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에 한글전사 4
"근데 여긴 또 어디지?”
문사철과 한여울은 조금 여유 있게 주변을 살폈다. 이제는 이런 식의 이동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듯 말이다. 그래도 자신들이 어디 있는지는 궁금했다.
“운종가.”
“운종가가 뭐야?”
“조선 시대 최대의 시장.”
달빛무사는 딱 거기까지만 말해 주고 어딘가로 급히 가버렸다.
“와, 여긴 사람도 많고 볼거리도 많군.”
-출처: 서울역사박물관(운종가: 구름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인 거리라는 뜻)-
문사철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보았다. 누군가 한창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전기수다.”
“전기수?”
문사철 보기에 한여울은 그를 아는 것 같았다.
“아는 사람이야?"
"내가 조선시대 사람도 아니고 아는 사람이 어디 있냐?"
"전기수라며? 이름을 말했잖아!"
한여울은 문사철을 쓱 한 번 쳐다봤다. 조금 귀엽기도 한 것 같았다.
"전기수는 이름이 아니고 이야기꾼이라는 직업이거든.”
"이야기꾼? 요즘으로 치면 스토리텔러잖아! 조선시대에 그런 직업도 있었어?"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문사철은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며,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어라?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잖아?'
거기 모인 사람들처럼 문사철도 귀를 쫑긋하고 이야기를 들어 보니, 문사철도 알만한 이야기였다.
“청아, 내 청아. 심봉사가 눈을 번쩍 뜨는데...”
이야기는 거기서 딱 멈췄다.
“아, 왜 멈춰?”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한 사내가 전기수를 재촉했다. 전기수는 부채를 꺼내들고 느릿느릿 부쳤다. 누군가가 보리쌀 한 되를 건네자, 전기수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 모습은 마치 요즘 사람들이 버스킹(길거리 공연)하는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아는 이야기가 나올 때면 문사철은 주변을 둘러 보았다. 그때였다.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전기수를 잡아 들여라!”
문사철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관가에서 포졸들이 전기수를 잡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전기수를 왜 잡아 들이래?"
사람들은 웅성웅성거리며 주변을 두리번리번거렸다.
“전기수가 이상한 소문을 퍼뜨린다고 잡아간대...”
“한창 재미있는 대목인데...”
“우리 어머니께 들려드려야 하는데...”
사람들은 저마다 아쉬워하며 자리를 뜨지 않았다.
"불이야, 불!"
“어디서?”
“세책점이래!”
불이 난 곳은 세책점이라는 곳이라고 했다.
"세책점이 뭐하는 곳이야? 세탁소야?"
문사철은 흥분 됐다.
“세탁소가 아니라 책을 빌려주는, 조선시대 책 대여점 같은 곳이야.”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문사철과 한여울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그리로 달려갔다.
“이봐, 이런 골치 아픈 책은 그냥 태워버려.”
화마악당이 세책점 책들을 맛있게 먹어치웠다. 불은 활활 타올랐고 달빛무사는 호리병을 꺼내 화재를 진압했으나, 종이는 워낙 불에 약해서 책들은 거의 다 재가 되고 말았다.
“아, 오랜만에 포식했네...”
책을 모두 태워 먹은 화마는 어둠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아, 이런... 사람들이 이야기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문사철은 아까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으며 좋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특히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해준다던 아저씨 얼굴이 떠올랐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서쾌라고 책을 배껴서 빌려주는 사람들이 있어어.”
그 말을 마치자마자 한여울이 달빛무사를 바라보았다.
“저, 글씨 잘 써요. 한 번 해볼게요.”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문사철은 이야기 듣는 것은 좋아했지만 손 아프게 글씨 쓰는 건 싫었다.
“그럼 난 전기수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문사철은 전기수가 멈춘 뒤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다시 모였다. 문사철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이야기 하나로 사람들의 마음을 이렇게 사로잡다니...’
문사철은 세종대왕이 고맙게 느껴졌다. 만약 한자만 사용했다면 어쩌면 우리에게 맞고 서로 통하는 이야기는 만들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글과 말이 고맙게 느껴졌다.
“말과 글이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있다니!”
해피엔드로 끝나자, 사람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춤을 추는 사람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문사철은 행복했다.
‘말과 글은 힘이 세다!’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문사철은 깨달았다. 말과 글의 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