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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 Oct 23. 2024

#9 - 우리에겐 여유가 필요합니다.

- 쌀쌀한 가을날 따뜻한 커피 한 잔

 생은 분주합니다. 자의와 무관하게, 누군가의 사랑의 결실로 세상에 태어났을 뿐인데, 살아가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몫입니다. 생존은 절박한데 생애는 치열합니다. 먹고 살아가는 일이 녹록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무언가를 먹기 위해서는 음식을 사기 위한 돈을 벌어야 합니다. 돈은 한정적이고, 누군가에게 받아야만 얻을 수 있는 재화입니다. 땅을 파고 동전을 뿌린다고 나무에서 지폐가 열리지는 않습니다. 돈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의 숫자도 정해져 있습니다. 그저 살아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게 거저 돈을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치열하게 구직을 하고, 바쁘게 업무를 합니다.


 물론 태어난 배경과 여건에 따라 개개인의 삶은 달라지기도 합니다. 돈이 아주 많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자기 손으로 돈 한 번 벌어본 적 없이 잘 사는 사람도 있고, 일확천금의 기회를 얻어서 각박한 노동현장에서 탈출하는 사람도 있죠. 반면에 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 유년시절부터 일을 도와야 하는 사람도, 국가에서 제공하는 최소한의 지원금으로 간신히 허기를 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금수저를 넘어선 다이아 수저를 들고 태어난 사람과, 일확천금의 기회를 잡아 인생 역전을 하는 사람은 보편적으로 보았을 때 지극히 소수에 불과합니다. 결국 아주 특별한 여건을 가진 사람이 아닌 이상 모두가 열심히 살아야 하는 세상입니다.


 분주한 생은 단지 돈벌이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만 합니다. 학창 시절에는 학교와 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하느라 분주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개인의 삶을 꾸리기 위해 또 분주합니다. 지느러미를 흔들지 않으면 가라앉고 마는 물고기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은 살아갈 수 없습니다. 빨래를 하지 않으면 갈아입을 옷이 없고, 밥을 하지 않으면 먹을 것이 없어 굶어야 합니다. 청소를 하지 않으면 벌레가 끓고, 움직이지 않으면 건강을 잃겠죠. 아이를 가진 부모는 육아를, 늙은 부모를 모시는 이는 부양을 위해 치열하게 달려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진정 여유가 없습니다.


정말 이럴 줄 몰랐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언젠가 어른이 될 제가 '그깟' 돈이나 생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상을 펼치며 창공을 훨훨 나는 커다란 새처럼 살 줄 알았습니다. 지금의 제가 그런 어린 시절의 저를 만났다면 '철이 없다'라고 했으려나요. 스무 살이 되면서부터 혼자 살면서 제 살림을 꾸렸습니다. 아르바이트와 학자금대출로 등록금을 해결하고, 조금이라도 싸게 물건을 사려고 한참을 걸어 시장에 가는 게 익숙해졌죠.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도 10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 여전히 술에 취한 날도 택시비를 아끼려 버스를 타고, 값비싼 유기농 제품보다는 대량으로 쌓인 싼 식품을 구입합니다. 매달 두어 번 마트에 갈 때면 조금이라도 저렴하고 괜찮은 제품을 찾아서 비교하고 다니느라 한참씩 머물기도 하고요.


 군대에 가기 직전, 마왕 신해철의 콘서트에 갔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새 앨범을 들고 돌아온 그의 쇼케이스 자리였죠. 저는 그의 오랜 팬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의 팬이었던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홍대의 어느 건물 지하에 있던 클럽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시사 프로그램 패널이 아닌 가수로서의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가슴이 벅찼죠. 노래를 부르던 중간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가지고 태어나는 소명, 쓰임새 그런 건 없어!"라고 말이죠.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은 신이 보내준 보너스 게임이니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잘 됐든 안 됐든, 내일 더 행복해질 거라는 기대감이 아니라 오늘로도 충분한 거야."라는 그의 말을 들으며 눈물을 펑펑 쏟았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신병휴가를 나온 날 마왕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펑펑 울면서, 그에게 주어졌던 보너스 게임이 너무나도 허망하게 끝났다는 사실에 슬퍼했죠. 그렇게 또 10년이나 흘렀습니다. 공자님 말씀, 예수님 말씀, 부처님 말씀을 들었다고 그대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눈물을 흘리며 새겨 두었던 그의 말처럼 살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내일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되는 것은 그만큼 현실이 행복하지 않고 힘들며 고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제 삶에는 여유가 없고 순간을 즐기기엔 숨이 막힐 정도로 고단합니다. 비록 지금 행복하지는 않지만 잘 살아가고 있다고 스스로를 달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시간도 감정도 사치라고 생각했습니다.

 

 순간의 행복을 위해 시간을 쓰고, 찰나의 감정을 위해 짐을 내려놓은 것은 당장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버거운 내게는 과분하다고 느꼈죠. 한참 욜로(You Only Live Once)나 워라벨(Work Life Belace)과 같은 단어들이 유행할 때면 여유 있는 사람들의 복에 겨운 소리라는 자격지심까지 느끼기도 했습니다. 아등바등 일을 하고 돈을 벌어도 월세에 생활비를 쓰면 모이는 것도 없고, 가진 건 빚 밖에 없는 주제에 부동산 어플에 들어가 집값을 보며 한숨만 쉬는 내게 여유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여겼습니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정작 매일 마시는 것은 값비싼 핸드드립이 아니라 저렴한 대 용량 프랜차이즈 아메리카노인 것처럼, 막연히 동경할 수는 있어도 얻을 수는 없는 것이라 생각했죠.


 그러다 얼마 전, 어쩌다 보니 시간이 잔뜩 생겼습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직장을 잃고 집에 있게 된 거죠. 다행히도 실업급여라는 훌륭한 제도가 있어서 생계에 대한 걱정은 몇 달 정도 유예받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부터 일을 시작하며 치열하게 살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명절이나 주말에 일을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죠. 막상 시간이 생겼는데, 뭘 할지 모르겠더군요. 평소에 입버릇처럼 "늘어지게 늦잠이나 좀 자고 싶다."고 말하곤 했으면서도 새벽 6시가 되면 절로 눈이 떠졌습니다. 무언가 해야 하는데, 그래야만 할 것 같은데 할 일이 없으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이유 없는 찝찝함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TV 앞에 앉아서 뉴스를 보다가도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아서 일어나서 서너 발짝 걷다가 다시 소파에 앉기를 반복했습니다. 밥을 차릴 때는 차분하게 해 놓고, 밥상 앞에 앉아서는 습관처럼 허겁지겁 먹고 일어납니다. 게임이라도 해보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아놓고, 게임은커녕 업무와 관련된 기사들을 찾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저는 여유가 없는 사람이지만, 여유를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을 시간이 생기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많이 먹는다더니 잘 쓸 줄 모르는 사람에게 시간이 생기니 1~2주는 정말 어쩔 줄 모르고 지냈습니다.


적응은 하지만 불안도 합니다.


 조금씩 늦잠을 자는 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늘어지는 것도 익숙해졌지만 불안은 여전했습니다. 이렇게 놀고 있어도 되는 건지, 실업급여 지급 기간이 끝날 때까지 다시 구직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계속 복잡했죠. 불안함에 잠 못 이루던 날도 많아졌습니다. 침대에 누워 불 꺼진 천장을 바라보면 시커먼 어둠이 저의 내일인 것 같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님의 장사를 도우며 지낼까 고민했습니다. 잠이 오지 않아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신 다음날 아침에는 힘들어하는 일상이 계속되면서 생활 패턴이 무너지기 시작했죠.


 그러던 어느 날 같이 일하던 분께 연락이 왔습니다. 아직 뭐 할지 정해진 게 없으면 본인이 준비하는 일을 같이 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한참을 통화하고 전화를 끊으니 잠이 쏟아졌습니다. 오랜만에 꿈도 꾸지 않고 낮잠을 푹 잤지요. 무언가 할 일이 생겼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함께 일 하자고 제안받을 만큼 인정을 받고 있었다는 만족감 때문일지 몰라도 한결 편해진 마음을 느꼈습니다. 통화 한 통일뿐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았고 '이럴 때 쉬지 언제 쉬겠어' 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웃기지요. 몇 주의 불안이 30분 남짓한 통화에 사그라들 수 있다니요.


 그제야 여유로운 날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편하게 늦잠도 자고 살림도 마음이 내킬 때 했지요. 턴테이블에 좋아하는 바이닐을 얹어 들었고 가벼운 카디건을 하나 걸치고 산책을 했습니다. 별거 아닌데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바쁘게 살지 않아도, 무얼 하려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별 것 아닌데 그동안은 여유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분주하던 일상이, 마음만 분주한 것으로 바뀌었다가 이제 무엇도 분주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괜찮습니다. 정말 보너스 게임 같은 시간이 생겼습니다.


눈을 감았다 뜨니 계절이 변했습니다.


 유난히 더운 여름을 보냈는데, 며칠 사이에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반팔을 입고 다니면 찬 바람에 움찔하게 됐지요. 행거 안쪽으로 치워두었던 겨울 옷을 슬슬 꺼낼 때가 왔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흐르고, 해가 지면 달이 뜨는 것처럼 여름이 지나 가을이 왔습니다. 바쁘게 살지 않아도 지나갈 일들은 그렇게 지나갑니다. 불안에 시달렸던 것 치고는 잃은 것이 없습니다. 그 시간 동안 반드시 했어야만 하는 일은 없으니까요. 대신 그만큼 연인과 추억을 쌓고,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한 곡이라도 더 들었으며, 기대했던 영화를 편안한 마음으로 극장에서 봤지요.


 출근길 버스정류장 근처에 있던 노란 간판의 프랜차이즈 카페를 가지 않은 지도 오래됐습니다. 대신 요즘에는 집에서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십니다. 선반에서 1리터짜리 큰 원두 봉투를 꺼내어 계량스푼으로 그라인더에 옮겨 담습니다. 예전에는 손으로 직접 가는 수동 제품을 썼지만 요즘은 버튼만 눌러도 되는 전동 크라인더를 씁니다. 모터가 돌아가며 원두가 갈리는 소음과 함께 은은한 커피 향이 조금씩 퍼집니다. 원두가 갈리는 동안 비커 위에 드리퍼를 올리고 크기에 맞춰 잘 접은 필터를 끼워 넣습니다. 다 갈린 원두를 옮겨 담고 미리 끓여둔 뜨거운 물로 원두를 데웁니다.


 급할 것이 없으니 커피를 내리는 일도 여유롭게 합니다. 물을 따르고, 기다리고, 다시 따르고 기다리는 일을 세 번 정도 반복 하면 작은 집이 향긋하고 고소한 향기로 가득 찹니다. 드리퍼를 싱크대로 치우고 비커에 담긴 커피를 커다란 머그잔에 따릅니다. 묵직한 머그잔을 들고 소파에 앉아서 읽던 책을 다시 꺼내어 듭니다. 휴대폰을 보지 않아도, 언제 올지 몰라 하염없이 기다리던 업무 전화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좋기만 합니다. 여유가 생기니 마음도 조금 더 건강해졌습니다. 잘 쉬더니 피부가 좋아졌다는 말도 종종 듣습니다. 항상 팽팽하게 당겨진 실은 언젠가 끊어지고 말겠죠. 가끔은 이렇게 긴장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시간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시 우리에게는 이런 여유가 필요합니다.



* 그 어떤 어른도 해주지 않던 말을 들려주던 나의 멘토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마왕 신해철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그를 추억한다. 그는 우리에게 더운 여름의 한줄기 바람 같은 사람이었고, 치열한 삶에 웃음을 안기던 여유 같은 사람이었다. 약자들의 대변자이자 소수자들의 옹호자였고, 권력자들의 대적자이자 기성세대에게 일침을 날리는 하나의 죽비였다. 그가 저 먼 곳에서 평안하기를 10년째 한결같이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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