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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슬 Sep 29. 2023

무작정 제주행 비행기표를 끊은 이유

: 작은 용기 덕분에 내 경험의 씨앗을 심었던 첫 제주 여행.

처음 홀로 제주도로 떠났던 여행

나는 다시는 홀로 제주에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제주로 떠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제주는 나에게 어떤 의미 일까, 나는 제주 여행을 통해 어떤 마음들을 마주했던 걸까.




따사로운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서 방학이 찾아왔다

아이들이 방학에 들어가니 나 역시 방학식을 한 학생처럼 일을 잠시 쉬게 되었다


'우리는 곧 제주도로 떠나!' 함께 일하던 동료 중 셋은 친구였기에 제주도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나 역시 제주도는 수학여행과 가족 여행 이후로는 가본 적이 없었기에 흥미로운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내 발목을 붙잡았던 건, 혼자 떠나야 한다는 점이었다. 종종 혼자 여행을 떠났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곳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은 늘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일단 바다가 보고 싶어 함께 일하던 동료와 부산으로 떠났다

늘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부산 바다, 흐린 부산 바다를 보고 문득 제주도가 궁금해졌다. '제주도 바다는 어떤 모습일까?' 수학여행에 잠깐 들렀던 제주의 바다가 내가 기억하는 제주의 바다였다. 깊은 기억 속에 흐릿하게 남아 있던 제주 바다를 떠올리니 물음표가 가득해졌다. '제주 바다는 어떤 모습일까?' 한편으로는 제주도 바다가 궁금했지만 한편으로는 홀로 떠나는 여행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부산 바다를 보고 다시 경주로 돌아왔던 날 밤,

나는 잠들지 못하고 컴퓨터 앞에서 새벽까지 고민을 이어가고 있었다


'제주도 표를 볼까?' 6월의 화요일, 나름 애매한 시기의 제주도는 저렴한 가격을 자랑하고 있었다. 제주도행 비행기표를 화면에 띄워 놓고 밤새도록 물음표를 달고 있었다. 새로운 풍경과 경험에 대한 궁금증이 가득 차 잠들지 못했던 밤이었다


결국 왕복 6만 원의 제주행 비행기표를 끊고,

일단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싸기 시작했다


아침 버스를 타고 경주에서 집으로 달려왔다. 경주의 짐을 푸르면서 제주도로 떠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처음 제주로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다. 제주라는 섬은 어떤 곳인지, 어떤 교통편을 이용해야 하는지, 어디서 숙박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른 채 일단 제주로 떠나기로 했다.


엄마, 제주 다녀올게요!


'다녀왔습니다!'

아침 버스를 타고 경주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들과 오랜만에 함께 식탁에 도란도란 모여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닭볶음탕을 먹었다. '역시! 엄마표 닭볶음탕이 최고야!' 유독 닭볶음탕을 좋아했던 나는, 늘 엄마가 해주시는 칼칼한 닭볶음탕을 그리워했기에 엄마는 내가 돌아오는 날도 닭볶음탕을 해주셨다. 이제 딸이 돌아왔구나 싶었던 엄마에게 내일 바로 제주로 떠난다는 이야기를 쉽게 하지 못하고 있던 밤이었다


'엄마, 제주에 다녀올게!'

경주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날 제주로 떠나는 일정이었다

엄마에게 제주에 다녀온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엄마의 표정에는 물음표와 당황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몇 달을 경주에서 살다가 돌아온 딸이 다음날 바로 제주도로 떠나는 상황이라니. 엄마의 시선에 둘째 딸은 어떤 사람으로 보였을까


'아빠를 닮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구만'

엄마에게 딸은 셋. 그중에 유독 어딘가로 자꾸만 떠나는 둘째 딸을 보며 엄마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하지만 유독 여러 지역을 오가며 일을 하고 계시는 아빠를 닮았다며 엄마는 호탕한 웃음을 지어 보이셨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집을 떠나는 둘째 딸, 엄마에게 그런 둘째 딸은 유난스럽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배낭 하나에 간단히 짐을 챙겼고, 나 홀로 처음으로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공항버스를 타는 곳까지 데려다준 엄마에게 씩씩하게 인사를 건넸다. '엄마 잘 다녀올게!' 엄마는 어제 돌아온 딸의 배웅까지 해주시며 조심히 좋은 추억을 만들고 오라며 용돈 오만 원을 나에게 건네주셨다. 마음이 뭉클해졌다, 늘 엄마의 품에서 함께 지냈던 내가 이제 배낭을 메고 홀로 떠나는 날이 오다니. 다음번 제주는 꼭 엄마와 함께 가야겠다고 다짐하며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서 뭉클한 마음을 애써 다독여 보았던 순간.


제주로 떠나는 과정의 모든 게 처음이었다

홀로 공항에서 체크인을 하고, 짐을 맡기고, 가볍게 공항 수속을 밟았다. 차근차근 하나씩 처리하는 내 모습이 꽤 멋진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공항에 홀로 앉아 있는 시간도 좋았고, 홀로 비행기를 탄다는 것도 꽤 새로운 경험의 시작이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제주버스터미널이었다

2012년, 그 당시에만 해도 버스에 번호가 따로 없었다. '서일주'라고 적혀 있는 버스에 올라탔다. '어디 가요!!' 그 당시에 육지는 카드를 찍고 내릴 때도 카드를 찍는 시스템이었는데 제주는 정말 달랐다. 카드를 찍기 전에 목적지를 말하면 기사님이 금액을 입력해 주셨다. '아, 협재해수욕장이요!' 당황스러운 마음을 감추고 목적지를 이야기했다


'후' 자리에 앉아 놀란 마음을 쓰다듬었다

역시 아무 정보 없이 뚜벅이 여행을 시작했으니 당황스러운 일들을 여기저기서 하나씩 터져 나왔다. 버스는 저 멀리 바다가 보이는 길을 따라서 1시간 넘게 달리기 시작했다. 꼬불꼬불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리 고를 반복했다. 무거운 짐을 하나씩 들고 계신 어르신들부터 하굣길이 신난 아이들의 웃음소리까지, 버스에서 다양한 세계를 만나는 느낌이었다


제주 버스의 풍경을 구경하다 보니 목적지인 협재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수학여행 때 반 친구들과 우르르 와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는 곳. 사실 제주에 대한 정보가 무지한 상태라 가장 익숙한 이곳으로 왔을 뿐이라 그런지 큰 감흥이 없었던 제주 바다였다. '나는 여기에 왜 온 걸까?' 홀로 제주 바다가 보고 싶다고 이곳까지 왔지만 다시 한번 물음표를 나에게 던지게 되었다



흐린 바다와 함께 삼삼오오 모여서 함께 여행 온 여행자들이 부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 있을걸..' 혼자 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었을 뿐 현실적인 부분들을 고려하지 못했던 초보 여행자였던 시절의 나. 제주로 떠나 오긴 했지만 도착과 함께 물음표가 가득해져 버렸다.


첫 게스트하우스
16인실에서의 하룻밤.


흐린 바다를 뒤로 하고 게스트하우스의 일몰 투어에 참석하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게스트하우스는 김포공항에서 급하게 예약을 했다. 뚜벅이로는 갈 수 없는 해안도로 일몰 투어가 있는 곳이라 별다른 시설을 보지 않고 일몰 투어 하나 만을 바라보고 예약을 했던 곳이었다.


오후 6시, 일몰 투어에 늦을까 봐 발걸음을 재촉했다

배낭을 메고 어둑어둑 해지는 하늘을 머리 위에 두고 야자나무길을 따라 걸었다. 협재에서 금능까지, 금능해수욕장을 지나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처음 오는 곳, 낯을 가리는 내향형 인간에게는 게스트하우스 체크인마저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저 예약했는데요'

여행 1일 차에 숙소까지 오는 동안 지쳤는지 진이 빠져버린 듯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방을 배정받고 급하게 내려와 일몰투어 봉고차에 올라탔다. 꽉 차 있는 봉고차는 출발했고, 오늘의 가이드님께서 경쾌한 목소리로 일정을 설명해 주셨다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색함에 온몸이 간지러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버스 안에서는 서로에게 비슷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몇 살이세요?' 보통 대부분의 질문들. 귀를 쫑긋 열어 대화를 들어 보면 여행자들은 보통 30대였고, 대부분 사회생활에 지쳐 이곳에 힐링을 하러 오신 분들이셨다. 22살의 나, 경험이 부족했던 나는 그저 물음표를 달고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흐린 날씨에 일몰은 보지 못하고 가이드님의 안내에 따라 몇 군데에 내렸다 탔다를 반복하며 일정을 마무리했다.  '저녁 파티 하시 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 홀로 여행객이었기에 고기 파티에 참석한다고 했다. 나는 더 이상 어색한 분위기를 이어 가고 싶지 않았고, 얼른 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만 들어 파티에 참석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왔다


'후, 이제 좀 쉬어 보자'

육지에서는 기차 여행을 할 때 게스트하우슬 가본 적이 있지만 제주도에서는 처음이었다

일몰 투어가 있어서 선택한 곳이었고 4인실은 숙박료가 비쌌기에 가장 저렴한 방을 선택했다. 16인실의 2층 침대, 보통의 게스트하우스는 오는 순서에 따라 자리를 정할 수 있는데 오늘 나는 늦게 체크인을 했기에 2층 침대에서 하룻밤을 보내야만 했다



2층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안 침대에서는 삐그덕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혹시나 1층에서 주무시는 분이 불편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90도로 세워진 철 사다리를 따라 내려온다. 경주 살이를 했을 때도 좁은 방 한 칸에서 동료와 잠을 청해서 조금 적응될 만도 하지만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옆으로 누울 수도 없는 좁은 2층 침대 역시 적응이 되지 않았다


대충 씻고 편의점에서 사 온 빵과 우유를 꺼내 들었다

생각해 보니 오늘 하루 종일 제대로 된 한 끼를 챙겨 먹지 못했다. 여행 초보였던 나는, 홀로 밥을 먹을 생각도 하지 못했고 파티에 참석하고 싶지도 않아 겨우 편의점 빵 하나로 허기를 달래며 잠에 들었다. '집 나오면 고생이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경험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했던 밤.


나는 왜 제주에 온 걸까?


16명의 인원이 하나둘씩 잠들 때까지 불은 꺼지지 않았다

2층 침대 위의 가까운 벽을 바라보며 물음표를 던지는 밤이었다. '나는 왜 제주에 왔을까?' 바다가 보고 싶어서 제주로 흘러왔지만 바다를 보며 마음이 채워짐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내 마음에 구멍이 뻥 뚫려 버린 느낌, 외롭다고 느꼈던 경주 살이를 마무리하고 나는 왜 또 다른 외로움을 선택한 걸까


제주로 흘러 올 수 있었던 건 작은 용기 덕분이었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제주도행 비행기표를 끊었다는 말을 듣고, 나도 이번 기회에 제주도를 가보고 싶다는 작은 용기가 솟아났을 것이다. 같이 제주로 온 건 아니지만 제주라는 섬 어딘가에 있다는 자체가 나에게는 작은 용기를 심어 준 것이 아니었을까


나 홀로 제주로 흘러 오려고 했다면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까

적절한 타이밍에 나에게 찾아온 작은 용기 덕분에 제주까지 흘러 올 수 있었을 것이다




내 제주 여행은 늘 행복하지 않았다

두려움이 가득하기도 했고, 외로웠고, 불편함도 가득했다. 불편함이 가득했던 숙소들, 밥이 아니라 빵으로 때워야 했던 식사, 어색하고 불편했던 사람들. 나라는 사람에 대해 잘 몰랐고, 홀로 여행하는 법은 더더욱 몰랐던 나는 '다시는 제주에 오지 말아야지'라는 마음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10년 후 오늘의 나는,

틈만 나면 제주행 비행기표를 끊는다.


나에게 '왜 자꾸 제주만 가?'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답한 적은 없다

하지만 그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곤 했다. '나는 왜 자꾸 제주로 떠날까?' 물음표가 가득한 질문을 던지고 나면, 나는 불편하고 외롭고 힘든 제주에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씩 배워 왔다.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어떤 시간을 좋아하는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모든 것들을 제주에서 배웠다고 말해도 충분하니까


나이로는 어른이 되었지만 어른이 되지 못했던 22살의 나.

내 인생의 대부분의 첫 경험은 제주에서 비롯되었고, 10년 동안 나는 제주에서 '나'라는 사람을 만났던 것이다


10년 전의 나에게 물음표를 던져본다.

"너는 제주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마음을 만났던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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