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잊히지 않는 어느 부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웃음을 보았습니다.

by 한명라

2002년 월드컵 열기가 한창 뜨거웠던 그때, 저는 공인중개사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침이면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를 등을 떠밀듯 학교에 보내고 설거지와 어질러진 집안을 정리하고 늦지 않게 공인중개사 학원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그 부부를 만나던 그날도 정신없이 바빴던 아침이었습니다. 머리를 감고도 제대로 말리지 못해서 축축함이 남아 있는 머리를 툭툭 털면서 버스정류장에 도착했고, 때맞춰 온 시내버스를 타고 10시에 시작되는 강의시간에 지각하지 않기 위해 조바심을 치다가 버스에서 내려서 버스정류장에서 20여 미터 떨어진 학원을 향해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던 중이었습니다.

저만치 앞에서 한쌍의 부부가 저를 향해 다가오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그 부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그 부부는 두 사람 모두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 부부였습니다.


사실 저는 그때나 지금도 장애인이나 외국인을 길거리에서 마주치게 되면 애써 그들을 우리 평범한 이웃 사람들을 대하듯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매스컴을 통해서 그들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마치 동물원의 동물을 보듯 힐끔거리거나, 자꾸 쳐다보는 시선이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적이 있기 때문에 저의 두 아이에게도 장애인들이나 외국인, 특히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고 몇 번씩 주의를 주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그 시각장애인 부부에게서 저도 모르게 시선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짧은 커트머리의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부인, 그리고 검은색 선글라스를 쓴 젊은 남편.

부인이 남편의 팔짱을 아주 다정하게 끼고 있었고, 두 어깨엔 작은 배낭 가방을 메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부인이 팔짱을 낀 손에 서류가방을 들고 있었고, 한 손에는 시각장애인들이 들고 다니는 은빛으로 빛나는 지팡이를 들고서 보이지 않는 길을 툭툭... 더듬고 있었습니다.

밝은 빛이라고는 한가닥도 가늠할 수 없을 짙은 어둠 속에 서 있을 그 부부. 그러나 그 부부가 짓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행복을 다 가진 듯한 그 미소가 저의 시선과 발걸음을 꼭 붙들어 매고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깨끗하게 손질된 외출복을 입고 그 부부는 지금 어느 곳을 목표로 정하고 길을 나섰는지 저야 알 수 없었지만, 그날 저는 왠지 제가 서둘러 가야 하는 학원 따위는 잠시 잊어버리고 그 부부를 따라서 함께 길을 걷고 싶을 만큼 그 부부는 아주 밝고 행복한 미소를 나누면서 제 곁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 세상의 그 누가 자신들을 마냥 가슴 뭉클한 감동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 말입니다.

그렇게 이 세상의 모든 어려움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오로지 우리 둘이서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 주면 이루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 아무 거리낌 없이 씩씩한 걸음걸이로 저의 곁을 지나치는 그 부부의 뒷모습을 한없이 바라보며 걷다가 제가 들어가야 할 학원 건물을 한참이나 지나쳐 왔음을 뒤늦게야 깨달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뒤돌아서서 학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서서 저는 그 부부의 뒷모습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습니다.

아무 부족함이 없는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서도 쉽게 발견할 수 없었던, 얼굴 가득 행복한 웃음을 함빡 지으면서 어둠으로 가득 찬 이 험난한 세상을 향해서 힘찬 발걸음을 씩씩하게 옮기는 그 시각장애인 부부가 장애인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찬 이 사회로부터 부디 상처를 받지 않기를, 오래오래 그 행복한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를 마음으로 빌었습니다.


20여 년의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부부의 모습이 저의 마음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은 그들 부부가 살아가는 그 모습만으로도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고, 건강한 몸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저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에게는 그 어떤 변명도 필요 없이, 최선을 다해서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 있습니다.



이전 14화효빈이 아빠의 작은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