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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anger May 20. 2019

아파서 쉬는 날

12. 독일에선 아프면 쉽니다.

März 17, 2012

아파서 쉬는 첫째 날. 의사 선생님이 나의 아픔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준 덕분에 3일간의 공짜 휴가가 생겼다. 독일에서는 환자가 아프면 의사가 일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므로 언제부터 언제까지 쉬어야 한다는 소견서를 발급해준다. 나중에 일터에 복귀하는 날 이 서류를 제출하면 얼마나 아픈지, 어디가 아픈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 'Arbeitsunfähigkeitsbescheinigung' 한국어로 소견서라고 표현했지만 직역하면 '일 불가능함 증명서'이다.

Arbeitsunfähigkeitsbescheinigung

아픈 것마저도 독일 스타일로 명확하게 회복 예상일을 짚어주고, 해당 기간 동안에는 완전히 쉴 것을 강력하게 권고해준다. 독일 스타일이 나를 편하게 해 줄 때도 있다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낮동안 집에서 쉴 때는 귀가 괜찮더니 오후에 밖에 나가서 생활소음을 들으니까 어지럽기까지 했다. 언제쯤 다 나으려고 이러는지 이곳에서는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저녁엔 아파서인지 한국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서 최근에 퇴원한 은빛이랑 민이랑 같이 한국음식점 가서 부대찌개를 먹었다. 독일에 와서 한국음식점에서 한식 사 먹는 건 처음이었다. 한국에서 먹는 맛도 아니고 말도 안 되게 비싸서 사 먹을 이유가 없었다. 부대찌개는 한국에서도 좋아하지 않던 메뉴인데, 따뜻하고 얼큰한 국물을 먹는 것만으로도 낫는 기분이었다. 혼자 가야 하는 은빛이네 집까지 바래다주려고 동네 지하철역에 내려서 셋이 손잡고 얘기를 하면서 걷고 있었다.


그런데 계속 제 갈길 안 가고 몇 번씩 뒤돌아보고는 우릴 의식하면서 앞서 걸어가는 남자. 관찰력 좋은 민이가 '저 사람 이상하다'라고 말했다. 이럴 땐 한국말을 못 알아듣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 남자와 같은 방향이라 출구 계단도 같이 올라갔어야 했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 우리는 짠 것처럼 갑자기 방향을 바꿨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방향을 바꾸자마자 앞서던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Was?"(What?) or "Warten!!"(Wait!)

둘 중에 뭐였든 둘 다 무섭다. 처음 보는 사람이 왜 우리에게 저런 말을 한단 말인가? 우린 너무 놀라서 소리도 못 지르고 그저 살기 위해서 반대방향으로 뛰었다. 근데 무작정 뛰어나와보니 이쪽 출구는 완전 대로변 옆이었다. 인적은 더 없고 바로 옆은 차도... 도망갈 길도 없다. 그래도 혹시나 계속 쫓아올까 봐 미친 듯이 뛰어서 은빛이네 기숙사까지 도착했다. 연락할 사람이 없어서 결국 연락처를 알고 지내던 민의 외국인 친구에게 뜬금없는 부탁이지만 우리 기숙사까지만 동행해 달라고 했다. 너무 놀라서 셋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는 정신으로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나 싶어서 방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멀쩡해 보이는데 일상적인 곳에서 마주치는 돌아이들은 상상을 초월한다. 동양인 여자가 혼자 살기엔 난이도가 최상인 것 같다. 대중교통에서 길에서, 처음 만났는데 말 거는 이상한 사람들... 후, 제발 좀 사람 놀래키지 좀 말았으면. 그렇게 튀는 옷을 입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 살던 대로 다니는데 독일애들보다 밝은 색 옷이 많다 보니 눈에 띄는 것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그냥 내가 보기에도 너무 다른 모습의 동양인이라서 그런 것 같다.


생각보다 내가 많이 놀랐나 보다. 집에 오는 길에서부터 계속 딸꾹질을 했다. 일주일 동안 너무 많은 일들로 이제 더 이상 슬플 힘도 없어서 아파서 쉬는 날에 참 별일이 다 있다. 내가 이런 무서운 나라에서 어떻게 7개월을 산 것이며 최근 한 달 정도는 휴대폰도 없이 그 밤에 야근을 하고 인적 없는 퇴근길을 걸어서 집까지 왔던 건지 생각하니 갑자기 서러움과 무서움이 밀려왔다. 근데 귀가 더 아플까 봐 울 수가 없었다.


나는 이 나라에서 이런 거지 같은 상황에도 도와달라고 전화할 사람도 없었다. 독일에 온 뒤로 그 누구의 전화번호도 따로 저장하거나 적어둘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핸드폰이 있었을 때도,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과 연락이 되면 된다고만 생각했었다. 혹시나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싶어서 완전히 지친 상태지만, 쿤레에게 전화번호 좀 알려달라고 하려고 쿤레 형 방을 노크했더니 갑자기 냉장고로 따라오라고 한다. 이 와중에 청소하라고 잔소리하려나 하고 짜증 가득한 얼굴로 따라갔더니, 아이스크림을 딱!!! 내어놓는 쿤레.


내가 아프리카 친구가 더 있었다면 쿤레에게 소개해줬을 텐데, 이런 스윗한 사람. 한국음식 먹으러 가기 전에 귀가 아파서 휴가라고 했더니, 걱정이 돼서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놓은 것 같다 :) 쿤레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냐고 얼굴이 하얗게 됐다고 놀려댔다. 집에 오면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더니 독일에 이상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며, 내가 부탁하기도 전에 연락처를 가지고 있는 게 좋을 거 같다고 알려주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 진짜 너무 감동이었다. 에휴, 이렇게 또 십 년 감수하는 하루가 가는구나.

이번 주에 한 오십 년은 감수하는 것 같다.


2019.5.19

한국에서는 아파도 일하고, 아파도 공부하는 게 먼저인 모습이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나는 작년 내 연차를 아파서 많이 소진했는데, 올해 꼭 바꾸고 싶은 것이 아파서 연차를 쓰기 전에 잘 쉬는 것이다. 독일인들이 유달리 마음이 따뜻해서 아프면 쉬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렇다. 감기 같은 질병으로 아픈 경우, 다른 사람에게 옮길 수 있기 때문에 피해를 주어서 아프면 집에서 쉬어야 하고, 다른 이유로 아프더라도 일단은 일이 불가능한 상태라면 쉬고 제대로 회복한 뒤 일하는 것이 개인에게도 회사에도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잘 쉬어보니 저절로 그들의 생각에 동의가 된다.


그렇다고 독일인들이 걸핏하면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받아서 쉬는 것은 아니다. 하루정도 감기 몸살 기운으로 쉬는 것은 진단서 없이도 가능하다. 하루 이상 쉬는 것은 서류를 받아서 마음 놓고 쉰다. 그럼에도 얼마나 튼튼한 사람들인지 병원까지 가서 약을 먹는 일은 좀체 드물다. 일주일 전에는 예약해야 병원 진료가 가능하기에 일단 집에서 쉬는 동안 병이 나을 것 같긴 하다. 보통은 드럭스토어에서 감기에 좋은 차를 사 먹거나, 평소 남녀노소 구분 없이 운동도 많이 하고 비타민도 잘 챙겨 먹는 것 같다.


검은 머리에 다른 피부색을 가진, 체구가 작은 동양인 여자는 내가 살던 크지 않은 도시에서는 한눈에 띄는 존재이다. 더 많은 인종이 사는 도시는 좀 덜 했을 텐데, 일 년 동안 사는 내내 신기하게 보는 눈빛과 무턱대고 말을 거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이상한 사람들이 동양인 남자에게는 무턱대고 말을 걸지 않기 때문에, 나에 대한 관심은 새로운 문화권의 사람에 대한 우호적인 관심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많은 외국인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낯선 사람을 굉장히 경계했었고, 어떤 의도로 접근하는 것인지 끝내 진심을 알 길이 없을 때가 많았다.


바깥활동을 더 좋아하던 나인데 밖에 있는 동안 미어캣처럼 경계하고 다녀야 해서 에너지 소모가 크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기숙사 내 방에 있는 게 제일 안정감을 느끼면서 좋았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쉽지만, 다시 돌아간다 해도 경계 수준은 여전히 높을 것 같다. 그 정도로 피곤한 일상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직후에는 나와 비슷한 모습으로 한 가지 언어를 쓰는 모국으로 돌아와서 군중 속에 묻혀서 관심받지 않는 평온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게 너무 행복했다. 독일에서 항상 좋은 일만 있던 건 아니었기에, 가족과 함께 가지 않는 이상 다시 돌아와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직도 다시 돌아갈 마음은 쉽게 먹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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