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내린 비가 텁텁하던 더위를 쫓더니, 오후엔 그리운 벗이 찾아와 숨통을 틔운다. 그리운 사람과의 수다는 늘 즐겁다. 무엇이라도 주고 싶고 나누고 싶은 벗이 온다는 문자를 받고, 뭘 할까? 고민이 되었다. 매점에 가서 커피 두 잔과 삶은 달걀 두 개를 샀더랬다. 짧은 시간, 짧은 만남을 알차게 보낼 공간으로 어디가 좋을까 고민했다. 회사를 품고있는 KAIST 교정에는 동산이 있다. 우린 동산에 올라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삶! 서로의 삶을 공유했다. 삶이란 글자가 '사람'의 줄임말 같기도 하다. 삶이란 '숨'의 어원이라 하던데…. 그래서 함께 숨 쉬며 재밌게 살아야 예쁜 삶이 되나 보다. 친구와 난 '삶'은 달걀을 사이좋게 까먹고 커피를 마셨다. 달걀을 잘 '삶'기 위해서는 적당한 물의 양과 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반숙을 좋아하면 빨리 불을 끄고, 완숙을 좋아하면 조금 늦게 불을 끄면 된다.
우리의 '삶'도 시기가 중요한 것 같다. 잘 '삶'아야 '맛난 삶'이 될 텐데, 문제는 이게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빠른 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섣부른 행동을 하게 되고,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야 하고 여유를 부리다가 다가온 기회를 놓치게 된다. 심지어 기회가 왔다 갔는지도 모르는 경우도 있다. 참 어려운 것 같다. 삶을 삶는다는 게 말이다.
나에게도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분들이 참 많다. 작년부터 스승의 날에 이분들에게 전화하고 있다. 내 삶에 함께해 주셔서 항상 고맙습니다, 라고 전화를 한다. 당신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그런 분들에게 전화 한 통씩 해보자. 마음을 전해보자. 당신의 입가에 웃음이 머물 것이다. 이야기가 뒷길로 한참 벗어났다.
저기 멀리 벗이 간다. 멀어져 가는 벗의 뒷전에 조용히 다짐한다. 친구야! 그래! 그렇게 생각나면 또 와라. 항상 여기에 이렇게 있을게! 그새 벗이 그리워진다. 그건 그렇고 달걀이 표준어? 계란이 표준어? 나는 참 모르는 게 많다. 오늘 저녁엔 아내에게 달걀 좀 삶아 달라고 해야겠다. 벌써 침이 고인다. 각시에게 혼날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각시는, 금방 밥 먹을 건데, 웬 달걀? 배고파요? 조금만 참아요? 라고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