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윤슬 Apr 29. 2024

30대, 몸이 자신부터 챙기라고 이야기 합니다

: 교통사고와 수술. 강제 휴식의 연속이지만 긍정적으로.


퇴사를 하고 30일이 지났다

퇴사만 하면 모든 게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행을 다녀올까? 제주도에서 조금 지내다 올까?' 불안했지만 행복한 상상이었다. 하지만 내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퇴사를 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위내시경과 복부초음파를 받는 일이었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지만 어딘가 또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잠자리에 누우면,

배꼽 아래쪽으로 볼록한 무언가가 잡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속이 좋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사라지지 않는 이 볼록한 무언가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산부인과에 방문했다. 볼록한 무언가는 처음 들어 보는 단어인 '자궁 근종'이었다


'10cm나 돼서 수술을 하셔야 해요'

'네? 수술이요?'


자궁 근종이라는 단어가 생소한데 이미 내 안에서 커져버려 수술을 해야 할 정도라고 하셨다.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와 자궁 근종 수술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다. 큰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다른 병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엄마, 나 수술받아야 한데.'

엄마의 깜짝 놀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몇 달 전 언니가 수술을 받아 엄마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둘째 딸이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소리에 엄마는 한번 더 가슴이 철렁하셨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한 나에게, 자유를 찾아 새롭게 발돋움하기 위한 시기에 수술이라니. 좋아하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그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속상하다는 친구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훌훌 털어 버리자고 했다


친구의 다정한 마음에 눈물이 왈칵 흘렀고 호수를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왔다. 수많은 생각들이 엉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되어 있었다.


괜찮은 척했지만
괜찮지 않았던 날들


회사 생활을 했던 5년 동안 나를 잘 돌보지 못했다

막연하게 내 몸은 건강할 거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특별히 이상 신호가 없었기에,

그저 괜찮아 줄 거라고 생각했다


완벽한 내 착각이었다.


몸을 스스로 돌보지 않은 채 괜찮을 거라고만 생각한 건 욕심이었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작고 큰 스트레스가 한몫했을 것이다. 훌훌 털어 내지 못하고 늘 스트레스와 예민함을 안고 살아왔던 시간, 그 시간과 완벽한 이별을 하고 나니 이제는 몸이 자신을 좀 돌보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알 수 없는 공포감이 밀려와 의욕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매일 수술 후기를 찾아보고 병원 예약을 잡았다. 하필 시기가 좋지 않아 병원 예약을 잡는 일도 어려웠고, 도움을 구할 곳도 없어 모든 게 낯설게만 느껴졌다


세상에서 다시 한번 홀로 서기를 해야 하는 시점처럼 느껴졌다. 회사에서는 꽤 완벽하게 일을 해냈던 내가, 모든 게 처음인 수술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할 힘도,

새로운 일을 이어갈 의욕도 사라졌다


눈앞에 놓인 수술이 가장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날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따스한 햇볕이 산책을 하자며 나를 불렀지만 몸에 힘이 없어 집에서 하루종일 뒹굴 거리며 하루를 보내기 시작했다


조금 힘이 생겼던 날,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갑자기였지만 꽤 괜찮았던 짧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도 만났다.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던 날이었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보자! 얼마나 좋은 일이 생기려고 그러는 거야!' 훌훌 털어 버리고 다시 시작해 보고 싶었다


쉬어 가라는 신호
얼마나 좋은 일이 생기려고.

'꽃구경 갈까?'

튤립 꽃이 예쁘게 피었다며 엄마가 꽃구경을 가자고 하셨다. 동생과 함께 점심을 먹고 커피를 사서 차에 올랐다. 오랜만에 보는 꽃이기에 차 안에는 웃음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커피를 사서 출발한 지 5분 정도 되었을까

'어.. 어..!!  엄 마!!!' 자동차 사고가 나고 말았다


직진으로 가고 있던 우리 차와 좌회전 차선에서 직진으로 와버린 차가 그대로 우리 차를 옆면으로 박아버렸다. 뒷좌석에 타고 있던 나는, 차가 점점 가까이 오는 것에 놀라 엄마를 불렀지만 결국 피할 방법은 없었다


'어디서 나오셨어요?'

우리 차를 전혀 보지 못했던 가해차량의 운전자도 당황한 모양이다. 사각지대에서 무리하게 차선을 바꾸려다 난 사고, 너무 놀란 나머지 보험사를 부르라는 엄마의 이야기에 휴대폰을 꺼냈지만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1시간가량 사고 처리를 하고 그나마 가까운 언니네 집으로 향했다. 머리가 어질 하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셋 다 병원으로 향했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고였지만 몸이 놀란 나머지 괜찮지 않았다. 자궁 근종 수술에 대해 고민하던 찰나에 교통사고 라니, 정말 삶은 어떻게 흘러 갈지 아무도 모르는구나 라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처음에는 부정적인 생각들만 가득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걸까?' 모두 퇴사를 하고 행복한 날들이 가득한 것 같은데 퇴사를 하고 병원을 열심히 다녀야 하는 내 상황이 속상하기만 했던 것 같다


"얼마나 좋은 일들이 생기려고."

좋아하는 친구가 그랬다. 앞으로 더 좋은 일들만 생기려고 그러는 걸 거라고. 안 좋은 일들이 한 번에 밀려왔지만 그럼에도 큰 사고가 아니었고 큰 병이 아니었기에. 괜찮다 괜찮다 생각하고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치료를 잘 받고 수술도 잘 받는 일뿐. 그리고 노력해서 금방 회복하고 또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체력을 만들어 가는 것뿐이다.


5년 동안, 제대로 쉬어 갔다고 생각했는데 내 몸을 돌보지 못해서 쉬어 갈 환경을 만들어 주는 듯하다.


바쁘게 살았고, 열심히 살았으니 잠시 쉬어 가도 된다고 말하는 몸. 어딘가 아프지 않으면 쉽게 쉬어가지 않는 나를 몸이 알아 버린 걸까.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마음. 나에게 주어진 휴식, 그 휴식을 온전히 누려보자. 이번 휴식을 통해 나는 '건강'이라는 키워드를 더 애정하며 살아가게 될 테니까.



퇴사를 했고 아픈 날들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괜찮다.

나는 잘 이겨 낼 것이며, 그전보다 더 건강하고 씩씩하게 살아갈 테니까.


내 상황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는 내가 정하는 거니까.

긍정적인 시선으로, 긍정적인 마음으로.



소중한 나를, 안아주며 함께 잘 살아가고 싶다.

앞으로 나에게,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살아가자고 말해주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34살, 제가 퇴사하는 진짜 이유는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