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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dabadger Oct 27. 2020

자립하는 퇴사 준비 1
나의 든든한 리차드 파커

실패없는 프리랜서가 되기위해 회사에서 챙겨나온 것들 1

호텔을 다니기 이전에도 3번의 이직을 했다. 좀 더 나은 직장을 찾기 위함도 있었지만, 회사 사람들과의 관계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회식에 남편까지 대동하고 아래 직원에게 욕을 하는 상사, 항상 회사 쓰레기통에 가래침을 뱉고 화가 나면 물건을 집어던졌던 상사, 출근부터 퇴근까지 하루 종일 다른 사람 욕을 멈추지 않던 상사 등, 회사에는 내가 견딜 수 없을 만큼 이상한 사람들이 많았다. 모든 회사에는 남들을 괴롭게 하는 괴짜가 하나쯤은 있다지만, 내가 겪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줄 때마다 아무도 말을 잇지 못하는 것을 봐서는 내가 특히 직장동료 운이 없었던 것 같다. 


괴짜들이 주는 스트레스는 주로 위염이란 형태로 나타났다. 회사를 나가겠단 결심을 할 즈음엔 항상 위 내시경 검사를 받고, 처방약과 양배추즙을 함께 먹고 있었다. 퇴사를 하고 나서는 위염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라도 이전 회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말이야 멀어졌다고는 하지만 인터넷 속에서는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들과 함께한 대화창이나 그들의 계정이 여전히 눈에 밟혔다. 내가 일일이 그들을 차단하거나 숨기지 않고서는 대화창의 위치가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회사를 나옴과 동시에 혹여나 sns에 그들의 계정이 보이지 않도록 감추어버렸고,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었던 채팅방에서도 서둘러 탈출했다. 그렇게 만났던 인연들을 손수 모두 지우 고나서야 완전히 그들에게서 벗어난 것 같았다. 


호텔을 다니는 동안 으레 생기던 위염뿐만 아니라 생리불순까지 덩달아 나타나 배로 고생했다. 그 어느 때보다 빨리 내가 보는 인터넷 세상에서 그들의 존재를 지우고 싶었지만, 망설여졌다. 이번에는 이직을 위한 퇴사가 아닌 자립을 위한 퇴사였기 때문에 ‘프리랜서가 되면 일감에 늘 목마르다는데 이 사람들이 일거리를 가져다줄까?’, ‘이 사람들이 다른 클라이언트를 연결해주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다른 이유로 나는 그들이 필요했고, 결국 나는 그 사람들의 sns 계정을 숨기지도 않고 단체 채팅방에서도 서둘러 나오지도 않았다. 다시는 회사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그들의 존재 자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내가 좋아해서 자주 다시 보는 영화 중에 하나이다. 이 영화는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소년과 그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갈 때 타고 가던 배가 침몰하게 되고, 승객 중 유일하게 이 소년과 ‘리차드 파커’라는 이름의 호랑이만 살아남아 바다에 표류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고생 끝에 육지에 도달한 소년이 선박회사 보험팀 직원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소년은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호랑이 덕분에 바다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하던 호랑이 덕분에 바다에서의 길고 지루한 시간을 사냥이나 물 확보 등으로 버틸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나는 프리랜서가 되는 것도 영화에서처럼 바다 한가운데 구명정을 타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소년이 바다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생과 사가 갈렸던 것처럼 나도 나에게 출근 대신 주어진 긴 시간들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프리랜서로서의 생사가 정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영화 속 구명보트에 약간의 비상식량이 있었던 것처럼, 나에게도 한동안 일하지 않아도 생활을 할 수 있는 약간의 돈이 남아있었고, 그 이후로는 소년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내 먹거리를 직접 구해야 했다. 좀 다른 점이라면 프리랜서에게는 리차드 파커가 없다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적정한 수준의 긴장감이 필요하다. 자칫하면 게을러지기 쉬운 프리랜서 준비기간에도 리차드파커 같이 나를 긴장케 하는 존재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를 실제로 병들게 할 만큼 힘들게 했던 회사 내 인간관계들이 보트 위의 리차드 파커 같은 존재이다. 회사 사람들이 sns에 남긴 사진이 뜰 때마다, 그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다시는 회사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던 다짐들이 떠오른다. 그들의 생일에는 생일 알림을 띄워주는 sns 기능이 고맙기까지 하다. 그래서 나는 이번 퇴사와 더불어 과거 회사 사람들의 계정도 친구 리스트에 복귀시켜버렸다.


퇴사하고 7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나의 리차드 파커와 아주 잘(?) 지내고 있다. 매일 아침 8시에 눈을 뜨고, 10시쯤엔 계획했던 일을 시작한다. 회사에 다닐 때보다는 2시간가량 늦기는 해도 마냥 해이하진 않은, 나에게 딱 맞는 스케줄이다. 가끔 리차드 파커 중 한 명의 생일 알림이 떠있을 때는 마음속으로 축하를 하며 여유를 부릴 때도 있고, 나태해질 때는 버려진 전 회사 단체 채팅창에 일부러 들어가 과거의 대화를 읽어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그때의 기억들이 떠오르고 그 기억들은 나를 긴장시킴과 동시에 움직이게 한다. 사람들을 그렇게 이용하는 것에 약간의 죄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그냥 그들에게 내가 프리랜서로 정착할 때까지만 호랑이가 되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하루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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