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 및 에펠탑
4월 중순부터 2주 동안 2024년 (상반기)최대의 낯선 일이 있었다. ‘소소하지만 낯선’ 이 아니라 ‘엄청나고도 낯선’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부모님과 함께 파리로 여행을 가게 된 것이다. 2주 동안 계속 파리에만 있었다. 3월부터 나는 계속 파리 여행을 계획하고 예약하느라 바빴다. 일 속에 파묻혀 있을 때라 복잡한 한 가운데, 설렘도 느꼈다.
앞으로 몇 차례의 글에 걸쳐 고단했지만 멋지고 신났던 파리에서의 낯선 경험을 돌아보기로 한다. 지인분께 이런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유럽은 실제로 여행을 다닐 때가 아니라 다녀와서 추억할 때 더욱 근사한 곳이라고 말이다. 글을 올리며 나는 어쩌면 더욱 근사한 ‘추억 속의 여행’을 하게 되리라.
그럼 첫날과 다음날의 기억부터 출발해보기로 합니다!
#14시간 여의 비행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 파리 콜밴이라는 한인 택시를 타고 파리 15구의 노보텔 파리 상투르 투르 에펠 호텔로 갔다.
택시 기사분이 여러 꿀팁을 주셨는데 노보텔이라고 하자 “방이 좁아서 캐리어를 펼쳐 놓을 수가 없어요. 밤에만 들어가 계세요” 라고도 했다.
리뷰를 찾아봐서 알고 있었지만 세면대/샤워기와 변기가 분리된 구조에, 있긴 하지만 썩 좋지 않은 목욕용품 등 많이 쾌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프론트에 한국어를 하는 직원이 있을 뿐 아니라 아름다운 센강 뷰도 있고, 밖으로 나오기만 에펠탑을 볼 수 있어서 이런 불편을 덮고도 남았다.
파리의 느림과 답답함, 치안 문제 등 불편을 호소했던 기사분도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예쁘잖아요.” 10유로 대 와인이면 다 맛있다고 해서 첫날 저녁은 와인과 샌드위치로 가볍게 마무리했다.
#다음날은 에펠탑에 오르기로 했다. 파리에 가려면 가장 먼저 예약해야 하는 곳이 에펠탑이라고 해서 한달 보름 전쯤 에펠탑을 예매했는데 그냥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는 코스는 다 매진되고 샴페인이 포함된 코스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좀 비싸긴 했지만 ‘에펠탑에서 샴페인이라니’ 라고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는데.....에펠탑에 오르면서부터 살살 뿌리던 비는 꼭대기에 오르자 폭우와 강풍으로 변해 있었다.
비 때문에 앞도 잘 보이고 머리와 옷은 휘날리는 가운데 어떻게든 사진을 찍어보겠다고 필사적..... 그리고 샴패인도 마셔야지!
최소한 앉아서 마실 줄 알았는데 왠 고깔 컵에 샴페인을 따라준다. 폭풍우 속에서 간신히 고깔 컵을 부여잡고 샴페인을 마시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패딩을 입고 온 게 신의 한 수. 이 패딩 부피가 커서 두고 오려고 했는데.
#저녁은 미슐랭 식당 레 꼬끄뜨인가에서 먹었다. 난생 처음 가 보는 미슐랭 맛집이었다. 블로그에서 뒤진 돼지고기+ 감자 요리, 이 집의 시그니처인 듯한 오징어 먹물 리조또, 스테이크를 시켰다.
스테이크는 아빠 말씀으로 한국 게 낫다고 하시고, 돼지고기는 솔직히 조금 느끼. 먹물 리조또는 환상적이었다. 와인은 한잔씩만 마셨는데 비싸서 앞으로 식당에서는 시키지 않기로 했다.
#집에 가는 길에는 폭우가 더욱 심해졌다. 원래도 계속 오고 있었는데 두 배로 심해진 느낌이었다. 우산을 사고 걸어갈 예정이었으나 새하얗게 쏟아지는 비를 뚫고 이십여분간 걸어가기는 불가능해 보여 결국 지하철로 피신.
아, 그러고 보니 가르니에 극장을 보고 뮤지엄 패스 티켓을 찾은 이야기를 빼먹었네. 그냥 지하철 적응기라고 하면 될 것 같다(엄청 헤맸다는 소리).
파리에 도착하고, 파리에서 자고, 파리에서 먹고, 파리에서 걷고, 파리를 돌아다니고, 파리 지하철을 타고, 에펠탑을 보고 에펠탑에 올라가고, 파리에서 헤매고, 실망도 하고 감탄도 하며 파리에서의 첫 이틀이 지나갔다. 모든 것이 온통 낯선 경험이었다. 처음 도착해서 잠을 자는 그 순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