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마르트 투어
처음으로 가이드를 동반한 투어였다. 마이리얼트립에서 좋아서 하는 투어, 몽몽투어를 신청했다. 일요일에만 신청할 수 있는 투어라 우리의 첫 투어가 되었다.
지하철에 조금 익숙해진 우리는 아베세 역에 30분 일찍 도착했고 먼저 투어 만남 장소인 saint jean 성당에 들어가 둘러보았다. 아늑하고 편안한 곳이었고, 촛불을 켜고 기도도 바치고 가지고 있는 영수증 비슷한 종이에 금발 꼬마에게 펜을 빌려 소원도 적어보았다.
어딜 둘러봐도 예뻤던 몽마르트. 이번 프랑스 여행에서 우리 가족이 가장 좋아한 장소이자, 가장 맘에 드는 가이드를 만난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예쁠 뿐 아니라 장소 하나하나에 의미가 담겨져 있어 더욱 각별하다.
투어는 먼저 사랑해 벽으로 출발했다. 전세계의 ‘사랑해’ 라는 글자들이 모인 곳은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통해 알게 된 곳이기도 했다. 지금은 안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멀리서 한국어로 사랑한다는 말이 쓰인 부분을 틈틈이 찍어보았다.
몽마르트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유명한 예술가들이 뜨기 전, 가난했던 시절에 머물면서 그림을 그리고 세들어 살고 외상으로 술을 마시기도 했던 일종의 예술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피카소가 있는데 피카소는 20대 초중반을 몽마르트에서 지냈고, 이곳에서그의 청색시대에 해당하는 그림들이 탄생한다. 그리고 스물 일곱 살의 나이로 <아비뇽의 처녀들>이라는 그림을 그려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
피카소는 청색 시대에 인정을 받지 못하고 친구의 자살을 겪으면서 계속 우울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후 장미의 시대를 맞이하는데 이때는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인정을 받기도 하며 그림이 많이 밝아진 듯하다. 예술가의 내면이 고스란히 그림에도 반영되는구나 하는, 어쩌면 당연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몽마르트에서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팔거나 즉석에서 그림을 그려주는 화가도 많았다. 솔깃해서 좀 기웃거렸지만 가격이 좀 있는 편이라 사지는 않았다. 그림실력이 형편없는 화가가 그림을 그려주겠다고 나서는 경우도 많다니 조심해야 한다고.
달리의 기념관 같은 곳 앞에서 가이드 언니의 아이패드 속 그의 대표작이라는 <기억의 지속>이라는 그림도 감상해본다. 녹아내리는 시계 등 사라지고 흩어지는 감각을 포착한 듯한 느낌인데 이름에 ‘지속’ 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아이러니하다고도 느꼈다.
다음 명소(?)는 라팽 아질(Lapin Agile)이라는 카바레(선술집?). 피카소는 이곳에서 술을 마시고 돈이 없어서 술값 대신 그림을 한 장 그려주었다고 한다. 문제의 술집과 그림. 이 그림은 현재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뉴욕의 한 경매에서 무려 4천만 달러에 팔렸다고. 그림 속 기타 치는 사람이 이곳 주인이라고. 이런 소소한 일화가 재미있었다.
다음으로는 샤크레쾨르 성당에 갔다. 샤크레쾨르 성당은 파리에서 가장 높은 곳 몽마르트 중에서도 제일 높이 세워졌으며, 프로이센 전쟁에서 패한 후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뜻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프랑스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작품을 가이드 투어 마지막 날 다시 접하기도 했는데, 해당 리뷰에서 언급하기로 하고 우선은 ‘위로’ 라는 말이 마음을 움직였다고 해 둔다.
성당 외부에는 루이 9세와 잔다르크와 미카엘 천사의 조각상이 있다. 성당 안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성당 벽 양쪽의 천사들. 천사들이 잘 나오게 열심히 찍어본다. 베드로 상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하도 만져서 발끝이 닳아 있었는데 나도 그 닳은 자리를 만지며 또 소원 같은 것을 중얼거려도 보았다.
언덕 경사에 따라 찍으면 기울어진 것처럼 비스듬히 나온다는 ‘기울어진 집’ 의 사진도 찍어보고, 다음으로 몽마르트에서 만난 첫 번째 여인 수잔 발라동의 이름을 듣게 된 장소로 향한다.
수잔 발라동과 에릭 사티가 함께 살았다는 집 앞으로 가 본 것. 에릭 사티는 ‘나는 널 원해(je te veux)’ 라는 곡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 주인공이 수잔 발라동이라는 것은 이번에 처음 들었다.
수잔 발라동은 이번 여행 내내 반복된 이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르누아르 그림의 모델일 뿐 아니라 몽마르트의 화가 ‘모리스 위트릴로’ 의 어머니이며 본인도 유명한 화가였다고 한다. 아들의 친구와 결혼했다고도 하니, 매력과 품성이 남다른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몽마르트의 두 번째 여인은 바로 ‘달리다’ 다. 달리다라는 이름은 잘 몰랐지만 ‘빠로레, 빠로레, 빠로레’ 라는 노래는 들어보았다. 빠로레라는 노래에서 나레이션을 한 사람은 당대의 미남 배우 알랑 들롱이었으며, 당시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달리다의 동상과 달리다의 집도 구경했다. 동상에서 가슴을 만지면 또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해서 또 만져보았지. 이쯤되면 ‘소원 빌기’ 투어가 아닐까 싶다.
몽마르트에서는 나의 소소한 로망이 이뤄지기도 했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보고 가장 가보고 싶었던 장소가 플라스 달리다, 바로 달리다의 광장이었다. 파리의 끝이라고도 불리는 이 광장을 몽마르트에서 만났다.
가이드 언니의 열정과 성실함이 빛으로 다가왔던 투어였다. 빗속에서도 거침없이 이어지던 설명과, 뛰어난 사진 찍기 능력과, 기본 가이드 시간보다 1시간 남짓 초과해서 알려주던 것까지. 덕분에 몽마르트는 우리 가족의 최애 장소 중 하나가 되었다.
몽몽투어는 아직 그렇게 인기가 많은 투어 같지는 않다. 몽마르트 자체를 사람들이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고 가이드 분이 아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게 파리에서 가장 다시 보고 싶은 장소를 꼽으라면 몽마르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