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 간의 경험, 주제별 짧은 정리
암스테르담에 있는 글로벌 온라인 여행 서비스 B사에서 일한지도 이제 10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그 동안 포스팅을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한국에서 외국으로의 바로 이직은 생각보다 쉽진 않았다. [링크 참고]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직 성과를 잘 낸다고 할 만한 상태는 아니지만, 그래도 회사의 문화, 프로세스, 사람들 그리고 내 Product에 많이 적응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3월이 지나면서 따뜻해지기 시작한 날씨도 ‘기분 좋아짐’에 한 몫을 한 것도 사실인 것 같다. 각설하고, 오늘은 네덜란드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들을 짧게 정리해보려 한다. 혹시나 외국에서 일할 기회를 모색하는 분이 계시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 참고로 저는 IT 업체 개발부서(Product team)에서 Product owner라는 직무로 일하고 있습니다. [Product owner란?]
** 세계 수십 개국에서 모인 직원들이 함께 일하고 있는 회사/부서 특성상 일반 네덜란드 회사와 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하십시오.
팀원 6명이 약속한 오전 10시 10분 전에만 출근하면 된다. 10시 10분에 standup 미팅이라고 각자 1) 어제 한 일, 2) 오늘 할 일, 3) 이슈를 공유한다. 미팅이 많은 나는 오전 9시 경에 출근해서 standup 미팅 시 팀원들과 확인해야 할 일 등 하루의 준비를 한다. 혹은 방해없이 집중이 필요한 업무를 한다.
보통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고, 개인 볼 일 마치고 출근하는 경우도 많다.
퇴근은 5시~6시 정도에 한다. 미팅이 늦게 끝나는 경우 퇴근이 좀 늦는 경우도 있으나, 보통은 5시 ~ 5시 반 정도에 업무를 접을 수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출근하기에 눈치보지 않고 필요한 경우에는 5시나 그 전에도 퇴근하기도 한다.
공식적으로 ‘야근’을 해서 수당을 받으려면 미리 결재를 받고 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입사 후 9개월 동안 한 번도 신청해 본 적 없다. 야근이라고 해봤자 6시 반 정도까지 일하고 늦게 퇴근하는 정도였다. 6시 즈음이 되면 다들 퇴근을 하기에 더 남아서 일하고 싶은 기분도 안 든다. (억울한 기분?)
다만, 직무 특성상 ‘나 때문에 팀이 일하기 힘든 상황’을 막기 위해 가끔은 밤에 노트북을 펴고 업무를 한다. 특히 한 주의 시작을 앞둔 일요일 밤에 잠시 노트북을 열고 일하곤 한다. 월요일에 한 주의 업무를 정리하는 미팅을 주관하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업무 문화 관련한 글이나, 캐나다에서 개발자로 근무중인 지인의 얘기에 따르면 1:1 대화도 일주일 전에 시간을 잡고 캘린더에 일정 저장 후 만난다고 들었다. 그래서 이곳도 마찬가지 일 줄 알았다. 어찌보면 개인의 권리가 더 강한 유럽 아닌가? 결과는? 어느 정도 맞긴 했지만 생각보다 빡빡하진 않았다. 처음엔 굉장히 조심스러웠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급한 일의 경우 한국식으로 직접 찾아가서 물어보고 답을 받는 경우도 많았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눈치라면 “방해해서 미안해. 근데 온 김에 빨리 물어볼게”라고 빠르게 치고 들어가 답을 받거나, 최소한 주제에 대해 환기를 시켜주고 공식적인 1:1 대화 일정을 잡고 오곤 한다. 물론, 급하지 않은 경우는 대부분 구글 캘린더로 일정을 미리 잡고 만난다.
이전에 쓴 글과 같이 전화로 업무를 처리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링크]
실리콘밸리의 업무시간은 엄청 빡빡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이곳 친구들도 숨 쉴 시간 없이 일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유럽’이기 때문인 건지, 아니면 회사의 문화인 건지, 생각보다는 여유있게 일한다. 흡연자가 한국보다 훨씬 많은데, 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 씩 밑에 내려가 담배를 피고 온다. 다만, 한국처럼 우루루 내려가 잡담을 하면서 피거나, 여러 명이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케이스는 많지 않다. 대부분 개인적으로 볼 일만 보고(?) 바로 올라 온다.
육아 휴직은 3개월 정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주위에 출산 후 다시 복귀하여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Contract에 따라 다르지만 육아를 위해 근무 형태나 일시, 재택근무 비율 등을 HR과 조율하는 케이스도 봤다. 전체적으로 육아 관련해서 부모가 회사/상사 눈치를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다만 금전적으로 day care가 무료는 아니고 어느 정도 돈이 들어간다. 정부에서 어느 정도 보조금은 주며, 무료 공교육은 자녀가 만4살이 된 이후에나 가능하다.
네덜란드라는 나라 자체가 맞벌이 비율이 굉장히 높은 나라라고 들었다. 내 생각이지만, 세금이 워낙 센 나라이기 때문에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애들 키우면서 살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벙개’로 술을 마시러 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보통은 며칠, 몇 주 전에 미리 날을 잡고 저녁이나 술을 마시러 간다. 모든 자리에 참석은 자유다. 팀 회식이라고 해서 꼭 갈 필요는 없다.
공식적인 팀 outing을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팀(6~7명) 회식의 경우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저녁을 먹는다. 저녁 먹기 전에 방 탈출(‘escape’라고 한다)이나 레이저 서바이벌 게임 등의 활동을 하기도 한다. 한국 회사의 젊은 회식 분위기와 비슷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회식은, 암스테르담 canal 을 다니는 배를 빌려서 두 시간 동안 선상에서 저녁과 술을 먹고 춤도 추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경우다. 배에서 내릴 수도 없기 때문에 조용히 집에 가는 것도 불가능했던 반강제적으로 즐겨야 했던 회식이었다.
가장 적응 안됐던 건 6시부터 계속 맥주만 마시고 저녁을 안 먹는 것이었다. 보통 Pub에 가서 앉거나 (대부분) 서서 맥주를 마시는데, 손님들이 많은 경우 Pub에서 튀김 안주를 돌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 이 튀김 안주를 저녁 삼아 먹는 경우가 많았다. 9시 넘어서까지 늦게까지 마시는 경우에는 2차로 버거를 먹으러 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커뮤니케이션' 관련해서는 이전에 적은 글들을 참고하길 바란다. 한 가지 이전 글에서 언급하지 않은 점은 over-communication도 좋을 것이라는 점이다. 해외에서 업무를 하는 것이고, 동아시아인들은 좀 조용한 편이라는 편견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자신감을 가지고 조금은 과할 정도로 over communication을 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 주위 사람들이 동아시아인들에 대해 편견을 언급한 적을 본 적은 없다. 허나 보통 서양에서의 아시안에 대한 stereotype이 '조용하고 순종적이다'라고 들은 적이 있기 때문에 언급을 했다)
한국인들은 ‘틀리면 어쩌나’하고, 무언가 확신이 있거나 자신이 있을 경우에만 다른 사람/팀과 공유를 하거나, 보고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 눈치를 많이 보고 ‘틀리는 것’에 두려움이 많은 문화 특성상 그런 것 같다. 나도 아직 그렇다. 하지만 여기서는 ‘맞고 틀린 게 없다’. 서로 생각이 다른 것이고, 그 다른 생각이 어느 정도 논리와 데이터가 뒷받침된다면, 공유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개인적으로 올해 업무 목표 중 하나가 1) 명확하게 내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전달하는 연습을 하고, 2) 용기를 갖고 무조건 '많이 하자’다.
한국 회사에도 성격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고, 별의별 사람들이 있지만, 이곳에서의 스펙트럼은 더 넓은 것 같다. 정말 다양한 국가에서 다양한 인종의 직원들이 모여 함께 일하고 있고 성격도, 배경도, 영어 발음도 천차만별이다. 어찌보면 더 일하기 힘든 것 같지만, 한국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원하는 바와 불만, 반대의견을 얘기해주기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는 오히려 한국보다 적은 것 같다. 다만 이제 겨우 10개월차 이기 때문에 어디가 좋다 나쁘다를 얘기하기 힘든 상황이다. (한국에서는 10년 업무 경력이 있다.)
이 부분을 적어보려 했는데, 나는 여지껏 분기 평가 두 번 진행한 것이 업무평가의 전부였다. 또한 매니저도 딱 한 명 경험해봤기에 회사 전체적으로 성과에 대한 평가가 공정한 지, 기준이 명확한 지 등에 대한 판단을 하기에는 좀 이른 것 같다. 이 부분은 좀 오래 지난 후에 따로 주제를 잡아서 글을 써보겠다.
암스테르담은 네덜란드의 수도이지만 서울과 그 크기를 비교할 순 없다. 20분 조금 넘게 메트로를 타면 남쪽 끝에서 북쪽 끝으로 이동할 수 있다. 나는 암스테르담 남쪽 끝에 거주하며 시내에 있는 사무실로 출퇴근한다. 메트로로 출퇴근하며 메트로 시간만 따지면 18분, 걷고 기다리고 하는 등의 시간을 다 합하면 30~35분 정도 걸린다.
주위를 봤을 때 나는 좀 오래 걸리는 편이다. 보통 암스테르담 시내에 거주하는 직원들은 자전거나 트램으로 출퇴근하며 10~20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특이하게 다른 도시에서 기차로 출퇴근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기차-메트로 연결이 잘 되어 있고 근교라고 해도 상당히 가깝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이 1시간을 넘는 경우는 딱 한 명 외에 본 적이 없다. 네덜란드 법상 출퇴근 거리에 따라 교통비 지급을 해주기 때문에 교통비 부담을 어느 정도 덜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