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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Apr 12. 2016

<익숙함=무서움>

익숙해진다는 것은..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렇습니다. 무서운 일이에요. 왜냐고 물으신다면요, 음. 네. 고등학교를 다닐 때, 남동생이 처음 학교를 입학할 때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누나, 학교에서 두발 검사를 진짜 너무 심하게 하는 것 같아.” 

네. 그랬어요. 저도 같은 고등학생이고 저희 학교도 엄격한 편이었는데도, 그런 제가 보기에도 동생의 학교는 정말 두발 검사를 심하게 하는 학교였습니다. 그러니까, 옆머리를 아주 조금이라도 기르면 절대 안됐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동생이 투덜대기도 하고 그랬답니다. “아니,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 거야?” 하면서요. 저도 동감했죠. 굳이 머리를 저렇게까지 심하게 관리하는 게 학업이랑 그렇게 큰 관련이 있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분명히 그랬는데요.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동생이, 말하더라고요.

"이제 머리가 조금만 길어도 내가 불편해."

적응이 되어버린 겁니다. 학교의 두발에 대한 엄격함에 완전히 익숙해져 버린 거죠. 그래서, 나중에는 동생 자신이 머리가 조금이라도 길거나 구레나룻이 옆에 내려오면요. 학교에서 지적받기도 전에, 자신이 불편해서 먼저 머리를 잘랐어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아예 이발기를 구입해서 머리가 조금만 길어도 집에서 머리를 직접 밀더라고요. 이제는 아예 머리가, 너무 빨리 길어서 계속 밀어야 하는 게 귀찮은 수준까지 되어버린 거죠. 헤어스타일을 멋 내려고 하거나 신경 쓰기보다는 머리카락은 그저 머리를 덮어주는 도구의 느낌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동생을 보면서 

‘익숙해진다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하고 생각했었죠. 



 익숙해진다는 건요. 음. 글쎄요. 아주 많은 예시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보셨을, 익숙한 애니메이션인 ‘센과 치히로의 모험’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주인공인 ‘센’의 원래 이름이 ‘치히로’이죠. 


주인없는 곳에서 마음대로 음식을 먹는 치히로의 부모님


그런데, 부모님과 함께 차를 타고 우연히 들어가게 된 터널을 지나쳐 시장에서 부모님이 음식을 잘못 드시면서 돼지로 변해버리고, 돼지로 변한 부모님을 원래의 모습대로 구하고 인간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 ‘센’이 모험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돼지로 변해버리죠.

그 마법 세상에는 ‘유바바’라는 마녀가 있는데, 그 마녀가 사람들을 일꾼으로 만들어버리고 원래의 기억을 다 지워버리죠.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원래의 이름도 잊어버리고 그저 매일 마법세계에서 일을 하며 일꾼으로 살아갑니다. 익숙해지는 거죠. 


부모님은 돼지가 되고, 무서운 치히로를 다정하게 돌봐주는 하쿠. 


치히로는 다행히 자신의 원래 이름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원래의 인간 세계로 돌아갈 수 있지만, ‘하쿠’는 자신의 이름을 아무리 기억하려 애써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의 삶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지요. 그러다 나중에 치히로가 하쿠의 원래 이름이 ‘코하쿠누시’라는 것을 기억해내고, 하쿠도 이제는 자신이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기뻐하지요. 


환호하는 마법세계의 일꾼들

마법세계의 모든 일꾼들도 치히로가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에 기뻐하며 다들 환호합니다. 자신들은 이미 이 세상에 익숙해져서 탈출하지 못했지만요. 그렇습니다. 익숙해진다는 것이,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처음에는 싫고, 불안하고, 답답하고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었겠지만, 점점 이 삶에 익숙해지면서 시간이 갈수록 이제는 매일 그저 일꾼으로 살아가는 이 삶이 원래의 내 삶이라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생각도, 고민도 없는 것이죠. 왜냐고요? 그저 그냥 익숙하니까요. 편하니까요.


 익숙해진다는 것은, 길들여진다는 것입니다. 음. 사랑을 예로 들어볼까요? 글쎄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요. 대부분의 사랑은, 초기에 가장 불타오르고, 행복하고, 서로가 사랑스럽게 느껴지죠. 아, 소위 말해 ‘달달하다’라고 표현하죠. 그러다,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음. 조금씩 감정이 변하기 시작하죠. 많은 연인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너무 서로에게 익숙해져서 설렘이 없고, 그저 너무 편하게만 느껴지고, 떨리거나 어색함은커녕 연인이 아니라 그저 친구처럼 느껴진다는 이유로 결별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시, 설레고 떨리는 사랑에 행복함을 느끼죠. 


 하지만, 익숙해진다는 것이 무조건 질리기만 한 감정일까요? 아니요. 익숙해진다는 것은, 처음의 설렘이 없어지기는 하지만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익숙함은 精(정)과 같은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서로를 편하게 느끼는 사랑부터가 그렇습니다. 그 사랑도, 사랑입니다. 그것도 아주 진한 사랑이지요. 오랜 시간 동안 변하지 않고 서로를 사랑하는, 인스턴트같이 짧은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은 사랑입니다. 여전히 사랑은 사랑인데, 알콩달콩하고 가슴이 뛰고, 떨리고, 설레는 감정보다는요. 굳이 말하지 않고 눈빛만 보아도 서로의 마음을 완벽하게 아는, 편한 사랑으로 변한 것뿐이죠. 서로에게 많이 익숙해지면요. 결혼이 20년이 넘은 부부인 저희 부모님도 그러세요. 굳이 말씀을 하지 않으셔도, 아니, 눈빛도 그리 필요하지 않아요. 그냥, 그냥 모든 걸 아세요.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고 계세요. 20살에 만나셔서 8년을 넘게 연애를 하고 결혼하신 두 분이시죠. 그러니까 그냥, 어머니가 아버지시고, 아버지가 어머니세요. 두 분이, 한 분이세요. 익숙하다는 게, 이렇게 좋은 점이 될 수도 있는 거죠. 이렇게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많은 부부가 여전히 서로를 익숙하고 편안하게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익숙함도, 이렇게 긍정적일 때가 있지요.


 그러니, 우리는 ‘익숙함’을 ‘익숙하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죠. 사람과의 관계는, 편하고 익숙한 감정을 느끼며, 서로를 가깝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으로 느끼는, ‘익숙한’ 관계로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거죠. 하지만, 운동이나 꼭 해야 하는 일을 뒤로 미루는, 게으름에 ‘익숙해지면’ 안 되겠죠. 앞으로, 사람과의 관계는 익숙하게, 그러나 게으름이나, 제자리에 머물기만 하는 ‘익숙함’은 멀리해야겠네요.


 우리 모두, 무서운 ‘익숙함’이라는 녀석. 잘 다루도록 노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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