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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Apr 13. 2019

당신은 몇 개의 얼굴로 살고 있나요?

어쩌다 보니 사중인격



인성에 문제는 없습니다만,

어쩌다 보니 사중인격자가 되었습니다.



이 에세이는 틈만 나면 내게 겁을 주는 남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가족들을 대할 때와 이십 년 지기 친구들을 대할 때, 상사를 대할 때와 낯선 사람을 대할 때, 남편은 어김없이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말한다.



네 실체를 알고 있는 건 나뿐일 거야.



나는 그 말에 반박할 수 없다. 그의 말처럼 내겐 ‘실체’라고 칭해도 좋을 만큼 다중적인 면이 많으니까. 아니란 걸 보여주고 싶어 일관된 모습으로 살아보려 애쓴 적도 있지만 일주일도 가지 못했다. 이런 사람이었다가 저런 사람이 되는 게 뭐 어떠냐고, 어떻게 늘 똑같은 모습으로만 살 수 있느냐고 꾹꾹 눌러두었던 불만만 터져 나올 뿐이었다.



그쯤 되니 궁금했다. 누구를 만나든 일관된 표정, 행동, 말투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단점이라곤 없어 보이는 저 사람도 집에 가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지, 미운 구석밖에 없는 저 사람도 누군가에겐 완벽한 사람일지 궁금했다.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기 어려울 내가 있으니 일단 한 명은 제외해도 될 텐데. 오늘 하루만 살펴보더라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조차도 설명하기 어렵다. 아침엔 피곤하다며 투정 부리는 내가 있고, 점심엔 전문가인 척하는 내가 있으며, 해가 저물 무렵엔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는 내가 있다. 이곳에선 한 없이 완벽해 보이고 싶다가도 저곳에선 내내 빈틈을 보여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약한 얼굴, 강한 얼굴, 착한 얼굴을 썼다가 벗었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의 딸이자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아내로 살고 있는 나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기로 했다. 어떤 이는 솔직해서 좋다던, 또 어떤 이는 소심해서 답답하다던 그때그때의 나를. 일관된 모습이 아니어도 괜찮고 때로는 바보 같은 모습이어도 좋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속이며 살지 말자고 결심한 순간, 조금씩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내게 주어진 모든 역할과 내 삶이.



이 에세이는 생각하기 좋아하는 카피라이터, 손 많이 가는 와이프와 겁 많고 걱정 많은 둘째 딸, 그리고 고양이 비위 맞추는 데 도가 튼 어느 집사의 이야기다. 모두 한 사람의 이야기가 맞다.





6년째 글로 먹고사는 카피라이터.

3번째 결혼기념일을 앞둔 아내.

3남매 중 둘째 딸.

7년째 고양이를 모시고 있는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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