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선거를 앞둔 어느날, 아빠와 산책을 했다. 신호등 건너편에 걸린 후보자 현수막을 보시고는 아빠가 말씀하셨다.
"투표할 때 누굴 뽑아야 되냐면 말이야. 첫째로 공약을 봐야 해. 그 다음으로는 행적, 그사람이 얼마나 진실되게 살아왔는지, 거짓말만 하고 살아온 건 아닌지. 그걸 잘 판단해서 뽑으면, 그러면 되는거야."
너무도 당연해서 새삼 가슴에 와 닿을 것도 없는 정직한 말이었지만 나는 마음이 일렁이고 있었다.
아빠와의 대화가 특별했던 이유
작년 이맘때쯤, 아빠는 갑작스런 심정지로 쓰러지셨다. 다행히 골든타임을 넘기기 전에 처치된 심폐소생으로 심장이 다시 뛸 수 있었지만 심폐소생술의 후유증과 잇따른 뇌경색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셔야 했다. 우리 가족은 몸과 마음으로 덮쳐오는 시련과 싸우면서 많은 순간을 가슴으로 울었고, 또 많은 순간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웃음을 지켰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아빠는 건강을 회복하셨다. 그 곁에서 누구보다 헌신하며 힘들었을 엄마는 부쩍 야윈 얼굴로 그 시간이 마치 몇 년과도 같았다며 말씀하시곤 했다. 그렇게 소통이 어려웠던 가슴 먹먹한 시간들이 지나고 아름답게 벚꽃비가 내리는 길에서 이렇게 아빠와 온전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에 순간 뭉클해졌다. 그래서 나는 한껏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기울여서 아빠의 말씀을 곱씹었다.
내가 한 말을 지키는 것,
허투루 말을 내뱉지 않는 것,
남을 속이지 않는 것,
진실되게 사는 것
참 기본적인 일이면서도 쉽지 않은 일 같았다. 생각해보면 선거에 나선 후보자에게나 주어지는 특별한 조건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 덕목과도 같았다. 왠지 모르겠지만 걷는동안 나는 계속해서 그 말을 되뇌고 또 되뇌고 있었다. 그저 아빠는 투표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인데 나는 이상하게도 가슴이 뭉클해져 왔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그 문자에 담긴 정직함이, 정직한 말씀에 담긴 진리가, 너무도 올곧은 말씀을 하고 계신 아빠의 모습이 뭔지 모를 안도감이 되어 마음을 쓸어주는 것 같아서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나려고 했다.
내가 한 말은 지키는 사람, 허투루 가볍게 말을 내뱉지 않는 사람, 남을 속이지 않는 사람, 진실된 행적을 남기며 사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 같아서, 꼭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아빠가 딸에게 전하는 당부 같아서 나는 계속해서 그 말씀을 곱씹고 또 새기고 있었다.
이렇게 좋은 계절, 이렇게 아름다운 길에서 아빠와 온전한 소통을 나누고 있는 순간을 마주하며 새삼 아빠의 건강이 회복됐음을 느꼈다. 그리고 평온함이 내려앉은 지금이 두고두고 추억할 순간이 될 것 같아서 나는 이 순간을 소중하게 감싸 안기로 했다.
* 메인 사진은 산책 중에 찍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