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선택,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상담 3회기는 심리검사로, 상담 4회기는 심리검사 결과에 대한 해석을 듣는 시간으로 보내고 나니 어느덧 10회 상담의 중반인 5회기 상담에 접어들었다. 심리상담 초반에 앞으로 다루고자 하는 것 2가지로 취업, 제2의 커리어에 대한 부분과 모친과의 관계에 대한 것을 이야기했는데 오늘은 취업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앞부분에 조금 하고 나머지 시간은 모친과의 관계에 대해 좀 더 길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면접과 테스트를 패스하고 교육을 이틀 받았던 곳은 고민 끝에 취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보안상의 이유로 일하는 동안 개인 휴대폰을 반입할 수 없고, 노트와 필기도구도 지참하면 안 된다는 점이 가장 컸다. 그 외에도 업무용 컴퓨터의 여러 보안사항이 있었다.
과연 내가 그런 환경에서 하루종일 일할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숨이 막혀왔다. 아무리 시뮬레이션해 봐도 불가능해 보였다. 이런 상황을 면접 당시 또는 그전에 알았다면 아마 지원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근무 숙달 뒤 재택근무가 가능하다던 조건은 사실상 재택근무 TO가 나야 가능한 것이었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기 기간이 엄청난 상황이라 사실상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그러기에는 사무실과 집의 거리가 왕복 2시간 40분 정도라 너무 멀었다. 연봉이 기존 연봉의 거의 반값 세일 수준이 된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교육을 받고 취업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여러 생각이 많았다. 그중 신문 기사로 접한 한 여성 구글 임원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아시아 총괄 여성임원으로 신문 기사에도 그동안 몇 번 소식을 접했고 책도 출간한 바 있어서 이름이 낯설지 않은 분이었는데 대규모 해고 사태의 해고 당사자가 되어 이메일 한통으로 해고를 당한 것이다. 본인의 커리어를 살려 다른 글로벌 기업 임원으로 가는 대신 특이한 행보를 이어갔다.
해고된 상황에 비관적인 사고를 하는 대신 스스로 갭이어를 갖기로 선택했다. 30년간의 회사생활 중 대면으로 고객을 만나는 접점에 있어보지 못했기에 슈퍼마켓 캐셔, 스타벅스 바리스타, 공유차량 서비스의 드라이버, 캣 시터까지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생활이 4년 차이지만 여전히 영어의 벽을 느끼고 있어 직접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영어를 사용하고 영어에 대한 감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책도 펴냈다. 영어를 통한 새로운 도전을 하며 향후 국내 스타트업의 커뮤니케이션과 마케팅을 돕고 비정부기구(NGO)에서도 일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것처럼 이후의 계획에 대한 선행 체험 및 커리어 확장을 위한 갭이어를 갖고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 맞는 N잡러로 지내는 것이다.
해당 기사를 읽고 생각할 점이 많았다.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관점에 변화를 주면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가능성도 다양해진다. 직업을 선택할 때 스스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명확히 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선택해야 노동이 고통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당장 어떤 직종, 직무를 하느냐가 전부가 아니라 왜 그것을 선택했는가와 어떤 목표가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동안 구직 서치를 아무 생각 없이 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프로토콜에 맞춰서 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앞으로 남은 기간을 잘 활용해서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따른 선택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 부분도 이야기했다.
직업 선택에 대한 계획이 아직 구체화된 건 아니지만 머릿속으로만 맴돌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 말했다는 것만으로도 한 발을 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막막하다는 마음 한편에 그래도 조금씩 정리가 되어 간다는 느낌의 싹이 자라기 시작했다. 조금 더 정리를 하기 위해서는 리스트를 만들어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돈과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적어보고, 그중에 현실성을 고려해 실제로 도전해 볼 만한 일을 추려내 보는 것. 궁극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고 그 일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일을 추려내 보는 것을 동시에 해보는 게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야 이전에 느꼈던 열패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으리라.
한참 직업 관련한 이야기를 하다가 모친 관련한 이야기를 꺼냈는데 내내 꿈에 나오는 모친 및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세상을 떠난 두 사람을 포함하여 온 가족이 총출동해서 꿈에 하루가 멀다 하고 나타난다. 꿈에서 깰 때마다 아, 내가 뭔가 가족에 대해서 제대로 풀지 못한 게 단단히 있구나. 그래서 이렇게 반복적으로 꿈을 꾸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내 안에서 뭘 어떻게 풀고 정리해야 할지 막막해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제발 꿈에 그만 나왔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과는 다르게 매번 꿈에 나오는 가족들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모친과 절연하고 연락을 하지 않게 된 이야기를 풀어냈다. 열심히 메모도 하고 주의 깊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상담가는 조금만 건드려도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다니 앞으로도 이렇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쭉 풀어내면 되겠다고 했다. 상담 기록지에 다 적을 수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필기가 되어 있었다. 어디까지 다 이야기를 해야 할까? 모든 걸 토해내듯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축약 버전을 만들자니 마음대로 될 것 같지 않았다. 상담시간이 2시간 정도였으면 좋았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