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읽다

by 보라구름

이번 상담치료에서는 10분 정도 먼저 가서 기다렸다. 다행히 바로 앞에 상담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 대기실에서 편하게 기다릴 수 있었다. 상담을 하러 오면서 내내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서 어떤 이야기까지 할까 망설이고 있던 터라 마음이 어수선했다. 인생이란 게 계획하는 대로만 된다는 보장이 없듯이 대부분의 상담에서 늘 예상한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길로 이야기가 흐르곤 했는데 오늘도 그럴까 고민하면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예약한 시간이 되어 상담실에 들어서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잘 지내지 못했다는 말로 이야기를 꺼냈다. 올해 초부터 있어온 소송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를 하며 그 일의 시작이었던 14년 전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갔다. 아무한테도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한 것은 성공했지만 아직 엄두가 안 났는지 아주 가볍게 언급하는 것 정도로 그쳤다. 그렇지만 그만큼이라도 성과는 있었겠지.


다른 사람에게 내 생각, 내 상황을 전달하다 보면 종종 혼자 생각할 때는 몰랐던 것들이 보인다. 다른 사람의 반응이나 조언 때문이 아니라 말을 전달하면서 한 걸음 뒤에서 내 생각이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은 둘 다였다. 상황을 정리해서 설명하면서 혼자 생각할 때는 그 안에서 맴도느라 몰랐던 것이 보였고, 의사의 멘트에서 굉장히 많은 반응을 하는 나를 느끼며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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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마음을, 감정을 읽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느끼는 요즘이다. 상담의 말미에 내가 남긴 한숨과 멘트는 나도 내가 뭘 원하는지 정확하게 모르겠고, 혼란스럽다였으니. 솔직히 말해 나는 이런 멘트를 하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자기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니 너무 답답하잖아! 그런데 그게 요즘의 나다. 밀쳐두고 보지 않으려고 했던 일들이 소송 때문에 줄줄이 소시지처럼 이어져 나오는 통애 안 보려야 안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 다이어리에 펜으로 쓰는 일기도 패스해버렸고, 일찍 잠에서 깨어 스마트폰만 틀어쥐고 게임과 sns를 반복하며 버텼다. 그래도 심정적으로 무너지지 않았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인 하루. 2주 뒤 다음 상담에서 내가 어떻게 지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전히 잘 모르고 있을까, 내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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