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곡 근린공원 걷고 싶은 매봉길
번역 선생님 중 한 분은 일주일에 한 번은 사람들을 만나서 술을 드셨다고 한다. 그 힘으로 계속 버틸 수 있다고도 덧붙이심. 나도 일주일에 한 번은 술...... 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기로 한다.
약속이나 모임이 있으면 사람들을 만나면 되겠지만 없더라도 혼자 낯선 일을 하며 유유히 돌아다녀도 좋겠다 (물론 아무래도 마감이 임박해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작년에는 합창단 연습이 일주일에 한 번 정기적으로 나가는 자리가 되어 주었으나..........
그래서 이번 주에도 밖으로 나갔다. 양재도 아니고 양재천도 아니고 매봉역에서 만난다. 양재와 매봉과 도곡이 어떤 연결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근처인 듯하다. 엄청난 길치이지만 낯선 일에 꽂혀서인지 매봉역 나들이가 신선하고 반갑게 느껴졌다.
매봉역 4번 출구의 카페에서 지인을 만나 차를 마시고 바로 옆 건물에 있는 식당에서 두부 전골을 먹었다. 그다음에는 매봉역 2번 출구로 건너가 롯데시네마 도곡점에서 <서울의 봄>을 보았다. 매봉역 앞에 왜 도곡점이 있는 거지? 잘 모르겠다.
영화를 보고 롯데시네마 바로 뒷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법한 ‘도곡 근린공원 걷고 싶은 매봉길’이었다. 이 길은 매봉산과도 맞닿아 있다고 하는데 영화관 바로 뒤편에 고층 아파트 건물 속에 섞여 역시 색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나도 산세권(걸어서 산에 갈 수 있음)에서 살기 때문에 아파트와 산이 맞닿아 있는 풍경 자체가 낯설지만은 않다. 하지만 매봉산이 있는 줄은 처음 안 데다(그렇지, 나는 경기도민이지), 산속에서 타워팰리스까지 굽어보고 있자니 신선하다 못해 신기하기까지 했다. 갑자기 산 길을 걷게 될 줄은 몰랐어......
아파트 뒷산인듯한 곳의 산길인지 오솔길인지를 걸어 올라가다 보면 두 편의 시를 읽어볼 수 있는 의자들이 나온다. 의자에 잠시 앉아 시도 읽고 산 기운도 만끽해 본다. 복닥한 서울 속의, 쫓기는 듯한 일정 속의 가만가만한 ‘망중한’ 이라고도 느낀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가벼운 산행까지 한 해의 시작 무렵에 산뜻한 나들이를 다녀왔다. 그리고 ‘소소하지만 낯선 일(길)’ 의 소재도 얻었다. 앞으로 틈틈이 서울의 소소하지만 낯선 길(알고 있는 것 같지만 의외로 잘 모르는 길)을 거닐어보려 한다.
거닐면서 사진도 열심히 찍어야겠다. 몇 차례나 더 낯선 길을 걷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윤동주 시인이 말하듯 ‘나의 길은 오늘도 새로운 길’이라는 마음으로 내 앞에 펼쳐지는 길을 차곡차곡 밟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