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나빠 Oct 09. 2020

나이스하지도 쿨하지도 못하게스리


미국행이 결정되고 난 뒤 주변 지인들과 식사를 하며 못다 한 정을 나누곤 했습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평소 호형 호형하던 한 회사 선배가 제게 조언을 해주었죠. 선배는 미국 유학과 회사 경험이 있었습니다.


“너 미국 가면 무척 외로울 거야.”


“응?”


사실 그 말이 잘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어차피 미국이라고 해도 사람 사는 데는 똑같고, 어떤 식이든 사람과의 관계는 있을 테니까’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료들과 개인적인 일을 나누지 마. 외국 친구들은 사적인 고민이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안 좋아해. ‘You don’t have to tell me everything’라며 들으려 안 할 거야. 그냥 사람들과 ‘나이스’하게 지내.”


상대가 당신이라면 어떤 말도 못 꺼낼 것 같은데요? 출처:인스타그램ID,onegoodquote


외로울 것이라는 말도, 나이스하게 지내라는 말도 그리 대수롭지 않게 들렸습니다. 외로울 것 같지도 않았죠. 오랫동안 혼자 살아본 제게는 '고독'이란 이미 익숙한 감정이었습니다. 오히려 미국이 내 라이프 스타일과 잘 맞을 것 같다는 기대감마저 있었습니다.


불편한 아싸의 삶
 

저는 개인적인 성향의 사람이었습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두루두루 좋은 관계를 맺기보다 마음 맞는 몇몇의 동료들과 가깝게 지냈죠. 단체 회식도 내키지 않을 때가 많았고, 어떻게든 핑계를 대서 1차를 마치면 자리를 떴습니다.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라는 말이 제일 싫었죠.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과 술잔을 기울이느니 아무것도 안 하더라도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편을 택했습니다.


회식=야근? 출처: <가우스 전자>


'아싸'였던 저는 회사생활이 여러모로 불편했습니다. ‘슬기로운 회사생활’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정치가 난무하는 조직에 잘 적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있었죠. ‘사회성’이 곧 조직생활의 기본임을. 상사와 동료에게 좋은 평판을 얻고, 유관조직의 담당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업무 진행도 매끄러울 것이고 나아가 좋은 평가로 돌아올 것임을. 그래서 조직의 일원인 내가 조금이라도 일을 제대로 해내려면 이러한 암묵적 규칙을 싫어도 따라야 했습니다.


사교적이지 못한 제가 사회적 인간이 되기 위해 저를 제 성향과 반대되는 지점으로 몰고 가야 했습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동료들과 밝게 인사하는 것, 팀원에게 칭찬과 격려 한마디 하는 것, 사업부의 담당자들과 술자리에 만나 웃으며 수다 떠는 것, 동료들과 식사하며 속내를 터놓는 것, 간담회에서 임원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는 것.


누구에게는 일상이고 자연스러운 그 모든 일들이 제게는 참 많은 에너지를 필요하게 했습니다. 내 안의 것을 꺼내놓는 일이 참으로 억지스러웠고, 그렇게 꺼내놓은 것도 날 것이 아닌 잔뜩 포장된 것이었죠. 어쩌면, 제가 회사 생활 내내 쓰고 다녔던 것은 ‘사회성’이라는 가면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soulcuisine.co.nz/are-you-truly-living-your-life/


그랬던 내게 선배의 조언은 ‘걱정’보다는 오히려 ‘기대’를 갖게 했습니다. 더 이상 무거운 가면을 쓸 필요가 없다는, 무리한 인간관계를 쌓기 위해 가식으로 나를 포장할 필요가 없다는 기대감. 사람과의 관계에 감정을 소모하지 않고, 그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다면 ‘외로움’ 같은 것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는 정말 하찮은 감정이었습니다.


저는 외롭지 않습니다. 출처: 예나빠 옛 블로그


미국에 와보니 선배의 말처럼 정말 모두 ‘나이스’했습니다. 이들은 직장에서 항상 미소를 띠고 친절했죠. 어차피 이 곳은 이민자의 나라, 너도 나도 다 이방인이기에 그리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습니다. 각자의 마음속에는 자신만의 울타리가 있었고, 서로의 담은 넘지 않았죠. 그것이 서로를 존중하는 그들만의 방식이었습니다. 동료들과 정을 쌓기보다 가족과의 유대가 더 중요하고, 직장은 ‘밥벌이’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는 이들의 가치관이 무척이나 합리적으로 보였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절제된 조직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일과시간은 업무로만 채워졌고, 모두들 성과로 이야기하고, 평가는 냉정했지만 객관적이었습니다. 수시로 사람은 떠났고, 새로운 사람이 왔습니다. 제게는 감정을 배제하는 이성적(理性的)인 이 조직이 참으로 이상적(理想的)으로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팀원들은 서로의 유대를 저버리지도 않았습니다. 점심을 항상 같이하며 일상을 공유했습니다, 가끔씩 밖에서 저녁을 했고, 휴일이면 함께 하이킹을 갔습니다. 합리적인 조직문화 내에서 동료들과 적절한 수준으로 소통하는 것이 제게는 완벽한 정서적 안정감을 주었죠. 


또 다른 내가 갈망했던 것은 끈끈한 동질감과 공감


하지만, 언제부턴가 가끔씩 까닭 모를 아쉬움이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그리움이었죠. 오후 다섯 시 반이면 사내식당에 우르르 몰려가던 그때의 기억, 테이크 아웃해온 저녁을 풀면서 회의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함께 두런두런 떨던 그 수다가 생각났습니다. 조직개편 루머에 전전긍긍하고, 보너스 비율에 일희일비하며, 상사들에 대한 뒷담화를 깨알같이 쏟아내던 동료들과의 그 시간이 말이죠. 앞이 안 보이는 불안한 미래였지만 모두가 같은 처지였기에, 숨김없이 속내를 털어내던 그 저녁시간이 그리웠습니다.


삼성 계열사 중 한 곳의 구내식당. 맛 보장. 이미지 출처:http://news.samsungdisplay.com/12720


저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었습니다. 회식, 소속감, 경직된 조직문화를 그토록 싫어하며 자유를 원했지만, 제 안의 또 다른 내가 갈망하던 것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쌓아왔던 끈적끈적한 동질감과 공감이었습니다. 그것은 언어와 문화 장벽 너머의 이들과는 절대로 공유할 수 없는, 서로 으르렁대며 정들었던 옛 전우들에게서만 느꼈던 감정이었습니다.



지나온 인연에 기대고 있는 저는 아직까지 이곳에 적응하지 못했나 봅니다. 아니, 영원히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출장 왔다며 저녁이나 먹자고 옛 동료로부터 연락이라도 오면 만사 제쳐두고 달려 나가는지도 모릅니다. 나이스’하지도, ‘쿨’ 하지도 못하게스리 말이죠.



- 예나빠.



ps.

<실리콘밸리의 회식문화가 궁금합니다>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한국처럼 음주가무를 곁들인 회식, 접대 문화는 없는 편이다. 대신, 분기별 혹은 반기별로 함께 나가 저녁을 함께하곤 한다. 외국인들은 '맥주' 한잔 정도는 음료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외식(점심식사에서도)을 하는 경우 식사와 함께 꼭 맥주를 주문하곤 한다. 폭음, 과음이 없어 술로 인해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회식은 소규모의 팀 단위로 이뤄지고 대규모의 그룹 단위 회식은 없다.

대신 연말에 임직원이 모두 모여 1년간의 성과를 자축하는 파티를 하곤 한다. 이때는 임직원의 배우자들도 초대받아 가족 간에 교제도 하며 파티를 즐기곤 한다. 이외에 한국 회사처럼 팀 결속력을 다지는 웍샵 같은 행사도 대부분 날을 정해 업무시간 중, 구내 카페테리아 같은 곳에서 이뤄진다. 물론 참석여부도 강제되지 않고 본인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참석하면 된다.

추수감사절과 같은 미국 연휴 시즌 즈음에는 사내에서 조촐한 파티를 하곤 하는데, 집에서 각자 음식을 조금씩 싸와서 서로 나눠 먹는 팟럭 (potluck) 파티로 진행된다. 많은 수고를 해야 할 파티의 호스트가 필요 없고, 함께 준비해 함께 나누는 팟럭 문화는 비단 회사뿐 아니라 친구들, 동료들 간에도 흔히들 볼 수 있는 서구권의 문화라고 보면 된다.
작가의 이전글 (카툰) 추억의 대학원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