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과 미식 투어
이날부터 본격적으로 뮤지엄패스와 나비고를 쓰기 시작한다. 뮤지엄패스는 6일권을 끊었고(6일 연속 봐야 한다는 뜻), 나비고는 월, 화, 수 어느 요일에 끊어도 그 주 일요일까지라니 월요일에 끊어야 더 이득인 듯하다(대충 월요일에 사길 잘했다는 뜻).
루브르와 오르세는 서동희 가이드님의 투어를 신청했다. 다른 투어는 모두 입장권을 따로 예매해야 했는데 서동희 님의 투어만 따로 입장권을 예매하지 않고 빠른 통로로 입장해 가이드님만의 노하우(혹은 짬바?)가 있는 것 같다는 추측도 해보았다.
가이드님의 또다른 특징으로는 투어 시간이 2시간 30분이라는 점, 아이패드를 쓰지 않는다는 점이 있었다. 이런 특징에는 대작에는 나름의 무게가 있어 2시간 30분을 넘어가면 지친다는 점, 아이패드를 보기보다 작품 자체에 더 집중하기 바란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나는 부모님 한정 초보 가이드로 실수를 연달아 저질렀는데, 이날도 뮤지엄 패스를 가지고 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결국은 현장에서 표를 끊었어요. 하지만 노련한 가이드 님 덕분에 순식간에 입장권을 다시 샀다. 가이드님은 여유롭게 하루 더 보시면 되니까요, 하면서 나의 실수를 무마해 주었다.
루브르 박물관은 입구에 있는 유리 피라미드부터 명물인 듯했다. 그리고 전세계 온갖 인종과 민족이 뒤섞여 있다는 점이 이날부터 실감이 났다. 달리기를 하는 그룹이 있는가 하면, 웨딩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날 패딩 각으로 추웠는데 어깨를 드러낸 신부가 꽤 힘들어 보였다), 인도 부유층 커플이 스냅샷을 찍는 모습도 구경할 수 있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부터 가이드님의 일사분란한 안내가 시작되었다. 메소포타미아 지도자 중 한 명인 애비 2세의 조각상은 가이드님이 루브르 박물관에서 하나만 집에 둘 수 있다면 고르고 싶다는 설명이 곁들어져 더욱 기억에 남는다. 불상에 버금가는 자애로운 미소를 그 고대에 어떻게 표현하고 조각했는지 신기하기도 했음.
루브르 박물관의 3대 보물 관람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아니, 사실 루브르 이야기는 3대 보물 이야기가 전부임. 첫 번째 보물인 내게도 그 이름이 익숙한 밀로의 비너스. 어떤 작품인지는 알고 있었는데 뒷모습과 옆모습까지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살려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는지는 미처 몰랐다. 신기해서 사방팔방으로 찍어봄.
두 번째 보물 시모트라케의 니케(승리의 여신)는 전시실 안이 아니라 전시실 입구에 있었는데 덕분에 들어가면서도 보고 한 층 위에서도 보고 다각도로 감상할 수 있다. 여신상에는 얼굴이 없고 팔과 몸통 뿐인데 그래서 더 신비롭고, 상상의 여지가 풍부한 작품이라고도 한다. 가이드님의 설명을 듣고 보니 왠지 더 여신상이 각별하고 호소력 있게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그 유우명한 모나리자가 있다. 사람들 틈바구니에 떠밀려 간신히 보았고, 그래도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각도에 따라 그 매력이 다르니 여러 각도에서 보라고 가이드 님이 조언해 주셨지만 지옥철인양 낑겨서 여러 각도에서 보기는 불가능..... 정면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부랴부랴 탈출했다. 그래도 모나리자까지 인증샷을 찍었어. 다소 유치한 것 같은 뿌듯함도 느끼면서.
이날 점심은 건너뛰었다. 오후 투어 준비를 위해서였다. 공복으로 오는 것을 권장한다는 설명이 따른 이날의 오후 순서는 미식 투어였다. 가장 기대하던 투어이기도 했다. 미식 투어는 최다 인원이 함께 하게 되었다. 부모님과 나, 세 가족과 혼자 온 두 사람, 엄마와 아들, 이렇게 일곱이다.
노보텔 상트르 투르 드 에펠의 첫 번째 장점이 멋진 전망이라고 쓴 것 같은데, 두 번째 장점이 있다. 교통이 편하다는 점이다. 우리가 가장 자주 이용한 10호선 샤를 미셀 역, 다음으로 자주 탄 6호선 비르하켐 역, 둘 다 걸어서 갈 수 있다. 미식 투어 만남 장소는 10호선 오데온 역이었다.
미식 투어를 기대한 이유는 후기가 좋았고, 뉴스에 출연한 적도 있는 가이드 이소라 님 때문이다. 이소라 가이드님의 일사분란한 안내로 우리는 프랑스의 청담동 격이라는 5구, 6구, 7구를 돌아보게 되었다. 첫 번째 장소가 가장 만족스러웠는데, 딸기맛/ 30년 산 발사믹 식초와 트러플 아몬드, 밤잼과 피스타치오 잼 등을 시식할 수 있었다.
사실 부모님이 미식투어에 만족하실까 걱정도 했는데 시식이 끝나기 무섭게 식초와 잼 등을 사시는 모습에서 안도했다. 부모님(그리고 나)의 체력과 컨디션을 고려해 가급적 널럴하게 스케줄을 잡았다. 그래도 이날만큼은 투어 2개를 하루에 밀어넣었다.
미식 투어는 여행 초반에 하는 것이 좋다는 후기를 보았고, 포 잡을 뛰시는 가이드님과 일정이 맞는 날이 이날밖에 없었기 때문이다(이를 테면 이날 산 잼과 가이드님이 알려주신 트레디셔널 바게뜨 등으로 우리는 호텔에서도 썩 그럴 듯한 만찬(?)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므로 혹시 파리 미식 투어(이소라님)을 즐길 예정이 있다면 가급적 여행 초반에 하시길 추천한다.
순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다음으로 인상적인 장소는 파리에서 가장 핫하다는 마카롱 맛집 피에르 에르메였다. 이곳에서 이스파한이라는 마카롱을 먹었는데 산딸기와 장미, 리치를 결합한 맛이라고 한다. 감미롭고 우아한 맛이었다고나 할까. 이후 상젤리제 거리에서도 피에르 에르메를 보고 반갑기도 했다.
치즈와 잠봉 시식 순서도 있었다. 두 가지 맛의 잠봉과 여러 치즈(Ossau Lraty, Brie, Comte 24, Tomme du berry a la truffle. 너무 어려워서 그냥 원어 그대로 쓴다. )를 바께트에 곁들어 먹었다. 이쯤 되면 프랑스의 맛 체험뿐이 아니라 문화 체험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아무튼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곳에서 자기소개 시간이 있었는데, 파티쉐와 미식 투어, 디저트 사업 운영, 유튜브까지 한다는 가이드님의 열정이 멋져 보였다. 나는 번역이라는 원잡도 가끔 벅찬데 말이지. 존경하는 쉐프들이 계속 만나주지 않고 거절해도 끊임없이 찾아가서 인사를 드렸다는 일화를 들으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난 한 번 찾아가기만도 벅찰 텐데 말이지.
미식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은 계속된다. 사과파이가 맛있는 빵집을 거쳐 마지막 순서는 대망의 봉 막쉐 백화점(마르쉐인지 막쉐인지 발음이 헷갈린다). 대망이라고 쓴 건 은근슬쩍 봉 막쉐에 가보고 싶었고, 식료품점이 좋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봉막쉐에서 가이드님은 우리에게 식료품 꿀팁을 아낌없이 나눠주셨다. 과자 추천에 이어 차와 소금, 쥬스와 과일, 버터와 요플레, 라따뚜이 등의 추천이 이어졌다. 다시 한 번 방문해서 털어갈 생각에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한국에 돌아가서 지인들에게 선물하면 좋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톡 방에서 맛집을 추천받은 것으로 미식 투어는 끝이 났다. 이렇게 루브르 박물관 투어와 미식 투어로 눈도 즐겁고, 입도 즐거운 하루가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