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과연 무엇일까요?

결국 자기 스스로의 만족이 아닐까요?

by 한명라

지난주 6월 9일은 2003년 72세로 세상을 떠나신 시어머니의 기일이었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살아계신다면 올해로 90세.


그날 오후, 큰집에서 큰동서와 제사 음식을 장만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형님은 자꾸만 시어머니에 대해서 안쓰러워하는 속내를 내비쳤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를 고생만 시킨 시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직접 경험 또는 간접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하듯 저는 절대로 아버님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고 형님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1991년 3월 시댁의 4남매 중 막내아들인 남편과 제가 결혼을 한 후, 50대 후반의 시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이혼을 하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이제는 도저히 너희 아버지 하고는 못 살겠다'는 이유였습니다.


온 집안이 어수선했지만, 자식들의 간곡한 만류로 두 분은 이혼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님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14년이 흐른 2017년 3월에 돌아가셨습니다. 두 분은 원숭이띠 동갑이었는데, 9살에 엄마를 잃은 아버님은 아내에게 남편으로서 든든하게 기댈 수 있는 기둥이 되기보다는 누나처럼, 혹은 엄마처럼 의지하면서 살아오셨나 봅니다.


특히 아버님이 젊은 시절 군대에 입대해서 훈련을 받다가 허리를 다쳤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늑막염으로 진행이 되어 의병제대를 했다고 합니다.


어머님은 몸이 아픈 남편을 대신해서 힘든 농사일을 도맡아서 했다고 합니다. 비록 몸이 아픈 남편이지만, 세상을 떠나고 없는 것보다 살아서 당신과 자식들 곁에 있어 주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힘든 농사일은 아예 손도 대지 못하게 하고, 힘을 써야 하는 힘든 일은 모두 당신이 알아서 했다고 합니다.


저는 1990년 8월, 결혼을 하기 전에 시댁으로 두 어른을 찾아뵈었을 때 아버님을 처음 뵙자마자 친정아버지와 너무나 대조되어서 마음속으로 '세상에는 이런 아버지도 계시는구나..'하고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후로 시아버지와 친정아버지 두 분을 보면서 저 스스로 이렇게 깨닫기도 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농업중학교를 졸업한 친정아버지와 국민학교 4학년을 다니다 중도에 그만두어야 했던 시아버지를 보면서 교육을 많이 받았다고 꼭 존경받는 어른이 아니라는 것을...


시아버지보다 10살이나 더 위인 친정아버지를 보면서 나이가 더 많다고 모두 존경받는 어른이 아니라는 것을...


시아버님이 저의 아버지처럼 농협에 근무하지 못했고, 힘든 농사일은 부인이 도맡았지만, 60살이 넘어서 까지 5일마다 돌아오는 함안 장날이면 우시장에서 소중개인으로서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해 내셨던 시아버지를 보면서 사회적으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은 못했다고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아버님께서 말로서 아내와 자식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했지만, 저는 일찌감치 아버님의 속 깊은 정을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술도 담배도 하지 않았고, 남에게 말과 행동으로 피해를 끼치지 않았고, 부인과 자식들에게 험한 말과 화난 얼굴을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아버님.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절약해서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쓰셨던 분.


저는 저의 친정아버지와 시아버지를 비교하면서 아버님을 진심으로 존경했고 좋아했습니다.


그런 나와는 다르게 형님은 자신의 친정아버지와 시아버지를 비교하면서 시아버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생전에 저에게 아버님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던 적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것은 평소에 오토바이를 타고 외출을 하면 집에 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집에 빨리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님이 친구들과 어울려 바둑을 두다가, 혹은 바둑 두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를 잊어버린다고 했습니다.


아버님이 빨리 집에 와서 동네 사람들보다 먼저 이런저런 농사일을 끝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어쩌면 어머니는 남편에게 사랑받는 여자가 되고 싶었을 거라는... 무심하고 무뚝뚝한 남편에게 느끼는 서운함... 그런 것도 있었을 거라고.


그때마다 저는 시어머니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저의 친정어머니와 비교하면 엄청 행복한 거예요. 저의 친정은 자식이 12명이나 되는데 어머니는 4명밖에 안되잖아요.

저의 친정아버지는 엄마에게 단 한 번도 월급봉투를 제대로 준 적도 없고, 자식들 교육에는 하나도 신경도 안 쓰고,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노름하고, 또 바람도 피우고, 마누라와 자식을 때리기도 했는데...

아버님은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바람을 피거나 노름을 하거나 나쁜 짓도 하지 않고, 돈도 꼭 필요한 곳에만 쓰고 부인과 자식들을 위해서는 아끼지 않고 쓰고, 이웃사람이나 주변 사람에게도 언성을 높이거나 싫은 말도 하지 않아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아버님을 존경하잖아요." 하고 이야기를 하면 시어머니는 "그건 그렇지.."하고 대답을 하고는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시어머니께 "우리 친정아버지가 아버님만큼만 한다면 저는 어디든 업고 다닐 정도예요"하고 이야기를 하면 시어머니는 "그러냐?"하고 소리를 내어 웃고는 했습니다.


저의 시아버님과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이 비교되었던 친정아버지.


그런 남편과 72년을 넘게 살면서 12남매를 낳았고, 혼자서 모든 일을 감내해야만 했던 엄마.


엄마는 어느 순간 그대로 주저앉으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까 봐, 그 자리에 주저앉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자신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나는 대단한 사람이다. 너희들이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다치지 않고 잘 살아줘서 나는 감사하다. 이만하면 나는 행복하다"를 자신에게 수도 없이 이야기하면서 모진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2012년 12월. 엄마를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엄마는 저에게 "그 모진 세월 살아오면서 오늘처럼 내가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그 힘든 날들을 어떻게 이겨내고 살아왔는지.. 정말 꿈만 같다. 나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시아버님과 같은 남편과 살면서 자신은 불행하다고 생각하면서 평생을 사신 시어머니.


친정아버지 같은 남편과 살면서 "감사하다고, 이만하면 행복하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사신 친정엄마.


어딘가에서 이런 글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행복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그리워하고 꿈꾸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자신이 가진 것에서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다시금 저의 마음을 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