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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슬 Mar 06. 2024

5년 차 퇴사 면담을 끝내고 제주로 갑니다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퇴사합니다


팀장님, 면담 가능 할까요?


면접을 봤던 5년 전을 제외하고 팀장과 1:1로 마주한 적은 없었다. 불만 사항이 없었다기보다 어차피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허무함에 면담 신청을 하지 않았다


처음 1~2년은 회사에 적응하느라 시간을 썼고 3~4년은 방황의 시간으로 흘렀다


한편으로는 안정적이지만 내 직무는 항상 어딘가 소외되어 있었다. 진급 대상에서 늘 뒷전이었고, 회사에서 작은 상이라도 받을 일은 내 몫이 아니라 타인의 몫이 되어 있었다. ‘왜 자꾸만 이상하게 흘러가지?’ 4년 차가 되니 모든 게 그들만의 세상이라는 게 확실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1월, 승진 발표가 있었다.

어느 정도의 퇴사 결정을 하고 있던 상태였지만 내심 승진 발표가 궁금했다. 4년 차, 승급은 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아주 작은 기대감이 있었다


결과를 보니 내가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더욱 없어졌다. 왜 승진을 했는지 알 수 없을 결과물이 떡 하니 내 앞에 놓여 있었다. ‘맞아, 여기는 이런 곳이었지. 줄을 잘서야 가능한 곳이었지 ‘ 허무함과 내가 이곳에 존재해야 할 이유가 더욱 희미해졌다


“팀장님, 면담 가능 할까요?”

첫 면담이었다. 내가 면담을 신청한 이유를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워낙 아무 미동도 없는 직무를 맡고 있던 나였던지라 이쯤 되면 퇴사를 이야기하려나 싶었을까. ‘어디 갈 곳은 정했어?’ ‘왜 퇴사를 하는 거야?’ 머릿속에 가득 넣어두었던 답변들을 하나하나 꺼내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팀장은 인정한다는 말만 할 뿐, 변하겠다는 이야기도 앞으로 변할 거라는 희망 적인 이야기는 전혀 없다. 희망적인 문장이 나오리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뒤를 돌아보니 내가 이곳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낸 건지 의문스러웠다


안정적이었기에 불합리함을 애써 외면하며 일을 했던 5년, 어딘가 자꾸만 어긋나는 마음이 피어올랐지만 잠시 덮어 두곤 했다


‘이렇게 흘러가도 괜찮은 걸까?’ 큰 의미 없이 매일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하루, 그 속에서 나름의 의미와 가치들을 찾으려 했지만 부정적인 환경 속에 있다 보니 예민한 성격에 예민한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민한 기질을 타고 난 탓에 주변 환경을 잘 흡수하는 내가 이곳과의 인연을 끊어 내지 못한다면 그들과 같이 부정적인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두렵고 무서웠다. 내 삶의 새로운 시작보다 부정의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깊은 두려움으로 찾아왔기에 퇴사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거겠지.



퇴사 면담이 끝나고 나름대로 하나씩 계획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고마웠던 이들에게 퇴사 소식을 조용히 전하고 내가 쉬는 날부터 채용 공고가 올라갈 수 있도록 정리를 하고 퇴근을 했다


“제주에 다녀올게!”

비가 오는 날, 나는 제주로 떠나왔다.


제주에 자주 오는 편이지만 홀로 온 제주는 더 많은 생각들을 꺼낼 수 있도록 해준다. 적당히 흐린 날씨가 꼭 내 기분 같았다. 퇴사를 한다고 해서 마냥 기쁜 것도 아니고 앞으로의 삶이 마냥 어두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조금 흐리지만 또 언제 해가 뜰지 모른다는 기대감과 차분함이 공존한다


내가 좋아하는 함덕 바다를 찾았다

흐린 날에도 예쁜 옥빛 바다를 보여 주는 함덕, 좋아하는 음식들을 먹었고 새로운 곳에서 커피를 마셨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고, 마음을 썼다. 두 달 동안 새로운 일을 준비하느라 하루도 쉬지 못했기에 더 값진 시간이었다. 읽고 쓰는 시간, 나에게는 참 소중한 혼자만의 시간이다. 다시금 마음을 토닥여 본다


‘새로운 시작이 겁날 수 있지만 나는 나를 믿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들을 하나씩 만들어보자’



가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깊은 우울이 나를 덮쳐 온다

‘이번에도 우울감이 반복되면 어쩌지?’ 고민의 늪에 빠져 퇴사를 결정하는 일이 미뤄지곤 했다. ’그래도 착하니까, 그래도 적응이 되었으니까, 그래도 안정적이니까 ‘ 퇴사를 결정하면 새로운 시작 앞에서 겁쟁이가 될 것만 같아 결정을 미루고만 있었다


그러다 정말 안 되겠다 싶었던 사건과 마주했다

이곳에서만 10년을 넘게 일하다 퇴사를 결정했던 이가 하늘나라로 가는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허무했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어쩌면 훗날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지금 용기를 내지 않으면 점점 깊어지는 뿌리를 뽑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수많은 경험 속에서 배우며 성장하는 삶을 원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크게 자리 잡았던 것을 인정하고 나서야 퇴사를 결정할 수 있었다. ’많이 힘들 수도 있고, 많이 지칠 수도 있어. 어쩌면 최악의 상황으로 이곳이 다시 그리워질지도 몰라’ 솔직한 내 마음을 흘려보냈다. 겨우 용기를 냈지만 두려움은 내 곁에서 머물며 나를 괴롭힐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가끔은 지칠 것이고 어쩌면 선택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이제는 지쳤다고 해서 우울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혹여 인생의 파도 속에서 깊은 우울함이 찾아온다고 해도, 그 또한 나는 다정하게 바라보고 그 모든 경험에서 나 자신을 열어 둘 것이다.

인생의 모든 순간, 나는 한순간도 그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 강물처럼 흘러간다. 나는 다정한 목격자가 되어 이 삶에 유연하고 아름답게 흘러갈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오늘 우울하다면, 그저 말없이 조용히 한쪽으로 누워 당신의 심장에, 그리고 조금 더 팔을 뻗어 그 지친 등을 만져보기를. 당신이 요즘 어떻게 살고 있고, 이 순간 무엇이 당신에게 남아 있는지 단 몇 초 만에 알게 될 테니까.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이든, 당신은 누구보다 다정한 스스로의 목격자가 될 테니까.

- <마음 해방> 곽정은 -


책 속의 문장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삶의 경험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나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자. 타인에게 ‘괜찮아! 다 잘될 거야’라고 말해 주듯이 나에게도 잘할 수 있다고 응원하며 내 삶의 다정한 목격자가 되어 내 삶을 유연하고 아름답게 흘려보내고 싶다


그렇게 봄이 찾아왔다.


체크 아웃을 한 뒤 흐린 바다를 따라 걸었다

유채꽃이 피었다는 소식에 함덕서우봉에 올랐다. 오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와, 정말 예쁘다’ 여기저기서 아름 답다는 말들이 퍼져 나온다. 꽃과 바다, 내가 좋아하는 풍경 앞에서 다시금 봄이 찾아왔음을 느꼈다


‘그래 정말 봄이 왔어! 나도 이제 예쁘게 피어보자’ 새로운 시작을 하기 좋은 시기.

시작을 앞두고 내가 제주를 찾은 이유도 새로운 시작을 응원받기 위함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특별하지 않아도 제주 바다를 보며 수많은 추억들과 용기를 떠올린다

20대의 모든 경험에 의미를 두었던 나, 30대의 깊어진 경험들로 성장했던 나.


그리고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다시 한번 용기를 내고 있는 나를 마주 했다.



우연히 마주한 아름다움 앞에서,

예쁜 것들을 가득 보면서 살고 싶어졌다.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걸까?‘

나에게 늘 던졌던 질문이었지만 특별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삶의 의미와 가치를 더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살아가자 ‘

최근에 정리한 문장이다. ‘의미와 가치’ 경험을 통해서 삶을 배우고, 내가 배운 것들을 나누는 삶.


내가 보고 느낀 의미와 가치를 나누며 살아가고 싶어졌다

내 삶의 성장을 통해 누군가의 성장을 돕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삶은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 곁에 있어주며 그 죽음을 애틋하게 생각해 준다고 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마지막 순간이 닥치기 전까지 자신을 얼마나 완성했는지만이 중요하다.
우리가 선택하고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오늘의 삶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 현존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강력한 이유다.

- <마음 해방> 곽정은 -


6개월 동안 두 번의 죽음을 마주해야만 했다

갑작스럽게 떠난 이들의 죽음을 떠올리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허무함만이 몰려왔다. ‘그럼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 삶에 물음표를 던진다. 지금 이 순간, 내 선택으로 이루어진 삶. 그 삶 속에서 성장하고 나누며 살아가고 싶다. 가끔은 넘어지고 지칠지 몰라도, 그럼에도 툴툴 털고 일어나 다시 웃으며 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죽는 날이 찾아오면 ‘더 이상 후회는 없다 ‘라는 말을 남길 수 있도록. 나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고, 성장하고 나누며 사는 삶. 퇴사 여행을 통해 나는 내 삶을 돌아본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를 잃지 말자.

한 문장을 꽉 껴안고 내 삶의 방향대로 흘러가보자. 유연하고 다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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