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소노휴에 가다.
마감을 마치면 여행을 가려고 한다. 미처 여행을 가지 못할 땐 기분전환 삼아 나들이라도 하려 한다.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1박 2일로 양평 소노휴를 찾았다. 불멍패키지를 즐길 심산이었다.
작년에 이 친구와 글램핑을 하려 하다가 시간 등 여러 여건상(주로 마감) 때문에 가지 못했고, 불멍이라도 하자고 했다. 소소하게 낯선 일 덕후가 된 나는 불멍이라는 낯선 일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왠일, 비가 와버렸습니다. 불멍 패키지에 좌석 지정을 하러 내려갔는데 레스토랑 매니저님이신가 하는 분이 상당히 난감해했다. 그때는 아직 비가 오지 않았고 비 예보만 있었다. 한 시간만 더 기다려 보기로 하고 친구와 나는 카페에 갔다.
양평을 찾아보니 가장 자주 나오던 카페 중의 하나, 흑우재였다. 한옥 스타일의 멋스러운 분위기와 흑임자 라떼 등의 독특한 메뉴는 좋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았다. 힙함을 즐기기에는 우리는 좀 나이가 든 것 같다, 그런 것도 피곤하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카페에서 결국 불멍은 안 될 것 같다는 전화를 받았다. 대신 스테이크와 파스타, 피자로 먹부림을 즐기게 되었는데, 사진은 없다.......... 먹느라고........
실컷 먹으면서 수다를 마음껏 풀어놓았다. 친구가 불멍 취소를 많이 아쉬워하지 않아서 마음이 놓였다. 여행이든 일상에서든 어쩌면 변수란 언제든지 생기게 마련이다. 변수가 생기더라도 그 순간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즐길 수 있는 자세가 더욱 중요한 것이리라.
혼술 자제 모드인 나는 친구 덕분에 알코올 제한에서 풀려 새롭고 예쁜 술, 별빛 청하 로제를 처음 마셔보았는데 사진은 여전히 없다. 호가든 로제를 연상케 하는 맛이었다.
한참 수다를 떨다가 나의 취향인 <나는 솔로>를 보고, 친구의 취향인 <프리한 취향.....>을 보고, 피오와 지코가 간 한남 맛집 털보네 꼼장어를 가보자고 들떠버리기도 했다.
다음날 오전에도 카페에 갔다. 손님이 우리밖에 없어서 좋았고, 아기자기하고 편안한 느낌이 드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잠시 짬을 내어 다이어리를 펼쳤지만 다이어리는 뒷전이고 또 수다를 떨었다.
이날 우리가 다룬 주제는 디팩 초프라의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에 나온 질문이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있을까 해서 질문을 공개해 본다.
“무엇이든 가질 수 있고, 할 수 있다면 무엇을 갖고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 질문의 핵심은 ‘무엇이든’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해 서너 달에 한 번씩은 답을 써보는 편이다. 처음에는 막막하지만 쓰다 보면 점점 구체성을 띠게 되는 것 같다.
적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무엇이든 이루어진다고 믿지는 않는다. 그러기에는 이미 많은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하찮을지도 모르는 여러 좌절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런 기록과 상상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 그런 질문과 마주하는 것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기록과 성장이라는 관심사를 공유하는 친구와의 시간을 누린 여행이어서 충전이 된 느낌이다. 요새 낯선 일 자체고 기록이고 좀 뜸해진 느낌이지만 틈틈이 챙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괜찮다. 이어지고 있다. 자꾸 쫓기는 것 같고 놓치고 밀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도 차차 회복될 것이다.
나에게 괜찮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되는 요즘이다. 괜찮아. 잘 못 해도,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아도, 그냥 괜찮아. 어쩌면 조금은 느리게, 조금은 느슨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