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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윤슬 Oct 10. 2020

제주에서 가장 먼저 보고 싶었던 풍경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 속에서 매일 다른 일몰은 행복이었지

"제주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정말 제주에 왔다, 일 년에 여러 번 제주에 오는 나지만 이번에는 정말 몇 달간 제주에서 지내다 갈 예정이라 그런지 조금 다른 마음과 마주했다. 강한 바람에 흔들리던 나무처럼, 곧 꺾여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제주행을 택했고 나는 그렇게 4년 만에 다시 한번 제주에서의 일상을 마주하게 되었다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했다


스물여덟, 내가 제주라는 섬에서 채워 가는 시간들이 과연 헛되지 않을까 미리부터 걱정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걱정이 많은 성격 탓에 나는 항상 생각과 걱정을 넣어두지 못하고 또 꺼내어 마주하고 있었다. '이제만 그만 걱정은 넣어두자' 최대한 즐겨보기로 했다. 내가 선택한 제주행을 믿어보기로 했다, 많이 흔들렸고 많이 아파했던 만큼 스스로를 위한 시간은 꼭 필요했으니까 말이다



제주 해안도로에서 마주한 일몰, 언제나 늘 감사한 제주의 풍경


제주에 도착해 가장 먼저 마주하고 싶었던 풍경을 마주했던 순간


제주에 도착해 홀로 렌트를 했고, 그 길로 해안도로를 타고 바닷가로 향했다. 공항 근처에 복잡한 길을 지나 "해안도로"라는 표지판을 마주하는 순간 어찌나 반갑던지, 이제 내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제주의 풍경만을 마주하면 내가 정말 제주에 온 게 실감이 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익숙한 제주의 서쪽 해안도로를 달리다 바다가 잘 보이는 포구에 주차를 했다. 홀로 마주하는 붉은 노을을 보며 꾹 참아왔던 마음들이 욱 하고 올라와 버렸다


힘들었던 시간들, 상처 받았던 시간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끙끙 앓았던 시간들, 누구나 이 정도쯤은 버티며 살아간다고 스스로를 더 힘들게 했던 시간들, 가까운 이들에게 마저도 나의 건강하지 못한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꽁꽁 숨기며 지내왔던 시간들, 홀로 감당해내야 했던 마음들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풍경 앞에서 울컥하고 올라옴을 느꼈다


혼자 제주여행이 익숙한 터라 온전히 행복한 마음만 마주할 줄 알았는데 흘려보내지 못한 수많은 마음들이 엉켜버리는 듯한 느낌에 당황스러운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그럼에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제주에 왔고,

이제 나는 나를 안아주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다짐했다.



오름에서 마주했던 잊지 못할 하늘, 붉은 하늘 덕분에 행복했어



제주에서의 삶은 시작되었다


붉은 노을과 함께 나의 제주에서의 두 번째 삶이 시작되었다. 4년 전은 여름이었고 그렇게 4년 후 제주의 가을을 마주하게 되었다. 가을, 유난히도 짧기에 더 애정이 가는 계절. 여름이 지나가고 그렇게 가을이 왔다고 생각했는데, 제주는 여전히 여름을 지나가고 있는 순간이었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 마주하는 제주

내가 제주에 온 이유를 잊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타인의 눈치를 보기보다 내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자고 다짐했고, 매일 아침 바다를 마주하고 매일 하루의 끝에서 붉은 노을을 마주하며 더 많이 웃자고 다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나의 제주를 가득 채워가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제주에 온 이유는 온전히 '나' 하나뿐이니까.


고백하건대, 사실 나는 스스로를 아끼지 못했던 사람이다. 타인의 실수는 자주 눈감아 주면서 나의 실수 한 번에 크게 놀라고 자책하며 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타인에게는 소소한 선물을 자주 나누면서, 나에게 돈 쓰는 일은 최대한 아끼기도 했다. 누군가의 도움 요청에는 기꺼이 도움을 주면서, 나는 내 마음이 SOS를 보내올 때면 '이 정도쯤은 참아야지'라며 나의 마음을 들여다 주지 못했다.


글로 적어놓고 보면 나는 참 스스로에게 못된 사람이었음이 더 분명해진다


스스로를 돌보지 못했던 시간들이 부메랑처럼 내게 상처가 되어 돌아왔을 때 나는 그렇게 제주에 왔다, 매일 같이 선물 같은 풍경을 마주하면서 제주에서만큼은 온전히 '나'라는 사람에게 집중하기로 스스로 다짐했다


매일 내가 좋아하는 책 한 권을 들고 바다 앞에서 시간을 보낼 것이며,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 속에서 매일 다른 풍경을 보여 줄 제주의 자연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선물 받았으니 매일 제주의 자연을 마주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제주에서 만큼은, 누구보다 나의 감정을 더 솔직하게 표현할 것이며 내가 하고 싶은 일들만 가득하며 시간을 채워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 내가 제주에 온 이유는 온전히 나를 위해서였으니까


매일 제주 바다를 마주하며 매일 제주의 붉은 노을을 마주 할 것이다.

매일 다르게 흘러가는 내 마음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볼 것이다


나는 제주에서 어떤 마음들을 마주하며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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