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부터 그림을 그릴 때는 라디오를 들었었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그림을 그리면 잡생각이 덜 나기도 했고, 시간도 빨리가서 좋아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주로 들었던 저녁시간에 편성된 프로그램들이 모두 재미있었다. 특히 장수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는 새 앨범을 내거나 요즘 뜨고있는 연예인들이 게스트로 나와서 빠지지 않고 듣는 편이었다. 같은 또래들의 사연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시험을 잘 보게 빌어달라는 사연, 엄마랑 싸우고 집 밖에서 서성거린다는 사연.. 내가 보낸 것 같은 사연들이 많이 나와서 공감할때가 많았다. 엄마가 거실에서 티비 드라마 속 여주인공과 한 몸이 된 것처럼 공감 할 때 나는 내 방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전국 모든 중,고등학생들 사연에 그렇게 했다. 라디오는 내 감성 주파수와 딱 맞았다.
그렇게 찰떡같이 내 마음을 알아주던 라디오가 이질적으로 느껴지던 순간들이 있었다. 나만 빼고 모두 서울에 사는 것같은 느낌이 들 때가 그랬다. 서울에 사는 연예인들이나 학생들은 이야기를 할 때, 나도 그 동네를 이미 알 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저희 집은 @@동인데 학교는 !!동에서 다녀요’ 같은 식이어서 나는 라디오 진행자 반응으로 거리가 가까운지 혹은 먼지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때마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지리는 별 쓸모가 없어보였다.
지방에서 평생을 살았던 부모님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잘 몰랐다. 부모님과 함께 티비를 볼 때, 가끔 우리는 혼란에 빠졌다. 자연 다큐멘터리에서는 연간 버려지는 쓰레기의 양이 여의도의 몇 배나 된다고 심각하게 이야기를 해도 우리는 여의도가 얼마나 큰지 몰랐다. 대충 엄청난 양이고 심각하구나! 라고 마음으로 이해하고 넘어갔다. 예능 프로에서도 연예인들이 서울에 어느 동 이름을 구체적으로 말하며 재미난 이야기를 할 때, 방청객 웃음소리가 거기서 왜 나오는지 잘 몰랐다. 우리 가족은 미디어에서 말하는 거리와 크기는 자주 두리뭉실하게 알고 넘어갈 때가 많았다.
그렇게 30년을 부정확한 값으로 짐작하며 살았는데, 과연 인서울의 효과는 컸다. 가끔 사람들을 만나러 다닌다고 지하철을 몇 번 갈아타고, 동네를 좀 돌아다녔을 뿐인데 그런 수치들이 갈수록 명확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가령 누가 마포구에서 종로까지 걸어왔다고 할 때 나도 같이 놀랄 수 있었고, 예능 프로에서 연예인들이 서울을 돌아다니며 미션을 수행 할 때, 누가 누구와 가깝게 있는지, 누가 멀리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토록 개인적인 경험들로 공중파 미디어에서 말하는 거리와 크기들을 더 확실한 감각으로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래서 사람은 서울로 와야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결혼식 외에 서울 올 일이 없었던 부모님 50년 넘게, 나는 30년 넘게 두리뭉실한 감각속에서 티비를 보고 들으며 살았는데, 인서울 5개월만에 이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감각들이 명확해졌기때문에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말에 공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간단한 감각들을 왜 모두 서울 기준으로 이야기하고 자기들끼리만 공유해 왔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도 함께 웃을 수 있었을 것이고, 그들이 여의도 말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섬, 제주도 크기의 몇 배라고 말해줬더라면 나도 쓰레기를 더 줄여보려고 했을지도 모를텐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아무리 수도권에 사는사람들이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을 넘었다고는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아직도 뉴스를 보고 머리속에 물음표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들이 지난 세월동안 갈고 닦아온 각자의 감각으로 미디어를 받아들이는 경우보다 보다 정확한 거리와 크기로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