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 탐방
학창시절에도 학교 집밖에 몰랐고, 지금까지도 집순집순하게 살아온 터라 20년 남짓 살아온 서울에도 안 가본 곳이 많다. 주변에 서울의 숨은 명소를 다니시는 데 취미가 생긴 지인 분이 꽤 오래 서울에 살았지만 서울을 잘 모르는 나에게 명소를 소개해 주기로 하셨다.
그 첫 장소가 서대문(혹은 돈의문). 돈의문 디타워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지하로 내려갔다. 디타워는 원래 경기 감영이 있던 자리였으며, 지하에는 옛 경기 감영도 등 경기감영지 유적 전시관이 있었다.
건물 위에는 은행과 식당 등이 있고, 지하에는 전시관이 있는 구조가 어쩐지 요상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서대문과 경기 감영의 관계를 전혀 몰랐던 나로서는 딱히 할 말이 없긴 하다.
디타워를 거쳐 4. 19 박물관으로 갔다. 4. 19를 기리는 시와 목숨을 바쳐 맞섰던 사람들의 기록(글과 사진)을 접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어서 강북 삼성 병원 안(?)에 있는 김구의 역사적인 장소(목숨을 잃은 곳)경교장에 갔다.
실제로 입었던 피 묻은 옷과 총을 맞은 자리 등을 보니 기분이 울렁거렸다. 뭐랄까,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자취가 남는다. 이것이 김구 선생님의 자취인가 싶었다.
이어서 돈의문 박물관으로 넘어갔다. 있는 줄도 몰랐는데 곧 없어진다고 했다. 추억 속의 영화관, 추억사진관, 예전의 이발소나 다방, 분식 등 여러 체험의 장소가 있었다. 나는 돈의문을 돌아볼 수 있는 VR 체험관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북한음식을 맛볼 수 있는 능라밥상이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능라밥상 옆에는 수백년 된 나무가 있다. 오래된 나무를 워낙 좋아하는데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해서 아쉽다. 식사를 하고 바로 맞은편의 딜쿠샤, 오늘의 하이라이트로 건너갔다.
딜쿠샤도 내게 생판 낯선 이름이었는데, 정식 명칭은 서울 앨버트 테일러 가옥으로 앨버트 테일러와 메리 테일러 부부가 살던 집이다. 오밀조밀 어여쁜 곳이었으며, 손재주가 뛰어났던 메리 테일러가 그린 금강산의 그림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다음 장소는 홍난파 가옥이었다. 손자분이 직접 이런저런 설명을 들려주셨는데, 이 가옥에서 하우스 콘서트가 진행된다는 점과 가옥에 있는 모든 물건은 전부 원본을 본 따 새로 만든 것이라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딜쿠샤와 홍난파 가옥은 오래된 집이면서 동시에 유적 같은 느낌이 든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경희궁으로 넘어갔다. 하늘과 구름이 예쁜 날이라 여기서 사진을 좀 건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서울 역사박물관을 보았는데 이때는 좀 지쳐 있어서 아쉽다. 반짝반짝한 서울의 풍경을 찍을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디타워에서 서울역사박물관까지를 돌아보았다. 나는 참 모르는 것이 많구나, 라고 느꼈고 그만큼 채울 수 있는 것이 많겠구나 하고 정신승리 비슷한 것도 해보았다.
4월에 있을 여행 준비에 한창인데, 멀리 있는 곳도 좋지만 가까운 곳부터 틈틈이 돌아다니는 시간을 마련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