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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현 Oct 29. 2020

제주의 단조로운 일상이 용기가 되었다

오전에는 청소를 하고 오후에는 바다를 보며 살아갑니다

자발적 제주 백수가 되었다.


퇴사를 하면서 매달 기다렸던 월급날을 기다리지 않아도 됐고, 커피 한잔을 사 먹으면서도 내가 이 돈을 내고 커피를 사 먹으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철저하게 계산해야만 했다. 나의 통장은 매달 +가 보이는 대신 -로 가득했다. 들어오지 않는 월급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대신 매달 나가는 고정 비용들을 철저하게 계산해야 했다


소득이 0원으로 제주에서 살아가야만 했다. 돈을 벌기 위해 분주했던 마음은 병들었고, 나는 돈을 버는 일보다 내 마음을 챙기는 일이 더 급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제주에서 백수로 살아가야 한다는 건 지출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얘기였다


월세를 구해서 산다는 건 타지에서 여자 혼자 산다는 게 무섭게 느껴졌고, 무엇보다 나에게는 고정수입이 없었기에 월세를 내며 제주살이를 한다는 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백수지만 내 마음을 보듬어주기 위해서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생활비만을 감당할 수 있는 곳이어 했고, 외로움과 무서움보다 편안함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2014년과 과 동일하게 이번에도 게스트하우스에서 살기로 했다


투숙객이 아니라 스텝으로, 정해진 날짜에 청소와 체크인을 도와주고 나머지 휴무날에는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이왕이면 휴무가 길고 일이 어렵지 않은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협재 바다 곁이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육지에 있고, 게스트하우스는 제주에 있기에 사장님과 나는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보다 한 살 어린 사장님이 운영하는 민박형 게스트하우스에 지원을 했고, 나는 제주에서 두 번째 집을 구했다


유행이 아니라 자연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서 제주살이를 했다고 하면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고 물어오기 시작한다. 나는 '제주에서 살아보겠다'라는 마음보다는 사실 '바다 곁에서 살아보고 싶다'라는 마음이었고, 그곳이 단지 제주였던 것뿐이었다


제주를 여행하며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던 어느 날 아침, 테라스 쪽에서 외출 준비를 하는데 그날은 유난히도 제주 바다가 파란 날이었다. 파란 바다, 잔잔하게 일렁이는 파도, 예쁜 하늘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 바다 곁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 바다가 우연하게도 제주가 되었던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제주에서 살았던 2014년에는 '제주 한달살이'라는 말이 흔하지 않았다. SNS가 이제 막 시작되었던 시기 었고, 제주 버스 여행이라는 타이틀이 핫하게 떠오르던 시기였다. 제주를 혼자 여행하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았고, 제주에서 한 달을 산다는 건 누군가에게는 꼭 특별한 일이기도 했다


이후로는 너도나도 제주 한달살이를 유행처럼 따라 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걸 보고 마음이 좋지 않았고, 그걸 악용하는 사장님들을 보면서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여행하면서 만났던 언니는, 나와 만난 후 갑작스럽게 제주 살이를 시작했고 유선 연락만으로 면접을 보고 한 달 짐을 싸서 제주에 왔던 언니는 유선상으로 이야기했던 것들과 다르게 일을 더 시키고 하기 싫으면 집에 가라는 태도를 보였고 언니는 결국 일주일 만에 다시 육지로 돌아갔다


물론 좋은 사장들도 많지만 여행자의 순수한 마음을 악용하는 사례들이 많아서 스스로 조심하고 경계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제주까지 와서 무슨 소리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겠지만, 이왕 제주에 왔으면 스스로 만족할만한 곳에서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위로받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갔으면 좋겠다


제주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다


나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는 제주라는 섬이 외롭고 힘든 누군가에게도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인데 점점 변질되고 있는 것만 같아 속상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어딘가에는 제주를 애정 하는 사장님들이 제주라는 섬에 온 이들이게 더 많은 행복을 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계시기도 하니까 . 여전히 제주는 제주답게 사랑스럽다


 제주 살이는 내게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생활하며 월세 대신 일을 하며 한 달이 두 달로 연장이 되고 두 달이 세 달까지 연장이 되면서 총 3개월을 지내고 다시 육지로 돌아왔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계절에 제주에 갔고, 나는 얇은 가을 옷 정도까지 밖에 없었기에 제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겨울 옷을 챙겨 다시 제주로 돌아갔다면 오늘의 나는 제주에서 하루하루를 채워 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매일 같이 행복했던 시간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게스트하우스에서의 3개월은 홀로 제주생활을 했다면 얻지 못했을 수많은 마음들을 선물해 줬다


매일 마주했던 예쁜 바다와 협재 마을, 바다 곁에서 머물며 책을 읽었던 시간들, 협재 바다에 일렁이는 윤슬, 매일 다른 모습으로 인사해주던 붉은 노을, 종종 반짝거리던 별들, 어둠이 찾아와도 아름다운 밤의 협재 - 매일 다른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었던 곳, 여행자들의 마음이 빛나던 밤들, 행복했던 우리들만의 시간. 모두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으니까


다시 한번 제주 살이를 할 수 있다면 난 또다시 게스트하우스행을 택할 것이고, 나는 여전히 제주에 갈 때마다 제주에서 살았던 시간들을 꺼내보며 기특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우울했던 시기에 나의 제주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여전히 나는 일 년에 몇 번씩 제주에 가고 또 돌아와 다음 제주 여행을 계획 중이다


제주는, 나에게 여행지 그이 상의 의미임은 분명하니까.

언제나 나를 안아주고 위로해주는 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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