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인 Sep 24. 2024

#5 - 한 번씩 터질 때도 있습니다.

- 펑 소리 내는 스파클링 와인 한 잔

 말에는 한 사람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자주 쓰는 단어를 통해 그 사람의 평소 모습을 짐작할 수 있고, 말의 빠르기나 말투를 통해 그의 성격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말은 외모와 함께 첫인상을 결정짓는 데에 무척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초면에 비속어를 섞고 인상을 쓰며 말하는 사람보다, 가볍게 웃으며 진중한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당연히 호감이 갈 수밖에 없겠죠. 수트를 잘 차려입은 잘생긴 미남의 입에서 혐오발언이 섞여 나오는 순간 환상이 깨지고, 투박하게 생긴 우락부락한 사람의 입에서 정중하고 예의 바른 단어가 흘러나오면 그 사람이 달리 보이게 되는 것처럼요.


 사용하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도 실감할 수 있습니다. 2시간짜리 영화에서 어떠한 캐릭터를 파악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고작 몇 분, 때로는 몇 초에 불과합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말투와 대사는 의상과 머리스타일 등의 외적 요소와 함께 인물의 성격과 특성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종종 배우들의 인터뷰를 통해 캐릭터 구현을 위해 누구의 말투를 참고하고 사투리나 억양을 익히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 지를 적지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매체를 통해 만나는 대상에게도 그럴진대 현실에서 미치는 영향이야 말해 무엇하겠어요.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한 사람이 하나의 우주라는 말이 있지요. 우리 사회는 그러한 우주가 수십억 개 모여 구성되어 무수한 교집합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렇게 크고 작은 우주와 우주가 온몸으로 부딪히며 접점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만큼 거대하며 쉽지 않은 일이고 그렇기에 타인을 대하는 태도와 스스로의 모습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건 조금 더 나은 관계를 맺어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마음가짐일 것입니다.


말투는 어디에서 올까요.


 한 사람의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히 부모의 모습일 겁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과 행동을 보고 배우며 잘 먹고 잘 자라서 어른이 됩니다. 부모의 가르침대로 자라지만은 않겠지만, 원하든 원치 않든 부모를 닮아가며 자라게 됩니다. 그렇게 자라는 아이들은 부모와 비슷한 말투를 갖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말투와 성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말투가 성격을 만드는 걸 수도 있고, 성격이 말투에 배어나는 걸 수도 있지만, 둘 사이에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부모의 말투를 따라 하는 아이들이 부모의 성격까지 닮아가는 것은 필연적 일지 모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집안 어른을 오랜만에 만나게 되면 전라도 사투리가 잔뜩 섞인 "너는 너네 아버지(또는 엄마)랑 똑같다잉."하는 말을 듣고는 합니다. 그건 외모뿐 아니라 말투나 행동을 보고 하시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썩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저는 제 부모님의 모습을 닮으려 애쓰기보다는, 닮아가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온 편이기에 그렇습니다. 부모님을 진정으로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그 말투만큼은 정말 닮지 않기 위해 유난히 신경 쓰고 고치려 했거든요.


 형제 많은 가정에서 막내로 태어난 아버지는 직장생활과 자영업을 거치며 가족을 훌륭히 건사해 왔지만, 소통에 익숙한 분은 아닙니다. 당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지 않고, 이따금 맥락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거나 느닷없는 호통을 치기도 합니다. 그런 아버지와 30년 넘게 살아온 어머니는, 서툰 아버지 탓에 위축된 삶을 살았습니다. 눌려있던 감정은 새어 나오기 마련입니다. 가족에게 호통치는 아버지의 모습을 끔찍이 싫어하는 어머니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자주 큰 소리를 치곤 했지요.


예쁜 말로 스스로를 포장합니다.


 어른이 되어보니, 그런 부모님의 말투를 이해하게는 되었습니다. 그건 60년 안팎의 세월을 살아오며 쌓인 그들 나름의 삶의 흔적이고, 그 고단한 역사를 이해하게 된 순간 어느 정도는 덜 상처받으며 그들의 말을 듣는 방법을 익혔습니다. 그러나 이해한다고 해서 그 모습을 좋게 보는 것은 아닙니다. 자라나는 동안 친구 또는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문득 제 목소리를 낯설게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아버지 또는 어머니와 비슷한 말투로 날이 선 호통이 튀어나올 때는 기시감을 느끼기도 했지요.


 좋지 않은 말투는 그만큼 좋지 않은 주변환경을 만들어내곤 합니다. 저를 바라보는 타인에게서, 부모님의 호통을 상대했던 다른 많은 이들과 비슷한 눈빛을 읽었을 때 저는 움츠러들고 위축됐습니다. 위축이 되면 가려야 할 것들이 많아지더군요. 자연스레 관계의 폭도 좁아지고 타인에게 열어야 할 마음의 문도 닫게 됩니다. 그렇기에 지난 십수 년 간 저의 삶은 독한 말을 툭 내뱉는 말투를 고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었습니다. 일부러 더 가볍게 이야기를 하고, 친절하고 예쁜 말로 포장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를 편하게 느끼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듣기 좋은 말투를 갖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성격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모진소리를 하는 것을 피하게 되고, 갈등이나 대립을 마주하면 적당히 외면하게 됐습니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한 노력이 보편적 인간에 대한 배려심이나 약자에 대한 존중으로 나타난 것은 좋은 결과이지만, 꼭 필요할 때에 논리적으로 차분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게 된 것은 나쁜 결과입니다. 저의 말이 길어질수록 달라지는 상대의 표정을 너무나도 의식하고 자란 터라 조곤조곤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난처한 상황이 생기면 웃어버리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당황스러운 상황을 마주할 때도, 민망하거나 미안한 말을 할 때도 '허허' 하며 웃게 됐습니다. 기쁠 때 그러는 것처럼 활짝 웃는 것이 아니라 두 눈은 눈물이 맺힐 것처럼 축 처지면서 입은 웃는 듯 아닌 듯 벌리고 공기가 빠지는 헛웃음 소리를 냅니다. 그건 화가 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불같이 화도 내고 소리도 치고 싶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그저 웃어버리고 맙니다. 스스로의 감정을 웃음으로 포장하며 꾹 누르는 겁니다.


 서글픈 것은 그런 제 모습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만만하거나 우습게 비춘다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의 우주라고 말했지요. 대부분의 우주는 저마다의 장점을 별처럼 빛내지만, 어떤 우주는 블랙홀마냥 타인을 집어삼키거나 범접할 수 없도록 우위에 서야만 만족합니다. 그들에게는 제가 자신들의 삶에 어떠한 위협을 가하거나, 그들의 행동에 반동을 줄 수 없는 약자로 비치는 모양입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이들은 정도를 모르고 한없는 폭거를 일삼습니다.


 말투를 바꾸었다 해서 본연의 기질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누군가의 강압적 행동을 그냥 지켜만 보는 성격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참는다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는 참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임계점이 다가오면, 저는 일반적인 분노보다 몇 배는 심하게 폭발하곤 합니다. 그렇게 지우고 싶었던 아버지의 말투를 고스란히 사용하며 호통을 치는 겁니다. 상대가 움찔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그렇게 터진 화는 다 쏟아낼 때까지 멈추지 않습니다.


스파클링 와인은 병을 열 때 조심해야 합니다.


 파티를 하거나 축하할 일이 생기면 샴페인으로 대표되는 스파클링 와인이 떠오릅니다. 왁자지껄 모여 웃고 떠들면서 미리 흔들어둔 와인을 터트리면,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탄산 거품이 쏘아집니다. 겉보기에는 보기 좋은 퍼포먼스이지만, 그럴 때는 무척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터트린 스파클링 와인은 맛이 형편없이 떨어질 뿐 아니라, 자칫 잡지 못한 채 날아간 코르크에 맞은 사람이 다칠 수도 있습니다. 맛있는 술이 탄산이 되어 사라져서 마실 양이 줄어든다는 아쉬움도 있지요.


 스파클링 와인을 잘 여는 방법은 코르크를 꽉 누른 채 입구를 막고 있는 철사를 조심스레 풀어 탄산이 적당히 작게 빠져나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설프게 흔들어서는 안 되고, 병을 열면서도 코르크 마개가 완전히 빠져나올 때까지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깨끗한 천으로 단단히 잡고 여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혹시나 와인이 쏟아질 때 자연스럽게 막거나 닦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연 와인은 잔뜩 흔들어 터트린 것보다 훨씬 부드럽고 맛도 좋습니다. 터트릴 때와 달리 우아하고 고상한 겉모습을 띄는 것은 물론이고요.


 와인 병을 따는 법은 이렇게 잘 알면서, 스스로의 감정을 적당히 풀어주는 법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불 같이 화를 내고 나면, 그 뒷감당은 매우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평소보다 더 의식해야 하고, 감정을 쏟아냈던 사람과 관계를 회복하는 것도 매우 요원한 일입니다. 평생 고치려 노력한 말투지만, 앞으로도 남은 평생 역시 노력을 멈출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조심스럽게 오픈한 스파클링 와인이 터트리는 것보다 훨씬 맛있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감정을 표현하는 것 역시 적당히 끓어오르지 않게 조절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알면, 해야지요.

 





이전 05화 #4 - 꿈의 가격은 얼마일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