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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구름 May 29. 2024

상담 6회기 후기(2)

폭풍 오열


 상담가의 질문에 뭔가 내면에서 끓어오르던 무언가가 꼭 곧 폭발할 것처럼 부글부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방어기제로 부정적 감정을 눌러가며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누르고 참고 묻어버리다가 어떤 무언가가 기폭제가 되면 폭발해 버리곤 했다고 말했다. 모친과의 절연은 장례식장에서 환하게 웃으며 즐거워하고, 장례 이후 행정절차 이후에도 들뜬 아이처럼 사고 싶은 물건 사기와 집 꾸미기에 신이 난 모습 그 하나만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그게 폭발을 일으키게 된 셈이었다.


 그간 살아온 방식이 내내 그렇다 보니 휴식을 두려워하고 여유시간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고 말했다. 항상 일상을 빼곡하게 할 일들로 채워야 안심이 되고, 긴 연휴나 여유로운 일정의 휴가 등 일상에서 멀어지는 기간에 거의 공포에 가까운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때면 어김없이 평소에 눌러 담아둔 부정적인 감정이 풍기는 악취를 맡게 되고 부정적 감정이 폭발하고 나서 부정적인 감정 자체에 압도당하거나 집어삼켜질 것 같은 극도의 두려움이 나를 짓눌러왔다고 했다.



 부정적인 감정 자체가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니며 긍정적인 감정과 동일하게 그냥 하나의 감정일 뿐인데 애써 부정적인 감정은 음소거하듯 소거시켜 버리고 그걸 해소하지 못한 채로 두면 계속 불안에 짓눌리게 된다고 했다. 맞다. 너무도 맞는 말이었다. 바로 그것이 내 오래된 불안의 원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덮어 눌렀던 것이 폭발해 버렸다. 원래 모친에 대한 이야기로 상담을 하려던 건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버지와 오빠에 대한 이야기도 계속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오빠와의 관계에 있었던 나의 아주 아픈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상담 시간에 절대 말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 같은 걸 한 적은 없었지만 초점은 모친에게 있었기에 이 이야기를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어느새 나는 참을 수 없는 울음을 꺼억꺼억 삼키다 터뜨리며 휴지를 한 움큼 집어 들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친오빠에게 지속적으로 당한 성추행, 부모님의 개입으로 멈췄지만 사춘기 시절에도 다른 방식으로 이어진 성추행으로 인해 받은 마음의 상처와 공포감. 20대 초반까지도 살해 위협과 성추행 및 폭행의 공포로 극도의 불안에서 살아가야 했던 시간을 이야기하고 나자 눈물은 제어가 되지 않을 정도로 터져 나왔다. 눈물과 콧물을 휴지로 닦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울고 있었다. 조금 진정이 될 무렵 상담가가 물었다. 그때의 자신을 생각하면 어떤 감정이 드시나요?


 여전히 멈추지 않는 눈물을 흘리며 간신히 대답했다. 너무 불쌍해요. 아무도 지켜주지 않고, 무섭고, 불안하고, 하루하루가 서바이벌하면서 목숨을 걸고 전투에 나갔는데 전우도 없고 아군도 없고 그냥 나 혼자뿐이네요. 아군이라고 믿었던(가족) 사람들이 적이 되어 나를 공격하는 그런 끔찍한 느낌이에요.


 40대 후반의 내가 어린 시절과 사춘기를 거쳐 20대 초중반의 나이까지 고통받으며 살아냈던 그때의 감정을 이제야 제대로 다른 사람에게 말로써 전달했다. 정신건강 의학과 상담에서도 이야기를 하긴 했고 그때도 조금 울긴 했지만 이렇게 시원하게 감정에 대해 돌아보고 쏟아내지는 않았었다. 수십 년이 지난 이야기를 하면서 마치 어제 겪은 일처럼 생생하게 감정을 다시 느끼며 제어가 안될 정도로 오열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래서 내가 누르고 닫고 썩게 놔뒀구나. 그런데 이제는 괜찮다. 이 썩어버린 것들을 모두 꺼내 털어내고 다 던져버리자. 지금, 여기에서.


 내게 좀 진정할 시간을 다시금 준 상담가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가족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느게 불편하신가요? 불편하신 것도 당연한 감정이니 불편하다면 불편하다고 이야기하셔도 됩니다. 당신에게 한 나쁜 행위는 그 행위로써 판단하는 것이지, 상대방이 당신에게 잘 해준 무엇이 있다고 해서 감형되거나 감가상각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빠가 나에게 이런 끔찍한 짓을 했지만 이런저런 잘해준 게 있으니까..'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악인도 100% 악인은 없듯이 가족 내 불화가 아무리 끔찍한 지경으로 심했다고 해도 모두가 나에게 나쁜 기억만 준 것은 아니다. 분명히 좋은 기억도 따뜻한 사랑도 주었다. 그렇기에 더욱 혼란에 빠져든 것이다. 끔찍한 고통을 준 대상들이 따뜻한 사랑도 주었기 때문에 그 둘을 통합하여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성인이 되어서도 당연히 힘들었거니와 어린 나이에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내면에서는 끊임없는 갈등이 나를 괴롭혔다. 그래도 나한테 잘해줬잖아, 그래도 가족이니까... 아니야! 아니야! 내면이 분열하며 찢어지는 고통이 괴로워서 나는 그저 꾸역꾸역 부정적 감정을 삼키고 또 삼켰다. 비참하고 억울하고 분통한데 할 수 있는 게 삼킬 수 있는 것 밖에는 없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상담시간이 다 되어서도 나의 눈물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당황스러운 감정을 넘어 이제는 될 대로 돼라 내 말을 듣지 않는 눈물과 콧물아.. 와 같은 심정이었다. 다행히 다음 상담 타임 예약이 없어서 상담실은 진정될 때까지 편하게 있다가 가도 좋다는 안내를 받았다. 겨우 좀 추슬러진 것 같아 휴지뭉치를 집어 들어 휴지통에 버리고 화장실에 들렀다. 화장실에 들어서자 멈췄던 눈물이 또 흘러나왔다.


 맙소사. 너무 아픈데 두려워서 쨀 엄두를 못 내던 종기를 쨌더니 어마어마한 피고름이 콸콸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분명히 아프기도 하고 무섭지만 한편으로는 시원했다. 이왕 짜낸 거 고름 뿌리까지 쏙 짜내버리고 싶었다. 화장실을 나와 집으로 가는 길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피고름 같은 내 눈물은 아직 덜 말랐는지 계속 흐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근처의 무인 상점 안으로 발길을 돌려 아무도 없는 매장에서 이런저런 물건을 보는데 집중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한참을 그렇게 겨우 진정하고서야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집에 와서도 침대에 누워서 한 30분은 더 울었던 것 같다. 울음이 거의 다 그칠 즈음 비로소 홀가분해졌다.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로워진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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