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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구름 May 15. 2024

상담 5회기 후기(2)

인연의 끈

  직업과 관련한 이야기를 초반에 잠시 나누고 다른 주제인 가족과의 관계, 모친과의 절연에 대해 이야기를 조금 시작했다. 상담시간의 절반 정도가 남은 상태라 많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고 연락을 끊게 된 계기와 약간의 배경설명을 하는데 시간을 할애했다. 


 아버지가 몇 년 동안 암투병을 하시다 돌아가시고 난 뒤 장례를 치르고, 그 후 이런저런 행정 절차를 치르며 내가 본 모친의 모습은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모습이었다. 장례식장 안에서 조문 온 외가 친척들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이제부터 나 ***의 인생 시작이라며 정말 환하게 웃고 또 웃었다. 장례식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최대한 거의 안 들이는 쪽으로 선택했고(심지어 사진 옆을 장식하는 꽃도 안 놓으려고 했는데 잘 설득해서 기본형으로 꽃 장식은 겨우 했음), 조문객이 오는 스케줄을 파악해서 조금 비거나 없다 싶으면 바로 집에 가자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핸드폰으로 온갖 유튜브 영상을 봤고 지루해했다. 정말 온몸으로 장례식장에 있는 것이 싫다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갔다. 부모님의 사이는 극심하게 안 좋았다가 겨우 잠잠했다가를 무한반복했었고 경제적인 상황도 늘 불안정해서 언제 어떻게 돼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을 여러 번 겪었다. 사이가 원만하지 않고 툭하면 시비가 붙을 지경인데 병간호를 하는 게 오죽 힘드셨을까 싶기도 했다. 투병 사이에 모친도 큰 수술을 하게 되어 건강이 좋지 않았고 여러모로 힘든 상황을 지나왔기에 불화한 배우자와 사별하게 되니 정말 이제야 자유를 찾은 것 같고 이제부터 진짜 내 인생이 시작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다만 굳이 그걸 장례식장에서, 친척들 앞에서, 그리고 내 앞에서 그렇게 밝게 웃으면서 말했어야 했을까? 상갓집에서 배우자 죽고 나서 웃는 사람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그나마도 그들이 웃은 장소는 혼자 화장실에 숨어서 웃거나 병풍 뒤에서 입을 막고 웃는 그런 모습이었다. 조문객들 앞에서 세상 밝게 웃는 게 아니었다. 배우자 상 중에 환하게 웃는 그 대상이 나의 모친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장례를 치르고, 행정 처리도 마치고 난 뒤 모친이 내게 사실 나 장례식장에서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자유를 느꼈어. 이제 진짜 내 인생 살 수 있을 거 같아서 막 웃음도 났었는데 참았다. 이렇게 말했다면 아마 고개를 끄덕이며 그동안 정말 애쓰셨다고 안아드렸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본 그 모습은 너무 무례했다. 가족에 대한 무례 그 자체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화장을 하는 동안 내가 잠시 눈물을 쏟아내자 '효녀네? 울기도 하고.'라는 말을 하며 비꼬기까지 했었던 걸 생각하면 더 참기가 힘들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이런저런 비용들 정리하고 보험금 수령 등 필요한 부분을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처리해 드렸더니 돈을 드리기 무섭게 평소 사고 싶었던 것들이라며 온갖 물건과 옷을 잔뜩 사기 시작했다. 그리고 혼자서 지내게 될 집을 어떻게 꾸밀 것인지 아이처럼 들뜨고 흥분해서 쉼 없이 이야기했다. 


 아버지가 그동안 모친의 운전기사 노릇을 했었는데 이제는 세상에 안 계시니 누군가 자신의 기사 노릇을 이어받기를 원했고 그 대상은 하나뿐인 자식인 내가 되어 있었다. 빨리 내가 차를 몰고 모친을 태우러 왔으면 좋겠다며 그 모습을 상상만 해도 너무 좋다고 하면서 너 이제 나의 운전기사가 되어라를 외치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실망감, 분노, 상실감이 뒤죽박죽이 되어 감정적으로 좋지 않은 정도였다. 정말 인연을 끊게 만들 일은 나중에 벌어졌다. 시작부터 이야기가 쏟아졌으니 다음 회차에서도 본격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4번밖에 남지 않았지만 최대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리라 다짐하고 상담의 절반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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