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베르니, 오베르 쉬르 우아즈, 베르사유
베르사유 궁전은 차량 투어로 신청했다. 파리 시내와 1시간 이상 떨어져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투어 장소인 트로카데로 역에 가보니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 중 한 분이 내게 트로카데로 역이 서울 만남의 광장과 같은 곳으로, 투어를 할 때 주로 여기에서 모인다고 알려주었다.
여행을 오기 전 여러 블로그에서 파리 여행을 검색하던 중 눈에 들어온 ‘까레트’ 라는 카페가 역 앞에 있었다. 또 다른 한 분이 아메리카노를 마시려면 거기서 카페 알롱제를 시키면 된다고 귀띔해 주었다. 이런 저런 알림을 듣게 되는 이 곳, 만남의 광장 같은 곳일지도 모르겠다.
이날 일행은 여섯 명이었고, 혼자 온 한 명과 모녀 둘, 우리 세 가족이었다. 승합차를 타고 베르사유 아니고요 먼저 지베르니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잠자리가 예민한 편인데 나는 차 안에서 내내 곯아 떨어졌다.
지베르니는 간단히 설명하면 모네의 집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크게 재발견한 사람이 모네였다. 모네는 어릴 적부터 돈에 밝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캐리커쳐 같은 것을 그려 일반 노동자 한 달 월급의 세배나 되는 돈을 받고 팔았다니 어려서부터 캐리커쳐도 잘 그린 모양이다.
모네라면 수련의 주인공, 인상파의 중심인물, 예술+ 낭만적인 이미지로 생각하고 있던 터라 집에 돈이 많았고 본인도 돈을 잘 벌었다는 말이 의외였다.
모네는 돈도 잘 벌었을 뿐 아니라 정원도 잘 가꾼 모양이었다. 수련 정원으로 유명한 지베르니에 모네는 동/서양의 꽃을 심고 두루 잘 가꾸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대체로 시들지 않은 꽃들이 철마다 피고 있다고.
우리가 방문한 4월 중/하순 무렵의 꽃은 단연 튤립이었다. 화려찬란한 튤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모란을 좋아하는 나는 간간히 섞인 모란 찍기에도 여념이 없었다.
지금은 수련이 아니라 등나무 꽃이 핀 정원과, 가장 화사하게 튤립이 핀 장소에서 가이드님이 여섯 명의 사진을 골고루 찍어주고 자유 시간이 좀 있었다.
아무 의자에나 앉아서 가만히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던 지베르니. 모네의 레시피로 만들었다는 마들렌도 기막힌 맛이니 지베르니에 가게 되실 분들은 마들렌도 맛보시기를.
다음으로는 고흐가 7개월을 머무르며 70편 넘는 그림을 그렸다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갔다. 이날 엄마가 가장 좋아하신 장소로 꼽힌 이 마을은 고흐가 동생 테오의 권유로 찾아온 곳으로, 가셰 박사가 사는 곳이기도 하다.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었고, <러빙 빈센트>의 근거지가 된 곳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고흐가 그린 그림과, 그림의 원전이 된 곳을 둘러보고 고흐와 테오의 다소 소박한 무덤까지 보았다. 지베르니만큼의 화려함은 없었지만 고흐라는 화가의 쓸쓸한 말년을 돌아보게 만든 곳으로, 내게도 조용한 울림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주인공 베르사유 궁전에 갔다. 일단 웅장하고 거대한 스케일이었고, 오늘의 목적지 중 유일하게 내가 알고 있던 곳이었으나 투어가 끝나고 어디가 가장 좋았는지 물었을 때 베르사유를 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이드님은 “오늘도 베르사유는 없었다” 라고 답하심.
하지만 베르사유에서 한 가지 나의 관심을 끈 일이 있었는데, 전날 루브르 박물관에서 봤던 대관식이라는 그림의 다른 버전을 본 것이었다.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이 그림은 두 가지 버전이 있고 다른 부분은 모두 같지만 한 가지 점이 다르다고 한다. 한 여인, 공주의 드레스 색깔이 다르다는 점이다.
루브르에서는 공주의 옷이 흰색인데, 베르사유에서는 옷이 분홍색으로 바뀌어 있다. 화가가 혼자 공주를 연모하여 그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이런 사연과 차이가 흥미로웠다.
세 군데나 돌아보고 오니 몹시 피곤했다. 재미있고 즐겁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몸은 지치고,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는 체력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리고 다음날은 내 생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