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와 허리 통증 때문에 약을 먹어야 하는데 두 약을 같이 먹자니 부담스러워서 감기약만 먹고 잠이 들었다. 하루 4번 먹도록 지어진 약인데 취침 전 복용 약에는 알레르기약이 있어 졸음이 많이 온다. 약을 먹고 빨리 잠이 든 것 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2시 좀 전에 잠들었는데 아침 7시 무렵에 깨버렸다는 거다.
그 뒤로 아침 10시까지 약 3시간 동안 우울한 시간이 이어졌다. 오지 않는 잠이 오기를 기다리며 뒤척이다가 온갖 잡다한 생각의 쓰나미에 밀려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다가 누더기가 될 지경이었다. ㅣ지금까지 내가 스스로 한 선택이라고 굳게 믿어왔던 것들이 주어진 상황에 떠밀려 억지로 그것 아니면 할 선택이 없어서 한 거였던 거 아니냐는 물음에 이렇다 할 항변을 할 수 없었다.
숨이 막혀 비명을 지를 것 같은 위기를 느끼고서야 겨우 몸을 일으켜 푸로작을 먹으러 나갔다. 한 알을 삼키고 진정이 되기를 기다리며 누워 있는데 이제는 짜증이 치솟기 시작했다.
이따위 것이 다 무슨 소용이야. 결국 약이나 찾고 약에 의존해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거 아냐?
겨우 마음의 안정을 되찾긴 했지만 3시간가량 정신적으로 시달려버려서 거의 탈진할 지경이었다. 그대로 누워서 이미 달아날 대로 달아나버린 잠을 기다리기엔 다시 잠들 가망이 없어 보였다. 시리얼과 우유로 식사를 하고 감기약을 챙겨 먹은 뒤 가볍게 산책을 하러 나갔다. 물론 걷다 보니 가볍게 산책이 아니라 만보를 거뜬하게 넘기고 말았지만. 그래도 탁 트인 공원에서 초록빛 가득한 나무와 풀들 벌레소리를 들으니 한결 나아졌다. 감기약 때문에 짜증 나게 따라붙던 미열도 내려서 컨디션도 좋아진 덕도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도서관에 들려 다음 독서모임에서 읽기로 한 책 두 권과 신간 도서 2권 그리고 독립출판물 1권을 빌려 돌아왔다. 우리 동네 도서관이 마음에 드는 건 한편에 독립출판물 서가가 따로 있다는 거다. 처음에는 한시적으로 한 달 정도만 운영하는 줄 알았는데 몇 달이 지나도록 계속 그 자리에 있다. 대체로 마음에 드는 독립출판물은 기회가 되는 대로 사곤 하지만 품절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입고되기를 무한 대기하거나 그러다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대출이 되니 참 편리하다. 물론 종수가 많지는 않지만.
너무 열심히 걸어서 그런지 약을 먹고 누워 초저녁 잠에 스르르 빠져 달게 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도 풀리지 않는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조금 다르게 볼 수는 있게 되었다. 선택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 한 선택이라면 더욱 뭔가 후회하거나 원망할 일은 아니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더 늘어나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아보자는 다짐. 월요일에는 변호사가 준비하라고 요청한 서류들을 챙기고 미뤄둔 원고를 편집하고 무엇보다 약을 잘 챙겨 먹으며 한 주간의 컨디션을 잘 관리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