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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Dec 26. 2018

평양에서 배우는 도시의 미래

북저널리즘 <도시화 이후의 도시> 리뷰

인간은 살기 위해 도시로 몰려왔고,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 도시에 머물렀다
-아리스토텔레스-


우리는 도시에 살아간다. 2014년 UN 경제사회국의 세계 도시화 전망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54%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으며 2050년엔 선진국 인구의 86%, 개발도상국 인구의 64%가 도시에 살게 된다. 도시는 직장, 학업, 문화, 일상의 인프라가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어 편리하다. 물론 복잡도가 높고, 크고 작은 문제가 끊이질 않지만 오늘날 도시는 단순한 '거주 장소'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거주민의 정체성을 표출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온라인 시대로 접어들면서 굳이 하나의 도시에 정착할 필요가 없어졌고, 여행이 보편화되면서 자신과 맞는 도시에 길게 머무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서울의 야경 ⓒ나무위키


나는 서울에 살고 있다. 서울은 거대 도시(Mega city)다. 1,000년의 역사를 지녔고, 현재는 인구 1,000만 명이 함께 살아간다. 오래되고, 인구 밀집도가 높은 것을 제외하고도 서울은 경제적, 정치적, 경제적 성숙도가 높은 도시다. 하지만 이미 '서울살이'에 익숙한 내게 서울은 일상의 한 부분으로 축소되어 인식된다. 서울을 포함해 국내 다섯 개 도시를 옮겨 다니며 정착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기 때문일까. 별 감흥이 없다. 서울에 대해 굳이 생각해보더라도 높은 집값, 복잡한 출퇴근길 그리고 한정적인 공공공간을 제외하면 딱히 불편하지 않은 도시 정도다. 정말 '편해서'라기보다 딱히 불편하지 않기 때문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정도랄까. 어쩌면 내가 살아가는 '장소'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서 '살기 위해 도시로 몰려왔다'에는 공감하지만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 도시에 머물렀다'는 어떤 공감이나 감흥도 없는 상태랄까.



사회주의 도시 VS 자본주의 도시


흔히 '도시'를 떠올리면 높은 빌딩과 큰 도로, 도로를 가득 채운 자동차와 사람들을 떠올린다. 어둠이 찾아와도 꺼지지 않는 네온사인과 생활조명이 생각나기도 한다. 서울을 예로 들면 남산타워와 남산타워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야경이 생각난다. 해외의 다른 도시를 생각하더라도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는 건축물과 이를 둘러싼 야경 그리고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떠오른다. 임동우 건축가의 <도시화 이후의 도시>에서는 자본주의가 만든 거대 도시가 아니라, 거대 도시를 지양해 온 '사회주의 도시'에 대해 다룬다.


사회주의 도시의 특징은 흥미롭다. 도시 크기의 제한은 사회주의 이념이 대도시를 지양한다는 관점에서 나온 특징이다. 도시가 커지면 커질수록 도농 간의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생기는 계층 및 지역 간의 문제는 사회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국가 통제하의 주거 공급이나 계획된 주거지역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다. 도시화로 인해 가장 큰 고통을 받은 계급은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살아야 했던 노동자였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노동자들에게 쾌적한 주거 환경을 공급하고자 했다. 이익을 내는 것이 목적인 민간 자본은 주거 환경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므로, 국가가 복지 차원에서 주거 문제를 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도시화 이후의 도시> pp.32~33 -


책을 읽고 가장 달라진 점은 도시에 대한 관점이다. 기존에는 도시에 대한 관점이 가시적인 '크기'나 '인프라'에 한정되어 있었지만 책을 통해 사회주의 도시에서 도시를 설계할 때 고려했던 점을 알고 나니 함께 살아가는 도시 구성원들과 구성원 개인이 누리는 삶의 질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사회주의 도시계획에서는 주거 공간과 산업 단지, 공원이나 교통 시설이 하나의 조합을 이뤄서 도시 곳곳에 균등하게 분포해야 한다고 봤다. 대중교통을 장려하고 충분한 녹지 공간을 제공하는 것도 사회주의 도시 모델의 중요한 요소였다. 개인의 소유권을 제한하는 사회주의 시스템 하에서는 대중교통이 유일무이한 이동 수단이며, 노동자 계층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대책이었다. 녹지 공간 역시 특정 지역의 주민에게만 제공되는 혜택이 아니라, 도시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도시 환경의 일환으로 계획됐다 - <도시화 이후의 도시> p.33 -


본문에서 알 수 있듯 도시의 핵심 요소는 주거, 산업, 녹지시설, 교통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거주지가 있어야 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산업시설이 필요하고, 모두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즉 돈이 없어도 누릴 수 있는 녹지공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집에서 일터로 또 원하는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대중교통이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제 출근길에 지하철이 고장 나거나 화제가 발생하면 포털의 실시간 검색 1위는 금세 지하철 고장, 지하철 화제, 지하철 지연 등의 키워드가 장악한다. 일상의 부분으로 보았던 도시의 핵심 요소를 확대해보면 거대한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고, 삶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수많은 변수가 내재되어 있다.


사회주의 도시의 특징이 사회주의 국가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중략) 사회주의 도시의 특성이 비사회주의 도시에서도 나타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회주의 도시는 19세기 산업화를 거치며 진행된 극도의 도시화를 해결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으로, 도시화의 부작용은 사회주의 국가만 겪는 문제가 아니다. (중략) 그래서 사회주의 도시의 특징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우리의 도시, 자본주의 도시들이 결여한 요소들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현재 우리 도시가 겪고 있는 문제의 해법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 <도시화 이후의 도시> p.34 -


필자가 굳이 '사회주의 도시'의 특성을 통해 도시의 미래를 고민하는 것은 19세기 산업화를 거치며 발생한 도시화의 해결책으로 사회주의 도시가 계획되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자본주의 도시에서 자본이 많은 '개인의 이익' 때문에 희미해진 '공동의 이익' 개념을 사회주의 도시가 보다 본질적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보다 공동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이 사회주의 이념의 근간이고, 사회주의 도시는 이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깊은 고민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평양에 담긴 사회주의 도시의 이상


1950년 한국 전쟁 이후, 평양은 도시를 완전히 새로 건설해야 했다. 김일성이 모스크바에서 유학하던 건축가 김정희에게 평양 재건계획을 지시했고, 0에서 시작하는 김정희의 평양 종합 재건도는 이상적인 사회도시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고 한다.


북한의 주요 도시는 상징 광장 인근에 공공 문화 시설을 함께 둔다. 도시의 공공성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는 사람이 제일 많이 모이는 곳에 상업 공간이 아니라 광장이나 도서관처럼 공공장소를 만든다. 이는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도시에서 배워야 할 부분이다. 한국 사회는 도시를 개인이 소유한 필지들의 결합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도시를 개인의 욕망을 실현하는 자본의 플랫폼으로 여긴다. 인민대학습당이 김일성 광장에 있는 것은 롯데백화점 본점이 있는 서울 소공동에 학교가 있는 것과 같은 일이다  - <도시화 이후의 도시> p.42


이 대목에서 우리는 사회주의 도시와 자본주의 도시의 극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도시'를 개인의 욕망을 실현하는 자본의 플랫폼으로 보는 것과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는 공동의 공간으로 상정하는 것이 가장 큰 차이다. 물론 사회주의 도시에도 딜레마는 존재한다. 사회주의 체제를 이어가기 위한 선전과 선동의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양은 정치적으로 특별한 위상을 갖는 구역으로 김일성 광장을 만들게 된다. 공동의 이익을 보장하는 공간과 이를 뒷받침할 체제 선전의 공간이 함께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평양의 김일성 광장 ⓒThe Asia N


전원도시 개념을 차용한 평양의 마스터플랜은 녹지 공간을 통해 도시의 확장을 억제하고자 했다. 녹지는 상징 공간만큼이나 도시 공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략) 평양의 인구가 예상과 달리 300만 명 규모로 늘어나면서 계획의 일부가 달라졌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평양은 녹지가 많다는 점에서 서울에 비해 더 나은 도시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중략) 평양은 농지를 활용해 도시화를 예방하고 도시와 농촌 간의 간극을 줄였다. (중략) 북한은 도시에 충분한 농지를 배치해 각 지역이 자생할 수 있는 도시 기반으로 삼았다. 평양에서 생산한 농산물은 평양에서 소비하고, 함흥에서 생산한 것은 함흥에서 소비하는 방식이다 - <도시화 이후의 도시> pp.43-45 -


평양의 또 다른 특징은 전원도시 개념을 차용해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도시의 확장을 막고, 도시 내에 농지를 배치해 자급자족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인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도시에서 자연히 공업시설과 농지는 도시 밖으로 밀려나고, 시민들은 채소를 구매하기 위해 여러 유통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이는 단기적으로 볼 때 도시 문제를 해결할 효과적인 방법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도시의 자립성을 해치며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다행히 최근 선진 도시들은 도시와 농촌, 도시와 농촌의 생산물을 어떻게 결합시키는지 고민하는 추세라고 한다. 이는 도시의 자립성, 시민들의 건강한 소비뿐 아니라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방향이다.


평양은 도시에 농촌 영역을 편입시키고, 공업 생산 기지를 구축해 생산 도시로서의 모습을 지켰다. (중략) 생필품 등 필수적인 소비재를 각 도시에서 자급하는 구조를 갖추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무엇보다 평양이 생산 기지로 기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라는 생활 단위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는 도시의 가장 작은 단위이면서도, 커뮤니티로 기능하는 공동체를 일컫는 말이다. (중략) 하나의 마이크로 디스트릭트에는 주거부터 교육, 탁아, 공공, 상업 시설 등이 포함된다. - <도시화 이후의 도시> pp.46~47 -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란 생활 단위는 평양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도시들이 사회의 근간이 되는 단위를 가족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코뮌으로 생각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북한 주택공급의 핵심 개념인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는 반드시 '생산시설'을 포함한다. 작업장과 주거지역이 멀지 않도록 배치했고, 모두가 공용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단지 내에서 직장생활, 자녀 교육, 탁아, 휴식, 소비 등을 모두 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물론 이는 계획 초기의 평양의 모습이다. 2011년 이후 평양은 집권 체제의 교체와 함께 부분적으로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따라서 50여 년간 유지되었던 마이크로 디스트릭트 개념은 점차 붕괴되었고, 자본주의 수요에 맞춘 새로운 주거형태 건설이 시작되었다. [1] 필자는 현재의 평양이 아닌, 계획 당시 평양에서 도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이상적인 도시의 모습은 무엇일까?


도시의 진정한 가치는 위대한 기념비적 건축에 있는 게 아니라 거리의 모퉁이, 창문의 창살, 계단의 난간, 가로등 기둥과 깃대, 그리고 부서지고 긁힌 온갖 흔적들에 있다
-이탈로 칼비노-


그렇다면 이상적인 도시의 모습은 무엇일까? 일단 어떤 도시가 좋은 도시인지에 대한 기준이 필요할 것이다. 단순히 멋지고 화려한 도시를 생각하기보다 모두가 행복한 도시의 여러 모습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칼비노의 말처럼 어떤 위대한 건축에서 '도시'의 의미를 찾기보다 시민들이 생활한 모든 흔적들에서 도시의 본질을 찾을 수 있다. 필자가 사회주의 도시 초기의 이념과 계획을 예로 들어 이상적인 도시의 미래를 생각하게 한 것은 아주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장소가 '도시의 본질'임을 다시 떠올리게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상파울루는 세계에서 방탄유리 생산, 소비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빈부 차이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계층 간 갈등의 골이 깊고, 자본가들이 이동 중에 빈민층에게 습격을 당하는 경우가 많아서라고 한다. 심지어 빈민 계층 내에서도 자본의 정도에 따라 사는 형태가 매우 다르다. 단지 내에 모든 것을 다 갖추고 헬리콥터나 최고급 승용차로 이동하는 부자들과 달리 빈민계층들은 최악의 경우 전기, 가스, 수도 등 기본적인 인프라마저 없는 단지에서 계속 가난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너무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우리나라의 아파트 문화를 떠올리면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다. 얼마 전 '빌라 거지'라는 기사를 읽은 적 있다. 브랜드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빌라에 사는 아이들에게 '거지'를 운운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필요한 것이 모두 있는 주거 공간으로 점점 폐쇄화되어 간다. 일례로 다산 신도시의 택배차량 진입 문제가 있었고, 음식 배달원들은 화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라는 공지가 붙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책에서는 한국의 아파트 단지와 마이크로 디스트릭트의 가장 큰 차이는 단지 내 생산 시설의 유무라고 한다. 사회주의 도시의 중요한 과제는 도시 안에서 노동과 생산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는 지역 간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한 최소화된 방법이었다고 한다. 생산시설이 배제된 도시의 구역 구분은 불평등을 심화하는 요소가 된다. 자본에 의해 철저하게 폐쇄된 아파트 단지 문화가 심화된다면 상파울루의 문제를 서울에서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도시에서는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이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시는 풍요와 발전의 장소인 동시에 빈민과 열악함의 장소가 된다. 이 간극을 줄이고 더 많은 구성원이 도시의 인프라를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이상적인 도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는 도시의 '성장'보다는 '지속'에 방점이 찍힌 생각이다. 책을 읽고 도시의 미래까지 상상하긴 어려웠지만, 도시의 현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돈이 없으니깐 집은 포기한다'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나아가 현재 서울시가 펼치고 있는 주거 정책들을 들여다보며 '삶의 질'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주 작지만 큰 변화다. 서울은 어떻게 변화될까? 살아가기 더 좋은 방향으로 변해가는 곳이라는 확신이 들 때 우리는 꽤 괜찮은 도시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1]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가이드북, p.126, 미디어버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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