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전, 점심을 먹고 아이들이 하나둘 버스에 오른다
한 명 한 명 아이들이 버스에 오를 때마다 애정이 담긴 인사를 건넨다. "선생님! 잘 지내요! 또 만나요!"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아이들에게 "그래 씩씩하게 잘 지내다가 또 만나!" 우리가 또 언제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언젠가 만날 수 있지 않겠냐며 씩씩하게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버스에 올라 함께했던 반 전체에게 인사를 한다
'2박 3일 동안 함께해 줘서 고마워! 2박 3일의 추억이 좋은 경험이 되기를 바랄게! 잘 지내 애드라!' 서로가 서로에게 박수를 보내며 마무리하는 시간이 여전히 가장 뭉클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이들을 태운 대형 버스 6대가 쪼르르 출발한다
기차놀이를 하듯 일렬로 출발하는 버스를 향해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양손을 흔든다. 우리 반 아이들이 탄 버스가 출발하면 더 힘차게 양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창문에 붙어서 격하게 인사하던 아이들, 2박 3일 동안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아이들이 떠나던 금요일의 유스호스텔은 더욱 고요한 느낌이 가득했다
주말에 뭐 하지?
금요일 점심이면 내 업무도 종료가 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이들과 함께 하고 나면 금요일 오후는 녹초가 되었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향했고, 매주 집에 갈 수 없었던 나는 넓은 숙소에 좁은 방한칸에서 홀로 주말을 보내는 날들이 많았다
'일단 좀 자볼까?' 아이들이 떠나고 긴장이 풀려 점심에 잠들면 저녁이 되고 나서야 눈이 떠지곤 했다
평일에는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울려 퍼지던 불국사 마을에는 모두가 떠나자 적막함이 느껴지곤 했다
1년 전의 나였더라면 겁 없이 마을 산책을 하고, 편의점도 다녀왔을 테지만 그 당시에 나는 이상한 일을 경험하고 홀로 경주에 내려갔던 터라 겁이 많아져 있던 상태라 유독 숙소 밖을 두려워하곤 했다
가끔 시내로 외출을 하고 버스를 타고 홀로 귀가할 때면 알 수 없는 공포감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주위를 살피고 숙소를 향해 뛰었다. 정문이 닫혀있어 후문의 자물쇠를 겨우 열고 불 꺼진 복도를 뛰어 방안으로 몸을 숨겼다
그토록 두려움이 가득했던 시기였지만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경주에서 시간을 보냈던 날들을 떠올리면 그날의 내가 대견하기도 하면서 뭉클하기도 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해보겠다는 작은 용기의 씨앗이 나를 경주에서 살아 가게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끔 외로운 마음이 불쑥 찾아오는 날, 작은 방한칸에서 나는 어떤 마음을 안아 주어야 했을까.
평일의 활기를 잃은 불국사에 홀로 남아 있던 22살의 나,
가끔 지독한 외로움이 밀려오는 날이 있었다.
작은 방 한 칸에서 잠만 자다가는 정말 나를 잃어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 찾아왔다
일단 어디든 떠나야만 했다. 새로운 풍경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역시 바다였다. '이번 정류장은 불국사, 불국사역입니다' 바다를 보러 가자며 간단히 짐을 싸 불국사역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부산, 집에서는 멀어서 자주 올 수 없는 이곳이 가까운 바다가 되었던 시절. 지금은 사라져 버린 불국사역에서 해운대행 기차를 끊었다
바다를 보러 간다는 설렘도 있었지만 사실 물음표가 가득한 여행이었다
'나는 왜 혼자 바다에 가고 있을까? 나는 왜 경주에 남아 있는 걸까?' 늘 물음표를 달고 살았던 것 같다. 나는 늘 누군가 알려 주지 않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사람이었다. 그날 처음으로 해운대에 홀로 여행을 떠났다. 바다에 도착해 홀로 흐린 바다를 걸었다. 바다에 왔지만 여전히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한 마음이 가득 피어올랐다
아무도 없는 경주에서 외로운 마음으로 부산으로 흘러 왔지만 여전히 외로움을 사그라들지 않았다.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 온 가족들과 친구들이 유독 보고 싶었다. 늘 그 자리에 있어 주던 가족부터 맛있는 걸 먹으며 하하 호호 함께 웃던 친구들과의 시간이 그리웠지만 아무에게도 연락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누군가의 안부에 잘 지낸다는 인사를 남길 뿐이었다
부산으로 떠난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들에게,
너희가 그리워 이곳에 왔다는 이야기를 건네지 못했던 22살이었다.
홀로 떠나는 여행의 시작점은,
부산의 오션뷰 찜질방이었다.
'ㅇㅇ스파로 가주세요!'
일단 부산에 왔으니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혼자 여행을 떠난 경험이 없던 나는, 일단 사람이 많은 찜질방을 가기로 했다. 달맞이 고개 위쪽에 있던 찜질방, 바다가 보인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선택한 곳이었다
어두운 밤의 찜질방은 바다가 보이지 않았고 적막만 흐를 뿐이었다. 겨우 잠들기 위해 여성전용 수면실에서 잠을 청했지만 딱딱한 베개와 얇은 이불의 불편함에 쉽게 잠들지 못했던 밤.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 거야!' 찜질방에서의 하룻밤은 오히려 마음의 위안 보다 피로감이 높아지는 느낌이었다
'우와, 아름답다'
빨리 씻고 다시 경주로 돌아가기 위해 샤워실로 들어갔다. 통창에 맑은 부산 바다와 반짝이는 윤슬이 보이는 풍경, 처음 보는 아름다운 풍경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밤과 달리 아침의 찜질방은 인생에서 처음 마주하는 아름다움이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바다와 윤슬, 외로움이 찾아올 때면 홀로 찜질방으로 자주 떠나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달맞이 고개를 따라 해운대 바다를 보며 걸었다
해운대해수욕장에 도착해 윤슬이 반짝이는 바다를 직접 마주했다
바다를 구경하고 있는데 주인과 산책하던 골든 리트리버를 한 마리에 시선이 머물렀다. 다정하게 산책하며 모래 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이 아름다워 둘의 모습에 자꾸만 시선이 그쪽으로 흘렀다. 언젠가는 나도 바다 곁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반짝반짝 빛나는 바다와 둘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마음속에 담고 다시 산책을 이어 갔다
외로움을 훌훌 털어 내기 위해 처음으로 홀로 부산으로 흘러 왔던 날은 여전히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저 홀로 남아 있는 시간이 외롭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면 나에게 경주는 좋은 경험으로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외로운 마음을 잘 흐려 보내기 위해 시도했던 나 홀로 부산 여행, 결국 나에게는 하나의 작은 시도가 반짝이는 경험이 되어 나를 살게 한 것이다
홀로 경주에서 부산의 찜질방으로 여행을 갔던 첫 경험은,
나에게 값진 추억이자 새로운 경험의 시작점이 되었다.
시작이 어려울 뿐, 혼자 여행을 시작하고 나서 다양한 곳으로 홀로 여행을 떠났다
처음 가보는 곳에 대한 두려움, 홀로 해결해야 한다는 외로움은 늘 나를 따라다녔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경험에 대한 열망을 늘 나를 따라다녔다. 역마살이 낀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홀로 여기저기 흘러갔다.
그 이후로도 나는 종종 해운대로 여행을 떠났다
해운대 바다가 보이는 찜질방에 다녀오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넓은 바다를 마주하고, 소소한 풍경들을 마주 하는 일 자체가 좋았다. 바다를 통해 소소한 용기를 얻는 듯한 느낌이랄까. 친구들과 함께였을 때는 보지 못했던 소소한 풍경들을 보게 되고, 내가 어떤 풍경을 좋아하는지 어떤 여행을 좋아하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돌이켜보니 부산의 오션뷰 찜질방으로 떠난 여행의 의미는,
홀로 여행의 시작점이자 새로운 경험의 긍정적인 씨앗이지 않았을까.
경주에서의 시간은,
모든 경험의 씨앗이 되었다.
경주에서의 주말은 낯선 타지에서 홀로 고립되는 경험이기도 했다
겨우 두 명이 이불을 깔고 누울 수 있는 방 한 칸, 홀로 씻는 것도 비좁았던 화장실. 주말에 밖에 나가지 않으면 밥 한 끼 챙겨 먹는 것조차 힘든 날들이었다
방에만 있던 나를 걱정해 주시던 사장님 부부가 시내에서 사다 주신 감자탕 한 그릇, 배가 고파지면 겨우 먹는 컵라면 한 사발. 다시 한번 그때처럼 생활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사실 자신이 없는 환경이었다.
22살의 경주에서의 삶은 나에게 수많은 선물을 안겨 주었다
아늑한 집을 떠나서 불편한 환경에서 가족의 소중함과 집의 아늑함에 다시 한번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배우게 되었다. 고립된 주말을 통해 홀로 여행을 떠나는 법을 스스로 배우기 익혀 나가기 시작했다. 모든 게 서툴었던 22살의 경주살이, 돌이켜보면 경주에서의 모든 시간은 내 모든 경험의 씨앗이 되었다.
"앉은자리를 바꾸지 않으면 새로운 풍경을 볼 수 없다"
여전히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이 두려워질 때면 경주살이의 추억들과 함께 이 문장을 떠올린다
처음 경험하는 외로움이었다. 그 당시에 내가 힘들고 외로운 감정에만 집중했더라면 나는 아마 울면서 짐을 싸서 아늑한 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선택한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책임감으로 결국 새로운 풍경들을 볼 수 있는 작은 씨앗들을 심었던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결국 인생은 작은 경험의 씨앗들을 심으며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과정 속에서 울고, 웃으며. 혼자였다가 또 함께이기도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