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내는 아들을 멈추고

by 김선태

"선태야!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데... '행복은 강도가 아니고 빈도래' 거창한 행복 말고 작은 행복들이 모이고 모여 행복 이래."


그렇게 선배의 잔잔한 목소리는 큰 방을 가득 메웠다. 작은 울림이 아니고 큰 울림이었다. 행복이란 것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란다. 우리는 거창한 계획을 종종 세운다. 그리곤 마음먹은 지 삼일 될 무렵, 작심삼일이란 사자성어를 되뇌며 쓴웃음 짓기 일쑤다. 거창한 계획 보단 소박한 계획, 큼지막한 행복 보단 소소한 행복이 중요한 대목이다. 그렇게 선배의 이야기는 긴 새벽을 메웠다. 갑자기 선배 이야기가 향수로 이어졌다.


"선태야! 난 말이야. 논에서 볏짚을 태우는 곳을 지날 때면 차를 멈춰. 그러고 나서 창문을 열고 볏짚 타는 연기를 차 안 가득히 담아. 그리고 출발해. 나는 볏짚 타는 냄새가 너무 좋아. 어렸을 때 그 냄새...."


선배는 이야기를 하면서 잠깐 눈을 감았다. 나도 감았다. 아니 감을 수밖에 없었다. 경건한 선배 고백은 나를 입다물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볏짚 타는 냄새가 이미 방 안 가득했다. 선배는 장작 타는 냄새를 좋아하고 불씨를 바라보는 것 또한 좋아한다 했다. 사실 나도 그랬다. 볏짚 타는 냄새며, 훨훨 타오르는 붉은 장작을 좋아했다. 아니... 지금도 그렇다. 선배는 마지막 말을 내뱉었고 긴 침묵이 흘렀다.


"선태야! 그렇게 그런 감정이 저 밑에서 싹~ 하고 올라오면... 그런 거 있잖아 비 오는 소리... 어렸을 때 비 오는 날, 장독대에서 듣던 그런 소리..."


선배는 다시 눈을 감았고 나도 다시 감았다. 이 모든 것은 그리움 하나로 남았다. 볏짚 타는 냄새, 장작 타는 냄새, 붉게 타오르는 장작, 장독대 빗소리... 이 모든 게 그리움 하나로 남았다.


어머니!


오늘도 엄마는 뚜벅뚜벅 걷는 자식을 들판에서 멈춘다. 아들은 눈을 감는다. 그렇게 조용히 그리움에 묻힌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 기일에 맞춰 순창으로 향하는 선배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큼지막한 SUV 차량에 볏짚 냄새를 채우러 떠나는 선배의 미소가 그려졌다. 우린 저마다의 기억을 냄새로, 소리로 그리고 빛으로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선배는 오늘도 순창 어느 시골길에 차를 세울 것이다. 그렇게 엄마를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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