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월, 우리 집 열두 째인 제 바로 밑 여동생이 대학교에 합격을 했습니다. 저와는 두 살 터울인 동생이 명문대학이라고 손꼽히는 신촌에 위치한 대학교에 합격했을 때, 언니 오빠들은 한자리에 모두 모여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였고, 동생의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한 가족회의를 했습니다.
가족회의에서는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한 학기 등록금을 마련해 주자는 안이 나왔습니다. 형제 중에서 형편이 제일 나은 사람부터 동생의 등록금을 내주고, 형편이 어렵다 싶은 형제들은 다음에, 그리고 형편이 더 어려운 사람은 두 사람이 함께 동생의 등록금을 마련해 주는 것으로 결론이 났을 때 형제들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저는 야간대학에 다니면서 저의 등록금과 용돈을 스스로 해결을 했었고, 그리 많지는 않지만 얼마간의 생활비도 부담을 하고 있던 터여서 동생의 등록금에는 힘을 보태지 못했습니다. 사실 열두 명이라는 적지 않은 형제들이 함께 자라다 보니 우리 형제들은 다른 집의 형제들보다 일찍 철이 들어야 했습니다.
자식들 교육에는 아무런 관심이나 힘도 보태지 않고 여름날 무지개를 쫓던 아버지 때문에, 엄마는 남보다 많은 자식들을 오로지 때를 놓치지 않고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가야 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고생을 하시는 엄마를 보면서 어느 자식인들 일찌감치 철이 들지 않겠습니까?
동생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더구나 자신보다 2살 위인 언니가 자신의 학비와 용돈, 그리고 생활비까지 보태고 있는데, 자신은 형제들 도움으로 언니보다 편안하게 대학을 다니는 것이 '큰 빚'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에 동생은 자신의 용돈까지 형제들에게 부담을 지우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시험기간이면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하여 장학금을 받고자 노력을 했고, 동아리 활동 등으로 매우 바쁜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아르바이트로 아이들 과외를 지도하기도 했습니다.
동생은 학생이면서도 자신의 용돈은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 1987년 당시 학생으로서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인 100여만 원이라는 돈을 저축하기도 했습니다. 동생이 장학금을 받는다 해도 자신에게 할당된 등록금을 어김없이 마련해 주던 형제들. 동생은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통장에 차곡차곡 쌓이는 돈을 볼 때마다 은근히 큰 부자가 된 듯한 뿌듯함을 애써 감추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돈은 훗날 동생에게 있어서 가장 값지고 의미 있게 쓰일 돈이었고, 가끔 언니인 저에게 한참 유행하는 운동화를 사 주기도 하고, 예쁜 스웨터를 사 주는 인심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은 통장에서 용돈을 찾아 쓰기 위해서 교내에 위치한 은행에 들렀답니다. 자동 출납기에서 통장을 넣고 당장에 꼭 필요한 만원을 인출하고 통장을 배낭 앞 작은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동생은 별 이상한 낌새도 느끼지 못하고 학교 내에서 자신의 볼 일을 보고 다니다가 문득, 자신의 배낭 앞 주머니가 열려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당황한 마음으로 그 주머니 속을 찾아보았을 때, 조금 전 분명히 넣어 두었던 통장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생은 눈 앞이 캄캄해져 옴을 느끼면서도 정신없이 은행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이미 통장의 돈은 현금출납기를 통해서 몇 번에 걸쳐 인출이 모두 끝나버린 상태였습니다.
아마도 동생이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했을 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어느 누군가가 동생의 통장 비밀번호를 엿보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동생의 뒤를 내내 미행을 하면서 기회를 엿보다가, 어느 순간에 동생의 배낭에서 통장을 훔쳐 여러 차례에 걸쳐서 현금을 인출하여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습니다.
동생의 그 돈은 그렇게 쉽게, 허투루 써 버릴 수 있는 돈이 아니었습니다. 동생의 땀과 눈물과 고생으로 한 푼두 푼 모아진 돈이었으니까요. 얼마나 아끼고 아낀 돈인데…. 아무런 노력 없이 쉽게 얻어진 돈이라고, 어쩌면 찜찜한 마음을 털어버리기라도 하듯 하룻밤 술값으로 날려 버렸을지도 모를 그런 용도로 쓰일 돈이 아니었습니다.
동생은 한순간에 자신의 전 재산이었던 적지 않은 돈을 잃어버리고, 그 허탈감에 몸살까지 앓아야 할 정도로 내내 힘들어했습니다. 동생이 아무리 잊어버리려 해도 쉽게 잊을 수 없는 의미 있는 돈이었기에 쉽사리 훌훌 털고 일어설 수 없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로서도 동생과 더불어 함께 마음 아파해 주고, 그 돈을 훔쳐간 도둑을 향해서 원망을 퍼부었을망정 근본적으로 어떻게 해결을 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때 셋째 언니는 저를 통해서 동생의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언니 또한 그만큼 돈이 모여지기까지 동생이 어떻게 해 왔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무척 속이 상해했습니다. 그러나 언니는 저와는 마음 씀씀이가 너무나 달랐습니다.
언니는 막냇동생이 힘들게 모은 돈을 모두 잃어버리고 빈 통장을 볼 때마다 허전함과 아쉬운 마음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어쩌면 마음의 깊은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고 더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 곳까지 생각이 미친 언니는 동생의 빈 통장에 동생이 잃어버린 만큼의 돈을 소리 소문 없이 채워 주었습니다.
그때 당시의 언니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를 키우는, 결코 넉넉하지 않은 살림을 꾸려가는 평범한 가정주부였습니다. 동생의 잃어버린 돈을 모두 채워 주느라 어쩌면 언니의 가계부는 몇 달 동안 적자를 면치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돈을 모두 잃어버린 막내 동생의 마음을 달래 주기 위해 선뜻 빈 통장을 채워 준 셋째 언니의 마음을 그때의 저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저 또한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한 가정을 꾸려가는 주부가 되고 언니의 입장이 되어 생각을 해 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 또한 언니처럼 망설이지 않고 적지 않은 돈을 동생의 빈 통장에 채워줄 수 있을까? 하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그리고 쉽게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어' 하고 대답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35년 전에 있었던 이 이야기를 어쩌면 당사자인 셋째 언니는 잊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불현듯 저의 기억 속에 되살아나서 지금도 저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 주는 것을 보니, 마음 따뜻한 추억은 이처럼 언제라도 기억의 틈을 비집고 떠 올라 오늘을 살아가는데 힘을 더해 주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