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의 안정
정신과 진료를 마치고 식사를 할 곳을 찾아 주변을 좀 돌아다녔다. 식당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딱히 내키는 곳이 없어 계속 걷기만 하다가 결국 한 프랜차이즈(그렇지만 처음 가보는)를 선택해 식사를 했다. 무슨 영문인지 나는 식사를 할 때가 지났음에도 허기와 식욕이 모두 상실된 상태였다.
하지만 약을 먹어야 하기도 하고 굶었다가 몰아서 먹으면 곤란하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식사를 했다. 어제 디스크가 재발해 진통제와 근육이완제로 버티며 겨우 일을 했기 때문에 오늘은 정신과 진료 후 통증의학과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아야 한다. 반 정도 남기고 일어서서 의무를 완수하긴 했으니 가뿐한 마음으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매번 지하철역으로 가는 입구에 있는 양키캔들 매장을 지나치기만 했는데 때마침 한산한 매장 안을 보고 편하게 좀 둘러볼까 싶어 안으로 들어갔다. 양키캔들보다는 우드윅을 더 선호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나마도 향초를 사놓고 안 켠 지 오래되어도 너무 오래된 터라 선호도를 따질 건 아니었다.
아로마 향초를 만든다며 간단한 수업도 받고 직접 만들기도 했지만 귀찮기도 하고 그냥 사서 쓰는 게 낫겠다 싶어 심드렁한 뒤로 언제 초를 켰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우드윅 향초를 좋아했던 것도 나무 스틱이 타들어가며 내는 타닥타닥 틱! 그런 소리가 좋아서, 마음이 편해져서였다는 것도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때마침 바로 어제 굉장히 오랜만에 화장실에 바닐라 향초(예전에 내가 만들어둔 것)를 켰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뭐지, 이 자연스러운 흐름은? 다시 향초의 세계로 회귀하는 건가.
직원의 안내를 받아 행사하는 제품도 보고 여러 가지 향을 맡아보며 왁스형으로 녹여서 향이 나는 것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예쁜 푸른색 부엉이 타트 버너가 계속 아른거려 결국 부엉이와 더불어 티라이트 행사 1+1 제품과 타트(왁스형 초)를 샀다. 심신의 안정을 찾아준다는 세이지앤 시트러스를 골라서 말이다.
양키캔들 향초가 내게 심신의 안정을 주기만 한다면 백 개인들 안 사겠냐 하는 심정으로. 마치 이런저런 치료 다 해봐도 듣질 않아 온갖 민간요법에 관심을 기울이며 마지막 동아줄이라도 잡아보는 그런 기분이었다.
집에 와서 향초를 켜놓고 글을 쓰니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향초에 불을 붙일 때마다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행복을 빌어준다거나 기도를 한다거나 그럴 건 아니지만. 나는 그저 지금으로서는 나 자신을 위해, 내 안정을 위해 기도해야 할 따름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