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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윤슬 Oct 05. 2020

살고 싶어서 제주 바다로 떠납니다

이대로 살 수 없겠다고 생각한 순간 제주가 그리워졌다

몇 년 동안 소진되었는지 모른 채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왔던 순간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살고 싶어서 바다로 떠나야만 했던 순간.


또 제주에 간다고?


여전히 나는 계절마다 제주를 찾곤 한다.


주변 지인들은 나의 잦은 제주행을 의아해한다

제주에서 살다 온 내가, 늘 같은 제주행을 택하는 일이 어쩌면 어색할지도 모른다.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일이 더 좋지 않냐며 물어오지만, 나는 여전히 제주가 좋다. 제주는 나에게 여행지 그 이상임이 분명하다. 나의 이십 대의 추억과 수많은 마음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늘 다른 풍경과 수많은 마음들을 선물해 줬던 제주를, 나는 여전히 애정한다.


스물두 살에 시작했던 첫 제주여행은 서른이 되어도 계속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제주라는 섬을 - 제주에서 마주했던 수많은 마음들을 천천히 나눠보려 한다. 나의 사랑 제주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애정할 수 있는 섬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록하려 한다


또 나처럼 세상에 혼자 남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 누군가 제주라는 섬에서 위로받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나의 제주에서의 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결국 내 용기가
소진되어 버렸다


사회 초년생,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가 버겁게 느껴졌다.


우연일까 운명일까.

나는 무엇에 홀려 이직을 결심하게 된 걸까.


영업직, 전혀 다른 업종의 일을 시작한다는 건 나에게 큰 용기를 필요로 했던 시기였다

하나를 포기하고 하나를 선택해서 시작한 일이었기에 다시 할 수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던 시기였다. 새로 시작하는 일은 내 기준에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했다. 성공의 기준이 없던 시기였지만 그저 남들이 하는 성공을 따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른 채 말이다


영업직 특성상 근무는 자유로웠지만 일은 자유롭지만 마음은 자유롭지 못한 날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아침 미팅을 하고 파이팅을 외치며 각자의 일을 위해 또 길을 나서야만 했다. 내 실적이 내 월급이 되는 구조, 처음 겪어 보는 구조 앞에서 나는 자꾸만 멈칫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두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을 누군가에게 권유해야만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형태가 점점 더 감당하기 어렵게 느껴졌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초심(初心)이 가득했던 신입사원 시절 주 7일을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출퇴근을 반복했다. 새벽 6시면 일어나 준비를 하고 마음가짐을 바로 잡았다. '나는 할 수 있다'라고 외치며 용기를 냈고,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배우며 업무를 해나갔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의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될 뿐이었다. 사람을 만나야만 했는데 점점 더 주눅 들어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알면 알수록 나아진다는 마음보다는 더 복잡한 마음이 들었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 하나를 인정해야만 했다. 나에게 맞지 않는 일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마음속으로는 퇴사를 결정했으면서도 '퇴사하겠습니다'라는 말을 꺼내기까지 몇 달이 걸렸다


'정말 내가 최선을 다했는지, 퇴사를 해도 후회가 없을지, 재취업이 가능할지' 수많은 현실적인 걱정들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 나는 퇴사하기 몇 달 전부터는 오전 업무를 마치고 서울의 거리를 배회했다, 출근한 딸이 다시 집으로 귀가한다면 부모님의 걱정이 더하지 않을까 생각해 최대한 퇴근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피곤한 잠을 채우려 무료 영화권으로 영화관에서 잠이 들기도 하고, 전철을 타고 하염없이 돌아다녀보기도 했고, 자주 보지 못하던 친구를 만나러 가기로 하고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시간이었다


누군가 보기에는 떠돌이처럼 보냈던 하루하루 속에서 나를 생각할 시간들이 많아졌다. '정말 후회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을 수없이 고민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조금 더 용기를 내보자고 했다. 그만 울고 싶었고, 그만 외롭고 싶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조금씩 용기를 채워갔고 내 마음속에 용기가 가득 채워지던 날,

나는 그렇게 퇴사를 결정했다


퇴사할 용기


최선을 다하면 다할수록 진짜 내 모습은 사라지고 영업사원으로 꾸며진 내 모습만 남아있었다. 마음은 병이 들어 한없이 무너지는데 겉만 반짝이게 하고 다닌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포기에도 용기는 필요했다. 매일 같이 정장에 구두를 신고 멋있는 커리어우먼 행세를 하던 나를 내려놓기로 했다


"수고했어, 다 잘될 거야"


팀장님과의 인연으로 영업직 일을 시작했고, 어쩌면 영업직 일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마음이 들었던 적도 있었지만 내 회사생활에 큰 힘을 주셨던 분이셨다. 팀장님과의 면담에서 퇴사를 하겠다고 이야기했던 순간, 팀장님은 나를 위한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쉽게 포기하려 할 때마다 나를 잡아주셨던 분이고, 내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했던 분이었고, 나는 그렇게 퇴사를 하고 또다시 백수가 되었다




어둡고 긴 터널을 홀로 걸어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분명 경험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웠지만, 퇴사 후 나에게 남은 것은 레고놀이를 하고 난 뒤의 방처럼 어지럽혀진 마음들이 가장 먼저 보이기 시작했다. 단단하지 못했던 나의 마음은 여기저기 널브러져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고, 정리를 시작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내가 남아 있었다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챙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제대로 된 끼니를 챙기기 어려워 시간이 날 때 패스트푸드나 편의점 음식으로 생활했기에 집밥을 최선을 다해 먹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15시간도 잠만 자는 나는, 삶을 회피하기 위한 잠이 아니라 피로를 풀기 위한 잠이 필요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을 좋아했던 내가 사람을 점점 기피하기 시작한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나의 마음에 온기를 더해주고 싶었다. 결국 잘 먹고, 잘 자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만을 반복했다, 가장 기본적인 일상이었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그리웠던 일상이었나 보다



제주에 가면
내 우울이 괜찮아질 수 있을까


일상을 채워나가면서도 깊어졌던 마음의 병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갔다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면서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 어쩌면 갑과 을의 관계가 되어 일을 했었기에 사람을 만나는 일이 점점 두렵게만 느껴졌고, 여러 번 퇴사 경험이 있던 터라 또다시 퇴사를 한다는 건 내 인생의 오점을 남기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항상 잘되는듯한 친구들 사이에서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나의 스물여덟은 태풍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흔들리는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나의 마음은 점점 더 약해져만 갔다


그렇게나 그리워했던 평범한 일상이었는데, 내 마음속 상처는 꽤 깊었던 모양인지 평범한 일상에서도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불현듯, 마음속 깊은 곳에 상처가 아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생각난 곳은 나의 섬이었다


4년 세 달 정도 살았던 곳, 일 년에 몇 번씩 드나드는 곳. 언제 있을까 생각하며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곳에 가서 마음을 채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고민들은 나의 발목을 붙잡았다. 28살의 또다시 백수가 된 딸을 바라보는 엄마, 곧 서른이 되는데 다시 취업을 할 수 있을까 라는 현실적인 고민과 점점 가벼워지는 통장 잔고까지 생각하면 나는 제주행을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누군가 나에게 '제주에 다녀와도 괜찮아'라고 이야기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날, 동네 친구에게 '나 제주에 다녀와도 괜찮을까?'라고 물었다. 친구는 '응, 다녀와서 힘이 된다면 다녀와도 좋을 거 같아'라고 말했고, 친구는 내가 이미 제주에 가기로 결정은 했지만 망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한번 더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도와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스물여덟 백수의 삶에 제주행을 선택해도 과연 괜찮을까 고민했지만 친구는 흔쾌히 나의 선택을 존중해 주는 친구가 없었더라면 과연 나를 위해 또다시 제주행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내 주변에 '현실 적으로 지금 제주에 가야 할 때가 아니라 취업을 준비해야 할 때야'라고 말하는 친구가 있었더라면 나는 과연 제주를 갈 수 있었을까


살다 보니 스스로 결정은 내렸지만 용기를 낼 수 없는 일에 주변의 응원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알게 된다



하늘이 참 예뻤던 9월, 공항으로 떠나는 버스 안에서의 설렘이 가득했던 순간



그렇게 나는,

스물여덟 다시 한번 제주를 마주하자고 다짐했고 그렇게 4년 만에 제주에서의 두 번째 일상을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나의 마음을 이야기 때마다 울컥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떠났던 제주행이었다. 누군가의 시선에는 하나의 도피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시선에는 그저 백수의 여유라고만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또 한 번의 용기를 내기 위해 꼭 필요했던 순간이었다


깊어가는 우울감을 떨쳐 버릴 수 없었기에 나의 지쳤던 일상에서 멀어져야만 했다. 자연의 힘이 간절하게 필요했다. 제주의 햇살, 바람, 파도소리와 하루를 마무리하는 붉은 노을을 마주하며 나를 되찾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제주에 가면서 다짐했다,


온전히 나만을 생각하자고.

나를 위한 시간이기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최선을 다해 보겠노라고.

제주라는 섬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안고 돌아가자고 말이다.


제주라면, 나를 꼭 안아줄 것이다.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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