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퍼포먼스와 피터 드러커
11월에는 다시 베트남으로 향했다. 하지만 1월에 비해 낯선 일은 별로 하지 못했다. 새로운 식당과 쇼핑몰 등을 가본 것이 거의 전부다. 일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일(번역) 이야기를 별로 자주는 하지 않은 것 같고, 사실 내가 맡은 일은 대개 낯선 면(장르, 주제 등)이 있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써보겠다.
제목에도 썼듯이 지난 11월에 맡게 된 작업은 HBR과 관련된 일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라는 잡지에서 특정 주제별로 10개 남짓의 기사를 골라 엮은 책을 번역하게 되었다. 시리즈로 기획되었으며, 첫 번째 주제는 ‘high performance’ 다.
다행히도 하이 퍼포먼스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이미 작업을 한 적이 있다. 작년쯤 나온 <탤런트(Talent)>라는 책에서 ‘high performer’ 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 것. 그때 처음에 멍청하게(?) ‘고성과자’라고 했다가 지적을 받고 ‘뛰어난(우수한) 성과를 내는 사람’으로 바꾸었다. 덕분에 문장이 좀 늘어지고 했던 느낌은..... 어쩔 수 없었고.
샘플 작업을 했던 첫 기사 다음으로 익숙한 이름이 나왔다. 무려 피터 드러커 옹! 한 꼭지만이어도 피터 드러커를 번역하는 날이 오다니 감개무량.....도 잠시 무언가 스멀스멀 이상한 느낌이 밀려오는데...... 이거 내가 아는 내용인데 이상하다...... 이거 왜 이렇게 익숙하지? 했더니만........
내가 번역하는 기사는 무려 1999년에도 나온 것이고, 난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 노트를 이미 읽은 거지. 그러니 익숙할 수밖에........
이미 읽고 아는 내용을 작업한 것을 낯선 일이라고 보기는 좀 어려울지는 몰라도 새삼스럽게 와 닿은 구석(?)이 있어서 이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최근, 아니, 몇 년 전부터 인생의 후반부나 노년을 잘 보내는 것에 대해 부쩍 관심이 커지고 있는데 피터 드러커의 ‘자기관리’ 라는 이번 글에서도 인생의 후반부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는 인생의 후반부를 잘 다루는 방법으로 세컨드 커리어, 제 2의 경력을 구축하는 것을 꼽는다. 세컨드 커리어를 구축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실제로 시작하는 것. 한 조직에서 다른 조직으로 이동하는 것 외에도 한 분야로 다른 분야로 옮기는 것이 있다.
<앞으로는 첫 번째 일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제2의 커리어를 시작하는 경우가 더 많아질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기술이 있고, 이들은 일하는 방법도 알고 있다. 아이들이 떠나고 집이 비어 있는 상황에서 이들에게는 커뮤니티가 필요하고 수입도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들에게는 도전이 필요하다.>
둘째는 병행하는 것. 기존의 일을 하면서 새로운 일을 모색하고 실행하는 것이겠다. 세 번째 방법은 사회적 기업가가 되는 것인데, 나에게는 좀 낯설게 느껴지는 개념이기도 하다.
인생의 후반부라는 섹션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이것이다.
<인생 후반기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인생 후반기에 진입하기 훨씬 전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추가 문장으로, <마흔 살 이전에 자원봉사를 시작하지 않으면 예순 살이 넘어서도 자원봉사를 하지 않는다.>가 있다.
굳이 덧붙이자면 인생의 후반부를 맞이하는 노력은 후반부에 접어들어서, 후반부가 가까워져서가 아니라 ‘훨씬 전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뭐, 나도 이제 40대 중반이니 ‘훨씬 전부터’ 시작하기는 이미 늦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후반부를 위한 그림을 떠올려보고 차근차근 그 준비를 도모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올해 함께 글쓰기 모임을 시작한 친구는 글쓰기가 노후 준비라고 말했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어쩌면 노후 준비, 인생의 후반부를 맞이하는 노력일지도 모른다. ‘일지도 모른다’ 라고 말하지 말고 그렇게 만들어나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