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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슬 Nov 24. 2023

작은 시골 마을에서 만난 깊은 사랑

: 사랑을 표현하며 살아간다는 건.

'갈까 말까?' 김장철이 다가왔다

엄마와 아빠는 합숙 김장을 하기 위해 할머니 댁으로 떠나셨다. 겨울 휴가 일정이 취소된 후 시간이 생겼지만 짧은 일정에 시골을 다녀오는 일이 부담스러워 고민이 깊어졌다. 추석에 다녀왔으니 다음에 갈까 싶다가도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아 마음을 단단히 굳혀 본다. '아야, 담에 또 와라' 헤어질 때마다 할머니가 내게 건네던 인사가 마음속에서 깊은 사랑으로 반짝이곤 한다. 깊은 사랑은 내게 작은 용기가 되어 나를 움직이게 한다


아야, 고생했다.


운전을 해 3시간을 달려 시골 마을에 도착했다

할머니네 강아지 복실이에게 간식을 주고 있으니 삼촌이 오토바이 소리와 함께 밭에서 돌아오셨다

삼촌의 오토바이를 타고 나도 밭으로 향했다. 합숙 김장을 마치고 또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서. 시골에서 만나면 유독 반가운 가족들을 만나러 말이다.


'출발하자!' 아슬아슬한 오토바이를 타고 시골 마을 골목골목을 지나 밭에 도착했다

삼삼오오 모여서 상추를 다듬고 있는 모습을 마주하니 괜스레 마음이 다정해진다



'할머니 저 왔어요!' 저 멀리서 무언가를 하고 계시는 할머니의 손을 마주 잡는다. '아야, 오느라 고생했다' 시골에 오면 이 작은 마을에서만 평생을 바친 할머니의 삶을 마주하곤 한다. 어쩌면 좁은 이곳에서 할머니의 넓은 삶이 느껴진다. 할머니와 깊은 대화를 나눠 본 적은 없지만 할머니는 그 누구보다도 단단하고 강한 사람이니까. 얼굴에 한가득 핀 주름 꽃이 유독 아름답게 느껴지는 할머니, 한아름 주름꽃을 피워 나를 반겨주신다


 '엄마, 강아지가 조용하네?'

추석 때만 해도 밭으로 가는 길에 강아지 한 마리가 나를 잡아먹을 듯 짖었는데 이상하게 오토바이 소리에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 집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마을 골목에서 인사를 드렸는데 마을 할머니는 하늘나라로 떠나셨다고 했다. '아아 그렇구나' 언젠가는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요한 침묵을 유지했다.


사랑을 미루지 않기를.


'엄마랑 시골 갈까?'  사실 나는 할머니를 찾아뵙는 일을 늘 미루는 사람이었다

불편한 잠자리,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 장난을 받아칠 줄 몰라 상처받는 마음. 나에게 명절은 늘 그런 불편한 순간들이었고 시골에 오는 일은 꽤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세 자매 중 둘째인 나는, 유독 내향적인 성향을 타고난 사람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명절이 불편한 사람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먼 친척들은 둘째인 내 이름도 잘 모르곤 했다. 특별히 가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사춘기 시절부터 20대까지도 최대한 짧고 굵게 시골을 다녀오곤 했다


'아야, 야는 왜 이리 집에만 갈라고 하는가' 명절을 핑계로 무례한 말들이 오갈 때면 그곳에 더 있고 싶지 않았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시골에 가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고, 어쩔 수 없이 가게 되면 얼른 집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만 가득해졌던 시절이었다. 아마도 꽤 오랜 시간 동안 할머니에게 나는 늘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손녀였을 것이다



할머니의 사랑을 이해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엄마가 운전을 시작하면서 엄마차를 타고 시골에 가는 일이 잦아졌다. 명절과 다르게 고요했던 시골의 풍경, 복실이와 살아가고 있는 할머니의 삶. 할머니집 마당에 곳곳에 핀 다양한 꽃을 보며 마음이 뭉클했다. '할머니도 꽃을 참 좋아하시는구나' 어렸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할머니의 작은 터전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홀로 살아오셨던 할머니의 삶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싶어졌다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무슨 운명의 장난 인지 큰삼촌이 할아버지와 똑같은 나이에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할머니는 꽤 오랜 시간 비가 올듯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그렇게 좋아하시던 노래와도 멀어지셨고 웃음을 잃고 묵묵한 표정을 유지하고 계셨던 할머니를 볼 때마다 마음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할머니 저 왔어요!'

감히 짐작할 수 없는 할머니의 삶에 작은 사랑을 주는 손녀가 되고 싶어졌다

이제는 홀로 운전을 하고 3시간을 달려 할머니의 사랑을 마주 하곤 한다. '아야, 왔냐' 투박한 할머니의 주름꽃이 가득 핀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눈다. 이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작은 시골 마을의 깊은 사랑을 마주하러 떠나는 일을 기다리곤 한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간식과 작은 선물을 들고 말이다


할머니의 삶에서 깊은 사랑을 배운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사랑,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마음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사랑의 표현을 미루지 말자고 늘 다짐하곤 한다. 작은 사랑에서 느껴지는 다정함들을 자주 마주하고 싶다. 할머니를 만나러 달려가는 3시간 동안 내 얼굴에도 소소한 미소가 번진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마주하고 작은 선물을 건네는 순간들에서 다정함을 느끼는 요즘이 좋다


사랑을 언젠가 표현하겠노라고 다짐하기보다 표현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을 기회로 삼아 표현하는 삶을 살고 싶다. 늘 표현에 부족한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표현할 수 있는 순간들에 작은 용기를 내며 살아가야지. 시골 마을에서 만난 깊은 사랑을 오래오래 기억하며 사랑하고 표현하면서 살아가야지. 작은 용기를 내어 사랑을 배웠던 날들을 통해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야지.


오늘의 사랑을 미루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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