이 무료인 것도 플러스 요소이다. 아직 오픈 초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모든 아이템이 무료이다. 거기다 더 좋았던 건 세팅값을 저장할 수 있다는 점. 아바타도, 방도 여러 방법으로 꾸미고 저장해둘 수 있다. (사실 나도 거의 5개씩 만들어봤다 ㅎㅎ) 옷이나 헤어도 하나같이 예쁘고 트렌디한 요소들이 많다.
본디는 친구를 50명으로 제한한다. 부제가 '찐친들의 메타버스 아지트'이듯이, 50명 안에 들지 않으면 친구 자체를 맺을 수가 없다. 이 부분이 참 흥미롭게 다가왔는데, 1) 친구 신청에 정말 조심스러워지고 (얘가 내 인간관계 top 50명 안에 드는가?를 따지게 된다. 안 친한 친구에겐 아예 친구 신청도 하지 않는다) 2) 50명이 꽉 차기 전에 친구가 되어야겠다는 FOMO를 자극한다. 25명도, 100명도 아닌 딱 50명이 적절하게 느껴졌다. 나만 해도 1주일에 1번 이상 연락하는 친구들은 50명 언저리인 듯하다.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는 '인덱스 관계'라는 말을 썼는데, 그만큼 Z세대는 관계를 정의하고, 분류(인덱싱)하고, 그에 맞는 방식으로 소통한다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의 '친한 친구' 기능이나 카카오톡의 '멀티 프로필'이 그렇듯이, 본디는 정말 친한 친구라는 세그를 타겟한다.
본디는 그 점을 잘 살린다. 50명 자체가 소규모이기 때문에, 홈화면에서부터 친구들을 전부 볼 수 있다. 포스팅에서는 친구들의 상태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제일 귀엽게 느껴졌던 건 아파트 기능인데, 마치 벌집처럼 친구들이 꾸며놓은 정육면체의 원룸 공간을 다닥다닥 붙어서 볼 수 있다.
채팅창도 귀엽다. 밑에 아바타가 떠서 대화하는 기분이 든다. 같이 피크닉을 할 수도 있고, 춤을 출 수도 있다. 아바타 때문에 텍스트는 많이 보이지 않지만, 그만큼 귀여우니까 용서. 오른쪽 아래의 '뭐해?' 버튼을 누르면 상대방이 마치 비리얼(BeReal, 랜덤하게 오는 푸시 알림에 즉시 사진을 찍어야만 포스팅이 가능했던 SNS)처럼 사진을 찍어 올릴 수 있다. 그룹 채팅은 현재 10명까지만 가능하다. 현실적인 소통보다는 귀여움을 추구하는 느낌이 강했다. (효율성 따지면 이러니 저러니 해도 한국에서는 아직 카톡을 이길 앱이 없다...)
이 폐쇄성을 만회하려고 하는지 '플로팅' 기능이 있다. 마치 옛날 랜덤 채팅인 돛단배를 연상시키는 랜덤으로 다른 유저를 만나는 기능이다. 아직 활성화가 된 느낌은 아닌데, 플로팅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랜덤 아이템도 제공하고 화면에서 나가도 플로팅을 지속하는 '오토 플로팅' 기능도 있다.
인스타그램에 본디 인증이 올라올 때 겹치는 말들이 있었는데, '나도 이제 Z세대'라는 말이었다. 분명 본디는 지금 '패드(Fad)'에 가까울 만큼 뜨거운 열풍이다. 마치 이걸 하지 않으면 뒤떨어지는 것처럼 트렌드의 중심에 있다. 이 현상이 나에게 기시감을 주었다. 바로 클럽하우스 때였다. 드디어 가입했다며 너도 나도 인증하던 게 무색하도록 지금은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앱이 되었다.
본디에는 인증샷을 올릴 수 있는 요소가 많다. 아바타도, 친구들도 다 스크린샷 말고 저장할 수 있는 별도의 버튼을 제공하고 있다. (상단의 많은 사진들이 그렇다) 50인 친구 제한으로 FOMO를 자극하는 것도 클럽하우스를 연상시킨다. 이로 초기에 많은 유저를 유입하는 데에 성공했다.
문제는 다음 스텝이다. 어떻게 이렇게 유입된 유저들의 지속 시간을 늘릴 것인가?
가장 우선으로는 화폐 단위가 도입되지 않을까 싶다. 메타버스의 4요소를 꼽을 때 아바타, 공간, 행동,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경제활동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화폐 단위가 있고, 그 안에서 아이템을 사고 팔거나 게임을 통해 돈을 획득하는 형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템들이 유료화되고, 대신 게임 중에 돈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길 것이다. 파이브 가이즈, 맥도날드 등이 심즈에서 매장을 냈듯이 기업들이 아이템을 내거나 공간을 만들어 홍보할 수도 있을 테고.
추가적으로, 게이미피케이션은 필수일 것이다. 현재 본디는 근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 앱이다. 게임보다는 소셜 미디어에 가까운 특징을 갖고 있다. 아무리 캐릭터를 꾸며도 친구들과 소통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런 차원에서 혼자 시간을 보낼 만한 요소가 더 들어가야 할 것이다. 지금은 꾸미기 정도에 그친다면 게임이라든가, 좀더 추가적인 콘텐츠가 보충되어야 할 것이다.
코로나 시기에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들이 뜨고 졌다. 하지만 결국 리오프닝이 되면서 아무것도 IRL (In Rea Life) 경험을 대체하진 못 한다는 것을 증명한 것 같다. 메타버스 붐이 지면서 메타버스는 헛소리(Bullshit)이라는 기사가 화제였던 것처럼, 결국 메타버스는 현실의 하위 호환이라는 의견이 더 대두되었다.
하지만 결국 본디는 또 떴다. 메타버스라는 호들갑스러운 용어가 아니더라도, 캐릭터와 가상공간이 완성도만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듯하다. 현재 성장하고 있는 시장이 아니더라도 잘 만든 서비스는 결국 뜨게 되나 보다. 가끔 보면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인 서비스가 더 성공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앞으로 지속 가능한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본디가 갈 길은 더 남아 있지만, 성공적인 런칭은 일단 성공했다. 여기서 꾸준히 성장해 메타버스 성공 사례로 남아줄지, 또다른 코로나 유행으로 지나갈지는 더 지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