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다.
옛날 못된 할머니가 살았는데,
죽고 나서 보니 착한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기에,
악마들은 할머니를 불바다 속에 던져 버렸다
그래도 이 할머니의 수호천사는 뭔가 구제할 거리가 없나 곰곰히 생각하다가,
단 하나의 선행을 기억해 내고는 하느님께 고했다.
할머니는 텃밭에서 양파 한 뿌리를 뽑아 거지 여인에게 준 적이 있었던 것이다.
하느님은 이렇게 말했다.
‘그 양파를 가지고 가서 할머니가 양파를 붙잡고 나오게 하라.
만약 불바다에서 나오면 천국으로 가지만, 양파가 끊어진다면 불바다에 남게 되리라.’
수호천사가 내민 양파를 붙잡고 할머니가 조심조심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다른 죄수들이 할머니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이건 내 양파야. 너희들 것이 아니라구!!”
그녀가 이 말을 하기 무섭게 양파는 뚝 끊어져 버리고
할머니는 불바다로 떨어지고 말았다.
천사는 하는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떠났다고 한다.
작년 연말 즈음 이맘때의 나를 위해 낯선 일 하나를 선물했다. 브런치를 통해 우연찮게 알게 된 고전문학 북클럽에 등록한 것이다. 사전 정보도 거의 없이 불쑥 한 것이라 이렇게 불쑥 신청하고 오프라인으로 찾아가도 괜찮을까 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단톡방이 열렸고, 무려 32기라는 이번 고전문학 팀에 새로 합류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작품은 무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북클럽, 독서모임의 매력은 혼자라면 읽지 않을 작품을 접한다는 데 있다고 했다. 마침 지인 중 한 명이 이 책이 인생책이라고 강력하게 추천하기도 했었다. 새해에는 도선생을 읽어보는 거야. 이런 결심이 낯선 일 추진과 더불어 이번 모임 신청의 사유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무척 만족스러웠다. 일단 질문이 깊다는 느낌이었다. 무려 14페이지에 달하는 발제문을 준비하신 운영자 님 혹은 발제자 님 혹은 연구소장님의 노고에 감사하고 싶다. 질문만큼이나 질문에 답하는 멤버들의 내공도 깊어 보였다. 망설이거나 건너뛰거나 하는 사람들이 없고, 모두 성실하고 열정적이었다.
더군다나 한 가지 뜻밖의 일이 있었다. 아무도 나랑 안면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마음이 작아져 있었는데, 나를 알아본 사람이 있었다. 은유 작가님의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분이었다! 세상에! 반가움과 친근함이 뒤섞여 줄어들었던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이번 모임에서 내게 다가온 단어는 ‘양파 한 뿌리’였다. 2권에서 언급된 일화로, 아마도 카라마조프네 형제들 중 가장 명장면에 해당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막내 알료사와, 아버지와 큰 형의 사랑을 받는 미모의 여인 그루센카의 대화에서 언급되는 이야기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양파 한 뿌리를 준 적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나누는 시간이 내게는 가장 깊이 남았다. 양파 한뿌리를 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하는 질문도. 가치판단없이, 옳다 그르다 하지 않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마음, 도선생님이 주장하신(저도 모르게 극존칭) 실천적 사랑이 이에 해당하지 않느냐 하는 이야기가 오갔다.
모임이 끝나고 단톡방에서 어느 한 분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양파 한 뿌리와 같았다’ 는 말씀도 해 주셨다. 우리는 이 모임에서 양파 한 뿌리를 주고받지는 못했을지언정 양파 한 뿌리를 키우기 위한 씨앗을 뿌리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물론 양파를 돈 주고 사거나 남이 심은 양파를 얻는 것도 좋겠지만 내 손으로 씨앗서부터 양파를 키우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 본다. 실천적 사랑, 계산 없는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 영성에 이르는 사랑으로 가는 길은 머나먼 여정이 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