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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 Oct 22. 2024

#7 하늘색이 달라진 것 같은데요.

- 알코올 도수가 낮아진 소주 한 잔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전염병이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가면서 우리 일상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비대면이라는 생활방식에 조금 더 익숙해졌고,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나 가끔 보이던 마스크를 쓴 사람이 늘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손을 씻는 빈도가 늘었고, 느슨하게 이어져있던 인간관계도 정리가 되었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지만, 도심을 돌아다니는 승용차의 숫자도 이전보다는 훨씬 많아진 것처럼 보입니다.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는 문화가 줄어들기도 했습니다. 막차가 끊길 때까지 2차, 3차로 이어지던 술자리가 어느 순간부터 적당한 시간에 마무리짓게 되었고 한창 심할 때는 집합금지명령 덕에 회식 없이 정시에 퇴근하는 게 당연히 여겨지기도 했죠.


 어느 여름날 퇴근길에 무심결에 올려다본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해가 긴 여름, 저녁 시간대에도 해가 환하게 떠 있고, 그만큼 하늘은 밝고 또 맑았습니다. 코로나 덕에 공장 가동이 많이 줄어 그 덕에 미세먼지가 적다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 막상 파란 하늘을 보고서야 실감이 났습니다. 평소에는 필름영화 필터를 입힌 것처럼 뿌옇고 희끄무레하던 하늘이 말 그대로 '하늘색'으로 가득했죠. 쨍한 햇볕은 뜨겁고, 어디에 앉아있는지도 모를 매미가 귀에 거슬리게 울어댔지만 푸른빛 하늘이 너무 좋아서 정류장에 앉아 한참을 고개를 젖혀 올려다보았습니다.


 오랜만에 바라본 하늘이라 그랬을까요. 불현듯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아마 나이가 한 자릿수였을, 이십여 년이 훌쩍 지난 그 언젠가도 이렇게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참 예쁘다'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점심 무렵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던 길에 바라본 하늘의 푸르름과 커다란 뭉게구름의 입체감에 압도되는 기분을 느꼈죠. 평범한 하루 일상에서 느꼈던 감동이 얼마나 컸길래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았을까요. 그러고 보면 요즘은 하늘뿐 아니라 모든 게 뿌예진 것 같습니다. 구름도, 공기도, 건물도, 자동차도 어린 시절의 선명하던 유채색에 비하면 무언가 더 탁하고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달라 보이는 건 하늘만이 아닙니다.


 주변에서 흔히 보는 나뭇잎의 색도 이전보다 선명하지 않습니다. 가을이 되면 온 산이 불이 불타듯 보이던 빨간 단풍도 요즘은 다홍빛보다는 골판지색처럼 보이고,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을 씻어내듯 시원해지던 동해바다도 거무튀튀해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막연히 공기가 더 뿌예져서, 눈과 사물 사이에 먼지가 가득 차서 그렇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아니라고 합니다. 하늘이 탁해졌다 느끼는 것은 착각이라고 합니다. 미세먼지를 관측한 90년대 이래로 지난 30여 년간 꾸준히 미세먼지의 농도가 낮아졌다고 하더군요. 과학적으로 그렇다는데 거기에 대고 아니라고 우길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예전의 하늘이 더 파랗다고 느끼는 이유는 뭘까요.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지 않은 탓에 유난히 맑던 날의 하늘만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는 걸까요. 대부분의 추억이 그렇듯 과거의 순간을 더 아름답게 기억하는 보정이 들어갔기 때문일까요. 너무 많이 본 탓일까요. 형형색색 찬란히 빛나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눈에 너무 익었기 때문일까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매일 먹으면 질리는 것처럼 감각에서 무뎌졌기 때문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어른이 되어가며 세상의 많은 일들에 부딪히며 닳고 닳아서, 일상 속에서 하늘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만큼 지치고 거무튀튀하게 때가 묻었기 때문일까요.


 그래봐야 고작 1~20년 지났을 뿐이니 실제로는 크게 달라진 게 없을 겁니다. 변화처럼 느껴지는 이 모든 것들은 미세먼지 농도가 그런 것처럼 그저 기분 탓일지도 모릅니다. 아니, 아마도 그럴 겁니다. 하늘이 더 뿌옇게 보이는 것도, 사람 간의 정이 예전만 못하게 느껴지는 것도, 다채롭게 빛나던 삶이 무채색으로 변해간다는 생각도 모두 다 제 기분 탓일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서야 점점 더 세상이 무미건조 해진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겠어요. 앞으로 살아갈 날이 지금껏 살아온 날보다 훨씬 길 텐데, 앞으로 더 빛을 잃어간다고 생각하면 무엇에 대한 기대로 나아갈 수 있겠어요.


언제부턴가 소주 맛이 달라졌습니다.


 어느 날 친구들과 소주를 마시다 평소와 다른 맛을 느꼈습니다. "오늘따라 소주가 덜 쓰다?" 하며 말을 꺼냈더니,  친구들은 그저 "너 오늘 술이 좀 받는 날인가 보다." 하고 넘겼죠. 알딸딸하게 술기운도 올랐겠다, 우기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은 그것도 기분 탓인 줄 알았습니다. 으레 하는 말처럼 술이 물처럼 들어가는, 컨디션이 좋은 날이라 생각했습니다. 웃고 떠들며 장난을 치다가 병을 들어 흔드는데 정말로 다른 게 보였습니다. 분명 19도 즈음되어야 할 소주의 알코올 도수가 17.5도라고 적혀 있던 겁니다. 순간 벙 찐 표정이 되어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더니 다들 당황한 표정입니다. 휴대폰을 꺼내 검색을 해보니 크게 관심 갖지 않던 사이 소주 도수는 조금씩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도수가 낮아졌다는 핑계로 그날은 술을 더 마셨던 것 같습니다. 도수가 낮아진 지는 제법 됐을 때라 평소와 주량이 달라질 일은 없었는데 고집을 부린 거죠. 얼큰하게 취해서 집에 돌아간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괜히 기분이 나빴습니다. 달라질 것이 없어 소주 도수까지 달라지나 싶어 그 뒤로 제법 쓸데없는 오기를 부렸습니다. 같은 값이면 제대로 된 것을 마시겠다며 빨간 뚜껑의 알코올 도수 높은 술을 마셨지요. 술이 그다지 세지도 않으면서 빨간 뚜껑을 골라 마시다 보니 전보다 더 자주 취하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그런 저를 보며, 세상의 진보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막상 스스로와 그 주변의 변화를 반기지 않는다며 놀렸습니다. 농담 속에 가시가 있었죠. 미련한 짓이라는 걸 사실 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더 많이 마셔야 취하게 된 것에 불만이 있던 것도, 같은 값에 도수가 차이 난다는 사실이 불편하던 것도 아니었거든요. 그냥 그렇게 일상 속에 아무렇지 않게 있던 무언가가 변한다는 걸 받아들이기 싫었던 겁니다. 술자리에서 변화가 불편하다고 투정이라도 부리며 한마디라도 더 던져보며 어리광을 부렸습니다. 아무리 그렇게 고집을 피우고 투정을 부려도 이미 낮아진 소주 도수가 높아지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변화가 싫은 건 적응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에게 직결되지 않는 변화는 응원하고 지지하면서, 막상 스스로 겪는 일을 불편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이유 말입니다. 저는 나약한 사람이고, 살아오며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다쳐보지 않은 사람은 도전을 주저하지 않지만, 큰 흉터를 가진 사람은 다칠지도 모르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변화하는 환경은 도전을 요구합니다. 익숙지 않은 것을 시도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아프고 다칠 수도 있지요. 저는 그게 싫습니다. 저는 적응을 위한 모험이 두려운, 온갖 산해진미로 가득한 결혼식 뷔페에서 잘 아는 탕수육만 골라 담을, 새로운 취미는 만들지 않고 집에만 앉아있을 그런 사람입니다.


 하늘색이 탁해지고, 소주의 도수가 옅어지는 게 싫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화가 또 다른 변화를 부르고, 어쩌면 먼 훗날 하늘은 회색이 되고, 소주는 물처럼 변하는 날이 올까 두렵습니다. 정말로 그런 세상이 올 것이라는 과대망상이 아니라 그냥 그런 막연함이 싫습니다. 알 수 없는 미지의 것들은 깊은 바닷속의 어둠이나 저 먼 우주에 있을지 모르는 생명체처럼 다가오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독한 소주를 고집하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드는 것을 주저했지요.


 그러다 우연히 새로 나온 투명한 병의 소주를 마시게 됐습니다. 직접 주문한 것은 아니고, 업무로 가진 술자리에서 다른 누군가가 시킨 것이었죠. 낯설게 여길 새도 없었습니다. '소주병이 초록색이 아니네?' 하는 생각과 함께 상대가 따르는 술을 받았고, 건배를 하고 잔을 기울였습니다. 부드럽고 달큰한 맛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처음 마셔보는데 괜찮네요?"라고 말을 꺼냈고 상대는 "그렇죠? 이게 도수도 낮고 괜찮더라고요." 하며 답했습니다. 말을 듣고 병을 가까이 들어 보니 평소에 잘 찾지 않던 일반 소주보다도 낮은 알코올 도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적인 자리도 아닌데 굳이 빨간 뚜껑의 독한 소주를 주문하지 않고 계속 마셨습니다. 마시다 보니 나쁘지 않은 게 아니라, 제법 괜찮더군요.


생각해 보면 다 싫었던 건 아닙니다.


 지금껏 겪어온 변화 중 괜찮은 것들도, 좋은 것들도 분명 있었습니다. 많았습니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어느 하루의 하늘뿐 아니라, 다른 여러 날의 하늘도 파랬던 것처럼 말이죠. 싫거나 아픈 기억을 더 크게 남기느라 괜찮고 좋은 기억은 깊이 묻어둔 겁니다. 스스로 선택한 건 아니지만 꽤나 어리석은 행동들이었습니다. 오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으로 당장의 소중함을 잊어버리기도 했죠. 파란 하늘을 볼 수 없는 날이 올 거란 걱정을 할 시간에 잔디밭에 누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보는 것이 분명 더 나은 일일 텐데 말입니다.


 한동안은 새롭게 접한 그 소주를 주로 마셨습니다. 처음에는 낮아진 도수가 실감이 나더니, 점점 익숙해져 원래 소주가 그랬던 것처럼 여기게 됐습니다. 새로운 것에 적응이 되니, 더 낫다고 생각하던 이전의 것들이 또 다른 변화이자 도전으로 다가오더군요. 오랜만에 오랜 친구들과 만나 빨간 뚜껑의 독한 소주를 마시니 목에서 거부감이 들어 당황스러웠습니다. 물론 서너 잔 마시고 술기운이 도니 언제 그랬냐는 듯 꼴딱꼴딱 잘도 삼켰지만 말입니다. 어느 하나 변화가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을 우습지만 술을 마시며 배웠습니다.


 더 좋은 변화가 올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하늘이 정말로 다시 파랗게 변할 수도 있고요. 그럼 그때는 그냥 술 한 잔 하면서 기분 좋게 올려다보면 되지 않을까요. 하늘이 영영 시커먼 먼지투성이로 뒤덮이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은 똑똑한 과학자님들께서 해결해 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덮으며 말이죠. 요즘은 도수가 높고 낮은 소주를 가리지 않고 잘 마십니다. 이런 추세라면, 지금보다 더 소주의 알코올 도수가 내려갈 수도 있겠지요. 그것도 뭐 생각해 보면... 아, 그건 조금 싫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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